도덕론/견해를 위해

이기적인감

제라울 2020. 3. 26. 13:24

이기적인감


난 내가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뜬금없는 말이긴 한데 분명 난 이기적이다. 일차적으로 날 생각하고 일차적으로 내 안위를 생각하고 일차적으로 내 이해득실을 보고 일차적으로 내 편할 것을 따지고 일차적으로 내 기준으로 보고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다는 것이다.

글을 읽은 분들은 알 것인데 글이 모두 내 이야기이다.

내가 이러하다. 난 이렇게 한다. 난 이런데 넌 뭐냐 난 이걸 하는데 넌 왜 모르냐 내가 하는 거 내가 아는거 내가 생각하는거 내가 경험한거 내가 보는 거 이런 것을 쓰니 상당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진행이고 대화이고 행위이다.

나 힘들고 내가 지금 어떻고 내가 보니 이렇고 내가 알려준 것이고 내가 알아낸 것이고 하면서 응석이기도 봐주길 바라는 듯 하기도 하고 이런 글들이 대다수 이다.

어떤 면에선 좀 지나치게 자기 하소연이다.

또다른 면에선 일부러 이러기도 하다. 정말 글이 보기에 따라 너무 자기 고충을 알아달라는 식이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듯하면서 교묘히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듯도 같고 상당히 고단위 술수를 부리는 듯도 하다.

고단위 술수란 이런거다.

즉, 이런 것들을 다 안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고 이런 내용이고 이런 관점이고 이런 논조이고 또 글이고 책으로 내는 것인데도 어딘가 유치하고 고상하지 못하며 논리가 안맞기도 하고 응석이기도 한 것을 쓴다. 사실 일부러 이런 것을 알면서 하기도 했고 고의로 더 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유는 고상하고 상달하며 형이상학 같은 것을 해체하고 더럽히기 위해서이다. 사실 이걸 엄청 중요시 해서라고 해야한다.

더 어렵게 말하면 평등한 세상을 원해서라고, 이렇게 포장한다고 해도 된다. 말이란, 개념은 같은데 설명을 고상하게도 천박하게도 할 수 있고 그로인한 효과가 다른 것을 알아서 그때그때 사용한다.

말이나 책에 있는 글이나 모두가 의도한 말이고 설정이라서 곧이곧대로 보면 실망하게 된다.

설마 이런 것까지 설정인가?

설마 이건 아니겠지?

이런 것이 내 글이나 말에서 보이면 그거 보다 더 설정이라고 하겠다.

왜 이렇게 까지 깊게 정밀하게 설정을 할 수 있는가 의심스럽고 믿기지 않는다면 그건 설정하는 방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방법을 알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자기가 그렇게 못하니 설마 하는 것이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하늘공부2를 본 분이 언젠가 직장에서 일하기 싫어하면서 일하는 것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사실 이걸 꼬집는 것을 보고 놀랬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나서이다. 

여기에 문제점이나 이상한 것을 알아채는 사람이 흔치 않아서인데 날 신격화 하거나 대단하다고 보는 사람은 내가 뭘하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러러니 하고 지나간다.

그런데 그래서 이런 일부로 이사람이 도를 배운게 맞나 하는 말이나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짐짓 의미 있는듯 대단한 인내심이 있거나 허튼 말을 안하거나 바른 말만 하고 옳은 말만 하고 행동에 한치의 오차도 없고 감정적으로 완벽하며 초월한 듯한 것들 이런 것으로 나나 도를 보는 것에 반항하는 것이었다.

내가 고상한 듯한 뭐 있는 듯한 뭐 되는 듯한 이런 것이 어려서부터 증오스러울 정도로 싫어서 였는데 게다가 도를 배우는 곳에서 왜 불평등이나 직위나 계급이나 신분이 나타나는지 그게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불교에서 신이 없는 건 그따위 것이 공에서 어떻게 발붙일 수 있는냔 말이다. 제법무아인데 무상한 세상에 신이라니 그런 개념이 성립안되는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며 어쩌라고 참나

여튼 이런 것이 있어서 난 일부로 우수운 설정 나약한 고통스러운, 힘겨운, 감정 불일치, 동정심 유발, 유치한 그런걸 원하는데 사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잘하지는 못한다. 남들이 너무 진지하다. 왜들 진지 해야 하는지 그걸 모르겠다.

아니 더 자세하게는 진지할 때와 안할때가 나와 다르다. 난 진지해야 할 것에 남은 경솔하고 가벼워야 할때 무겁다. 

이런 설명을 길게 하는 것은 이걸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과 각자의 차이를 하나 설명하기 위해서인데 그래서 나 나 나 하면서 나를 반복하는 엉성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난 이기적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태어났다.

여기까지는 일반인이다.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산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태어났냐는 다를 것인데 여기서 갈라지는 것은 분명 있다. 내가 이기적으로 태어난 건 내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른 일반인들은 그런 원인에 의해 그렇게 됐을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이기적으로 태어난 건 같으니 이생에서 하는 짓이 비슷하다.

그런데 여기엔 범위가 있다. 어디에서 이기적이냐라는 그 상황적인 차이가 있다. 이건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러하다. 다만 난 이 범위를 알고 다루는데 남들은 이런 범위가 있는지를 모르고 다루는 것이라는 인식도 없다. 그차이가 일차적이고 그다음은 이걸 다루어서 뭘 할것인가라는 그 다루는 이유도 있다. 이게 이차적인 차이다. 이런 우선 두가지 정도의 나와 다름이 있다.

그래서 이기적인 곳, 분야, 장소, 상황이 있고 아닌 곳, 분야, 상황들이 있다.

또 이기적인 이유를 알고 아닌 이유도 안다. 그로인한 의도한 것 그 의도가 무엇을 만들고 이끌며 효과를 주게 되어서 그것이 향하는 곳을 안다.

즉 원인을 알고 원인의 원인을 안다.

이러면 삼차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면 분명 내자랑이 된다 이기적이라고 날 비판하는 듯하지만 그러면서 교묘하게 자랑질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에 뭔가 인간적으로 이상하거나 도닦은 사람으로서 이상한 것이 보이면, 아니! 이게 보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뭘 또 왜 설정하고 복선깔면서 말하는지 알 것이니 말이다.

의학적으로 음양화평지인이라는 말이 있다. 황제내경에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맞다면, 이런식으로 도닦은 사람에 대한 선망이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상상속의 인물이 있고 그것 도닦는 사람에게 덧씌운다.

도닦으면 이러이러 해야 한다. 이런 행동, 이런 사고, 이런신체, 이런 능력, 이런 지식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난 저항 할 것이다. 알게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