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
쓴다
쓴다는 것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힘들이거나 노력하거나 막말로 수단방법 안가리고 한다는 것이 됩니다.
수단방법을 안가린다는 것이 이걸 가리는 것엔 상당히 어려운 도덕판단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분명 하나의 관문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쓴다는 것을 이용한다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용한다나 다룬다나 이런식으로 하면 더 완곡할지도 더 심할지도 모르는 것인데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릅니다. 관계한다거나 영향을 주고받는다. 오고간다. 작용한다나 들고난다. 이렇게 말하면 역시나 다른 듯하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하는 거라서 이런 식의 말로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함축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쓴다에 이런 의미들이 있기도 하지만 사용한다에도 이런 복합적인 의미가 있고 관계한다는 것에도 이런 복합적인 의미가 있어서 단어라는 것이 의미를 이해하는 만큼의 해석이고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 이해는 단순히 머리의 이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로의 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니 이러한 하나의 단어에 복잡적이고 중층의 이해가 있게 됩니다. 언제나 현실은 생각과 다르고 여러 변수와 생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항상 다른 것이 되어가는 것이며 이러하니 하나의 단어로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을 이해하고 처리하면서 넘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단어란 그 정해진 의미로가 아니라 확장해가는 다른 단어들과의 역동적인 접속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의 이해가 현실로의 작용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작용이라는 말을 씁니다. 작용이 쓴다는 것으로 말하면 어떨까요 머리의 이해가 현실로의 쓰임이 된다는 것이죠. 비슷한듯 다른듯 한데 말의 분위기가 묘해집니다. 다른 식으로도 적용하면서 이해하면 재미있습니다.
누군가나 뭔가가 나를 이용한다고 하는 것에도 이렇게 됩니다. 나를 작용한다나 영향이 오고간다나 관계하다로 말해도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서로간의 오고감이라서 상대가 나를 이용하지만 나도 상대를 이용하게 되는 것이어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한건지 여자가 남자를 유혹한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하상 난 안했다고 말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의식적인 것만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도 일말의 다른 것을 모르지만 깊은 의식들의 작용을 관심가지는 사람에겐 사람들의 말이 다 솔직하거나 아는대로가 아닌게 있다는 것을 알겠죠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혈이 또는 기운 같은 또는 장소가 어떤것이 나를 부르고 나를 이용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가고 싶어서 갔는데 거기의 기운이 날 써먹을려고 부른 것인데 난 뭣도 모르고 가서는 당하는 듯이 이용되었습니다.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이러면 억울하다고 화를 낼만도 한데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막히거나 극한의 문제를 안고 있으면 어떻게든 풀어야 하고 동해야 하며 터질건 터지고 흐를 건 흘러야 하는 거라서 그런가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으로 몰고간 것이 결국 인간이고 이 사회인데 그것을 그 장소나 혈에 화풀이 한다면 나도 한참 못미치는 인격일 뿐이게 되겠죠. 그 이면에서 이렇게오게 된 맥락을 보라는 것인데 그 맥락을 보지 못하면 엄한 것에 감정풀이하고 이용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용이 나쁜 것이죠 무지에 의한 상대억압이 그렇죠.
그래서 그러한 원리를 안다면 굳이 뭐라할 건 없죠. 따져보면 왜그런지 아니 그런가 하고 또 다른 것을 하기위해 가는 것이 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주체성을 기르라고 하지만 계제가 올라갈 수록 나라는 주체는 그다지 희미하고 남들의 주체성을 위해 희생될 뿐입니다. 그 희생을 역시나 부정적으로만 이해한다면 거기서 오래 머물 순 없겠죠. 날 이용할 것들이 없을까 그게 걱정이어야하는 걱정도 의미가 다름을 알 수도 있으니까요.
이건 한면만 말한 것이 됩니다.
그 장소든 뭐든 그것이 뭔가를 해소하거나 의도하는 것이 있어서 갔다고 해도 거기에 이용만 당하면서 수동적인 내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따지고 맥락적인 흐름을 내위주로 보게 되면 나도 그러한 것에 응해주면서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나를 이용한건지 내가 그것을 이용한건지 이것이 애매하게 되죠. 언제나 양방향의 서로간의 관계라서 그냥 오고간다고 말하는 것이고 들고난다고 하는 것이지 일부로 이용이나 사용이나 그런 말을 안하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것도 있는데 그것이 굳이 나같은 계제자만을 이용하려고 부르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일반인이나 아무나 동물이나 사건이나 뭐든 거기에 오고갑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이런것이 원래 정상적인 현상이고 가끔 나같은 계제자가 응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계제자가 되기 전과 된 이후로 나누게 됩니다.
계제자가 되는 그 순간 나와 세상은 다른 관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전엔 세상의 만물과 난 일반인과의 관계로 일어나는 현상들이었는데 계제자가 된 순간부터 세상과 계제자라는 관계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다른 세상이기도 한 것이겠죠. 이런 원리도 원래의 세상원리이긴 합니다. 누구나 내가 뭔가를 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했고 이건 내가 지금인 것과 지금 이전과의 다른 우주에서 사는 거라서 내가 우주를 창조해가면서 사는 거라고 하는 말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원래의 우주법칙이고 거기에 이러한 확실하게 다른 것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면 구체적으로 그 다름으로인해서 다른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