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론/견해를 위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2

제라울 2020. 4. 25. 16:55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려는 것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가 되고

무엇인가 하려면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앞에서 말했는데,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알기위해선 공의 자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도닦는 곳이니 공이라고 하면서 말하지만 이런 개념에 뭔가 거부감이 들수도 있는데 선입견에 대한 이해를 해도 될 것입니다. 

선입견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거나, 선입견을 제거 해야 하거나, 선입견을 찾아야 하거나, 제어해야 하거나 여러가지 접근이 있는데 이런거 전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도 하나를 고집해서 서로 자기가 옳다고 싸우는데 참 별난 사람들입니다. 그 지향성이나 의도가 중요한데 엄한 곳에서부터 서로 논쟁입니다.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지만 실재로 없애는건 불가능합니다. 무아라고 자아를 없다고 하지만 자아가 없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없습니다. 얼마나 없는 것인가하는 정도의 문제이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행위의 문제이거나 도닦는 방법상의 문제이거나 지향해야 할 목적의 문제이거나 이론적인 것이거나 다양한 의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것을 다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유의 자유가 있을 정도로 유연해야 하며 그럴려면 그만큼 철저하게 이런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무아를 안다거나 공을 깨달았다거나 선입견에 대해서 주장할 것이라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한 의도성이 명확해야 하겠죠

과거를 알기 위해 이런 것을 이해해야 하지만 이런 것을 이해하기위해 과거를 알아야 하기도 합니다.

분석하고 따지고 뭔가의 지식을 얻으려면 자료나 정보나 지식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이 결국 과거의 것들입니다. 과거의 것에서 지금의 이해를 해야 하고 지금의 이해가 미래의 행동을 가능하게 됩니다.

누구나 과거를 회상하면 뭔가의 판단을 하게 됩니다.

아니면 그냥 회상하면서 자기의 감정을 음미하기도 하고요 음미가 부정적인 자기위안으로만 끝나면 점점 썩어들어가겠지만 음미가 차이를 만들고 다른 것으로 발전하기 위한 것이면 당연히 겪는 과정이고 동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되겠죠.

그냥 발전적일거라는 바람으론 부족하고 과거를 볼때마다 다른 관점을 가져야 하고 그런 관점을 가지기 위해 가설을 정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때문에 과거를 따지는지 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내가 어떻게 과거를 생각하는지 그 전제된 감정이나 사고를 알기위해서도 합니다. 기억은 기억하게하는 감정이 있어서인데 그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이 뭔지 알아야 하고 그 감정이 뭐라고 정의하기전에 왜 그 감정을 그러한 말로 정의내리고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흔한 상투적인 감정단어로 뭔가 정의하면서 만족해서는 안되고 단어에도 나름의 용도가 있는 것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서 사전적인 의미 이외의 것을 알아야 하죠. 분노라는 단어를 안다고 생각할 것인데 분노란 어떤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인지 어떤 사물에게만 나타나는 것인지 습관인지 뭔가 가지려고 할 때인지 뭔가 억울함을 위해서인지 다른 감정인데 그것을 분노로 아는 것인지 그렇게 감정을 풀기위한 방법인지 이렇게 다른 것을 위해 방법적 전략일때 나오는지 것인지 아니면 이런 각각의 상황에 다른 감정의 단어를 쓰는지 분노란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내 기억만 이런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기억도 이러합니다. 누군가의 기록에서 그 기록을 한 사람들의 감정이나 지향성을 알아야 그 기록들의 의미가 이해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임의로 또는 상식적인 범위에서 이해한 기록의 의미인데 이정도는 많이 부족한 지능이겠습니다.

요즘은 가짜뉴스라는 것이 난립한다하는데 그전엔 프로파간다식의 거짓 정보를 유출하기도 하고 의도적인 작업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현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과거에 정치하는 역사가 있는 어느시대이든 있는 것이며 그런 교활성이나 방법은 누구나 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록이나 기억이나 또 누구의 말이나 정보나 지식이나 그것이 학문이라고 하든 경전이라고 하든 그런 것에서 뭔가 이해하고 얻는 지식이 있으려면 결국 누구나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게 비판적인 정보취득이라고 하든 분석적인 것이라고 하든 외부에서 뭔가를 내 것으로 하는 것엔 그만한 소화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고 그 소화라는 것이 머리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이게 일반인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거라서 이걸 말하는 것도 힘들고 가르치긴 더 어렵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해야 한다고하면 너무 나가서 어려우니 우선 머리라고만 하고요

누구나 공부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말 공부하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외우고 이해한다고 공부가 아니며 공부라는 것이 뭔지부터 알지 못하는 것이라서 공부가 뭔가 뭘 공부라고 하는 것인가를 우선 알아야 하는데 이런 고민을 하면 이미 대다수는 다른곳으로 가지 이걸 하려고 하지 않으니 그만큼 공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것이 있다보니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한발도 나아가기가 이리도 힘들게 됩니다.

내가 마구한다고 합니다. 맥락이라는 말을 하면서 사회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맥락을 보려고 합니다. 그 맥락을 봐야 그것이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어디로 가게 해야 하는지 그 지향성이 내가 하려고 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생각하고 이런 것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을 위한 전제된 추구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내가 생각하는 맥락이 있습니다. 다들 나름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거지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맥락만이 맞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점은 그 맥락이라는 것이 내가 해오던 것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관절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예상하거나 이렇게 될지 알았다고 하거나 그런 미리 안다는 식의 접근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하려던 것이 이렇게 일어날 경우 저렇게 일어날 경우식으로 여러 계획중에 하나라는 것인데 거기엔 어떤 식으로 되었을 경우 그다음으로의 진행이 달라지는 것이어서 그 계획은 중요하긴 합니다.

그래서 보는 것이 여러 계획이 있는데 그 갈림에서 어떤 것이 일어날 것인가이고 그런데 이렇게 일어나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사고가 진행되고 있겠죠.

이런 것이 되기 위해선 과거부터 오는 것이 있는데 이런 사건이 일어남으로 인해 진행되는 그 의미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는 분명 과거에서부터 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있다고 갑자기 이런 의미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이고 그런 의미가 나오길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그 사건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다가 이번의 계기로 드러나고 있는 그것을 얼마나 준비하고 계획하고 맥락을 가지고 왔냐는 것이 됩니다.

어떤 하나의 맥락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되죠.

그 사건을 준비한게 아닌것이죠 

사실은 그 사건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어림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긴 합니다. 왜냐하면 준비한 맥락이 이런 일을 계기로 저런일을 계기로 이럴경우 그 진행의 차이가 있으니 사건에 대한 준비도 분명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어떤 것도 우연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일이 일어나게 하기위해 얼마나 물밑에서 작업하고 누적시키며 발화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번 사건에서 어떤 의미를 알고 어떤 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고 어떤 것을 보았든 그건 이미 준비하고 있던 것입니다. 내가 유투브에서 다양한 해석들을 하는 의견들을 보았는데 어떤 것도 미리 준비하지 않는 개념을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거대한 것까지 그 어떤 것도 미리 누적시킨 힘이 있어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과거를 본다는 것이 그 과거를 본것에서 앞으로 오게 할 것을 준비하는 것인데 그 과거를 모두가 다르게 볼 것이긴 합니다.

그 다르게 보는 것이 그 다르게 오게 하는 미래를 만들것입니다.

내가 본 것이 이러했고 그래서 이러한 것을 일어나게 하고 있으며 말하자는 것은 그대는 무엇을 과거에서 보았으며 그것이 미래에 올 수 있는 것이 되어갈 것인가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