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심기
달심기
양력 7월 5일은 보름이었다.
이 보름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목성과 토성이 가까이 빛난다고도 하고 다른쪽에선 반월식도 있었나보다.
누군 이런 것이 싫거나 질시거나 반감도 있을 것이고 누군 땅에 뭔가를 심으며 잘 자라길 바랄 것이다.
내 방 창문에선 이날만 보름이 바로 비치게 된다.
다른 보름에도 머리를 내밀거나 하면 어케든 보일지 모르는데 건물이 가리고 창이 작고 이래저래 잘 보이지 않는다.
이날도 딴짓하며 모르고 있었는데 옆집에서 에어컨을 틀기도 하고 어딘가 차가 시동을 켜 놓았는지 이런게 섞여서 파도소리인가 바람소리인가 하는 것이 들리는듯 기분도 묘해서 이게 왜 그런가 창밖을 보니 보름이 뙇하니 달무리로 있다.
그러면서 구름에 가리어 간다.
오늘만이 일년에 겨우 보게 되는 보름을 이렇게 굳이 볼 수 있게 되는구나 하는 상념에 빠지게 된다.
명리에 월살이라는 것이 있다.
이걸 보면서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신살도 해석하면 안될 건 없지만 이게 젤 마음을 건드리게 되는데,
달빛이 그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그네의 길을 비치게 된다고 해서 그럴 마음은 없었는데 정부 정책이 바뀌어서 이득을 얻거나 손해보고 친척이 죽어서 유산이 오거나 이로운게 생기는 것처럼 당사자는 그럴 의향이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누군 이로움도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득을 얻으라고 한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이득을 얻는다.
굳이 그사람들이 해를 입으라고 한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희생이 따른다.
한때는 내가 이득을 가지려고 생각하면서 했지만 항상 그건 다른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재밌다고 했고 많은 일이 사람들의 고통을 수반하며 되어가는데 굳이 꼭 그들인건가 하는 것도 있었던 것이다.
밝은 것이 아니니 그렇다고 어두운 것도 아니니 보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보는 사람이 외로움이고
지연이 있다보니 행위가 있다고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어둠을 응시하며 가려진 곳의 동요를 감지해가는 것이 어두운 밤에 달빛에 의지해 더듬으며 가는 것과 같다.
사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거나 또는 꺼리거나
누가 하는지 모르는 것이거나
안보이는 곳에서 하는 것이나
대상을 꼭 집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나
달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를 생각했다.
달심기이다.
무슨 영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태양처럼 빛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아침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그 아침이 내 것도 아니다.
어둠속에서 어딘지 모를 곳에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곳에서 남모르는 갈등과 함께
그 달은 유유히 흘러간다.
그 많은 검은 물 속에 달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