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울 2020. 10. 1. 14:56

연절 : 그럼 전 내면이 없다 이건가요?

제라울 : 있냐 없냐로 따지겠다면 없다면 사람이 아니겠죠 다만 없는 거 같다이고 이건 없는 거처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죠

연절 : 은근히 사람 놀리는 거군요?

제라울 : 그렇죠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다 사람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사람이 아니라고 짐승이겠어요 사람은 사람이죠 흐흐흐

그거보다 자기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단련이 우선이에요

그걸 위해선 냉정함이 필요하죠 과거엔 자신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남은 용서하고요 자신에게 엄하게 하면서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을 요한다는 것이 돼요

연절 : 그러니까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관찰해라?

제라울 : 네~~ 글쵸

연절 : 그게 내가 해야 하는 수련법이에요?

제라울 : 아뇨 대강의 보편적인 원리라는 것이죠

연절 : 아니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서요 난 뭐냐구요?

제라울 : 헉!!

연절 : 말을 해줘야 공부할 거 아녀요

제라울 : 해보시고 찾아야 하죠

연절 : 말해주면 쉽게 가는데 굳이 그런 시행착오나 불필요한 것을 하라고 하는 건 뭐예요

제라울 : 연절님이 오래도록 공부해왔는데도 단전도 없거나 그다지 성취된 게 없는 것은 외부의 영향으로 이거 저거 해오고 이것이 맞고 저것이 맞고 하면서 알아가는 것은 좋은데 다만 그것이 내적인 이어짐의 원리 이해를 못해서에요

근육을 키우듯이 커져가는 근육을 거울을 통해 보면서 원하는 단련을 하고 나중엔 근손실을 예방하면서 식이요법과 적절한 강도의 운동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성장은 그렇게 눈에 보면서 커졌는지 작아지는지 손실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것을 볼 수 있는 내적인 감수성을 길러야 하는 것이죠

그걸 위해서 자기 관찰을 하는 것이고 이걸 하기 위해선 내면의 고요함을 느껴야 하고 그 고요에서 일어나는 요동을 알아채가는 것이고 이걸 감정의 일어남에서 욕심과 탐심에서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고 냉정함을 가지고 판단하면서 자기의 성취와 성장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그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 그 정밀한 혜안이 필요 합니다.

호흡을 수십 년을 하고 명상을 평생 하고 다른 무엇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자기 관찰과 감정의 다룸이 미숙하면 성장의 손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전에 성장하는 것을 해갈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성장하는지 보여야 그것에 물 주고 기르고 양육이 될 것인데 내면에서 성장하고 있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작위로 아무 곳에나 양분을 주면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것이 됩니다.

 

연절 : 난 마음도 없다는 거예요 내가 오래도록 추구해온 갈망이 있어서 십수 년을 얼만 고생해가며 해왔는데 그렇게 별거 없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심하다고 생각 안 해요?

제라울 : 그렇죠 제가 심한 거죠

연절 : 그러니까 남도 좀 인정하면서 말하면 좋잖아요

제라울 : 네

연절 : 그러니까 어떻게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제라울 : 우선 자신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찾아야 하죠

연절 : 마음은 다 있어요 안 그래요?

제라울 : 그런가요?

연절 : 아녀요?

제라울 : 그건 어쩌다 또는 살아가려고 또는 자신을 속이려고 그렇게 뭔가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인데 그건 감정체계지 마음이라고 하긴 좀 부족해요

마음은 스스로 선 다음에 형성되기 시작해요 왜냐하면 마음이란 주체적인 원리이니까요

내가 날 인지하고 뭔가를 시작하는 것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려고 설치면서 살아온 것에서 이제야 드디어 정신 차리고 나로부터 뭔가의 시발함을 자각하는 그것을 해보는 것이고 이러면서 마음이 시작하는 것이죠

즉 수동적으로 형성된 자아나 의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시작한 마음을 말합니다.

 

연절 : 웃기네 누가 그렇게 마음을 말해요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자기가 하고 자기가 욕망하는 것인데 그게 왜 마음이 아니라고 해요 자기가 사는 거지 남이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책임지며 사는 것인데 이상한 말을 해요?

제라울 : 그렇게 알게 하는 것이 속임수 거나 나름의 살기 위한 발버둥이겠죠

그렇게 알도록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게 해온 것이니까요

연절 : 누가 그렇게 알게 한다는 것이에요?

제라울 : 그대 스스로요 이건 인간의 필연이기도 하고요

연절 : 뭔 소리예요

제라울 : 인간은 이성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다그침이 있어요 내가 배가 뭔가 이상한데 이게 배고픔이라는 거다 하면서 알게 해 주죠

배가 고픈 것이 뭐냐 하는 것은 좀 복잡한 설명을 해야 합니다. 혈액에 당이 떨어지는 현상인지 아니면 좀 더 전문적인 설명은 내가 못하겠는데 그냥 배고픈 것이죠 그것으로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인데 이건 신체의 체계예요 그리고 이것을 배고픔이고 그러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이러면서 나름으로 신체의 체계에 대한 설명을 이성은 하려고 하는데 대개 일차원적인 이해로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게 되죠

왜 배고픔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와야 하는지 알 수는 없어요 과거엔 영양분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또 그런 음식이 신체에서 어떤 기제로 활동하는지 알 수는 없죠 그리고 이렇게 영양분이든 에너지든 이것으로 안다고 정말 제대로 신체 체계를 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도 이성이 좀 더 어려운 설명을 하려고 한 것이지 사실에 대한 것인지는 역시 알 수 없는 영역이 돼요

우리가 안다고 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나 외부에 대한 지식이나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변명을 넘을 방법이 우리에겐 없어요 애초 인식하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는 것인데 거기서 우리 이성은 그 한정된 자료로서 뭔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성이 수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사태가 있고 이미 난 생존중이며 또 외부세계는 거기에 언제부터인지 있으며 이렇게 닥쳐있는 상황에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한계가 있어서 피상적인 설명과 주도권이 없는 나름의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작부터 안된다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죠

이런 것인데 스스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결론을 철석같이 믿고 진짜라고 생각하며 살죠

그런 것도 일부러 눈 가리고 아웅 하든 일부로 속고 또 어쩔 수 없이 속는 것인데 그렇게 안주하며 살게 되죠

그런데 여기 도를 배우는 것에선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나 세상의 원리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돼요

사람들이 영적인 것이라는 관심을 가지는데 그 영이라는 것이 다른 존재나 신비함이라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한 근본적인 원리나 이치에 대한 세계예요 

처음의 발을 잘못 디디면 돌이키지 못하 수도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자각해야 할 것은 자기에 대한 철저한 이해인데 우리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한계를 직시해야 그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어요

 

연절 : 근데 자꾸 속이다고 하는데 그게 왜 속이는 것이되요 뭔가 기분이 우울한 소린데

제라울 : 말이 그런 거죠 속인다고 뭔가 사기 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알게 한 거지 그런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연절 : 모르겠네요 그런 것이 왜 중요한지

제라울 : 사실을 안다는 것이 애당초 어렵다는 것인데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그거라고 단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강요해요 말을 안 하면 모르지만 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하고 그 아는 것이 맞는다는 것을 계속 말하는 것으로 가며 그렇게 모순이 있는 것을 알 수 없어합니다.

왜 자신이 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 그것을 모르겠다는 거죠

연절 : 당신도 지금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하고 있잖아요

제라울 : 네 그것을 지적하는 것을 보니 놀랍군요 그렇게 상대를 비판적으로 봐야 하죠

 

연절 : 그래서 당신 말이 맞다는 거예요 안 맞다는 거예요?

제라울 : 도움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죠

연절 : 뭘 주장하고 싶은데요

제라울 : 하나의 이치를 이해하면 정말 그렇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하나의 이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행하기 위해서이니 이게 아니면 다른 것이지 도가 되진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사실을 알 수 없다면 무엇도 맞는다고 주장할 생각을 애초부터 가지지 말아라 하는 거죠

그래서 그대가 난 무엇을 안다고 한다면 이런 근본부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하는 거라서 아닌 게 된다는 겁니다.

또 그러니 내가 산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이런 것부터 이해하고 그것에 다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해가는 것을 해가야 한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된다고 알지 정말 그런지는 모르는 것이 돼요

난 이러하다고 말하면 나라는 것을 우선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어디서 온 건지 어떻게 오게 되는 건지 알아야 하는 거죠 

연절 : 전생요?

제라울 : 아뇨 전생을 말하긴 시기상조예요 우선 자신의 자아를 알아야 그 너머로 갈 것인데 자아도 모르면서 과거로 가다간 방향을 잃어요 자아가 이생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성장한 건지 아는 거요 이게 해결되어야 해요 그대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을 거 아녀요? 살아오면서 어떤 것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정하게 된 계기가 있을 거 아녀요? 왜 난 이걸 좋아하지 저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지금의 자신을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을 해봐야 해요

그렇게 내 성격이 규정되어가던 그 어린 시절이나 지금까지의 과거들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는 시점이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감정이 일어나는 기미들을 보게 될 것이죠 그런 것을 자꾸 따져가면서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알아야죠 이것을 지금도 하고 앞으로도 하면서 자신이 형성되어가고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자각해 가야 해요 이걸 순간순간 확인하고 잡아야 자기 관찰이라고 해요 내가 어떻게 형성되어가고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아야죠

그래야 그런 감정이 아니라 다른 감정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다른 성격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다른 결과가 될 수 있었지 않은가가 이런 것이 앞으로 다른 것이 되게 할 수 있게 하는 분기점을 알아채는 것이 돼요 이 기미를 아는 것이 관찰이에요 이걸 할 수 있어야 내가 이룬 성취를 이어가게 할 수 있고 그전에 무엇이 마음이고 이 마음을 어떻게 성장시켜 나아갈지 알게 되겠죠

우선 마음을 찾아야 하고 그 마음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고 이걸 내면이 있는지 있으면 어떻게 활성화했가는지 말하게 되죠

 

연절 : 자기 말만 하는데 나도 오래도록 마음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몇번을 말해요

그런데 왜 안된다고 하는 거냐고요

제라울 : 네 오래 해왔느니 그렇게 말할 수 있죠 다만 이런 것이 도가 된다는 것을 모른 거였죠

그저 하나의 바람을 가지고, 그바람을 지키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 도의 성취가 되어간다는 것을 그다지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로인해 내가 어디가 어떻게 변혁되어 다르게 될지 그것을 몰랐던 거죠

이런 수련법 저런 수련법 뭔가 하면 되는 것이지 알게 되고 또 이걸 하면 되고 저걸 하면 되는 건가 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복잡하고 현란한 지식들을 알게 되면서 순수한 마음의 이어짐이 혼탁해지게 되죠

머리가 헷갈리니 몸도 결국 그런 복잡한 것이 되지 순수한 이어짐은 되지 않게 되죠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걸 견지해나갈 수 있는 인내 그러면서 고집하지 않는 유연성을 가져야죠

말은 이렇게 간단하지만 그 세부적인 것은 또 어려운게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