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통마안-해평편

보편성이

제라울 2021. 12. 7. 13:35

보편성이나 합리성이나 정합성이나 이런 것이 안쓰면 어려운 말이지만 자꾸 쓰다보면 또는 철학을 읽다보면 익숙한 것들인데 사실 이런 단어의 뜻을 몰라서 어려운 것은 아니겠죠

내가 초기 블로그에선 이런 단어를 자주 사용하며 글을 쓰는 이유는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나 사고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기도 하고 이것이 내 도를 세상에 기입시키기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들 이런 단어를 아는데도 내가 보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맹한 눈을 하면서 뭔소린가 하는 얼굴을 하던데

사람들이 이런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내가 어디다 쓸 것인가 하는 것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내가 이러한 것을 단어나 관념의 하나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이걸 가지고 뭔가 행하고 그것이 나타나게 하며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하는 것을 말하면 어려워 한 것인데

그러니까 이런 것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예를 들면 누구나 그러한 의제에서 그러한 개념에서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토론하고 소통하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그것이 보편적인 개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러한 대화나 관계를 또 행동으로 할 수 있는지 하려고 하는지를 보는 것이고 그 강도가 다 다른데 그것이 그사람의 보편성의 정도차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도가 낮은 사람이 나와 만나서 정도차를 극복하고 날 이해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있겠죠

보편이 도와 같아요 어떤 보편을 알고 행하려고 하는지와 어떤 도를 알고 행하려고 하는지와 같죠

 

내가 이해한 보편에 대한 개념을 이 세상에 적용하는데 차이나의 중국몽이나 일본의 갈라파고스같은 것이 보편과는 다른 길이 되며 그로인한 전세계적인 파급은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즉 그 나라는 보편이 자국에 한정된다는 것이고 그들의 도가 그정도라는 것이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니 이런 것이 있더라는 것이죠 서로 대화라고 할려면 비슷한 정도의 사고수준이어야 하고 대화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그것에 대한 논의나 자기 생각이나 비판을 해가는 것인데 너무 감정에 빠진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 듣기를 바라면서 떠들고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이야기만 하거나 주제가 뭔지 조차도 관심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했습니다. 들을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주제를 놓고 대화하면서 주제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잇어야 하고 비판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생각의 계발이 있어야 하는 것은 누누이 강조하고 너무도 반복적으로 하던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사이의 일이 아니라 확대하면 세계의 나라간의 이야기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개념이 개체에서 세계로 넘건가면 나라간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간의 관계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서 개체가 곧 보편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개체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사고수준이나 방향이 중요하며 그것이 결국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곧 세계의 전부입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내가 도를 깨닫고 내가 도를 펼치고 내가 도를 나누고 내가 도를 내가 도를...

이라지만 

그것은 하나의 일관적인 이치로 말할 수 있게 되는데 그건 방금 말한데로 

내가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주위에 이 사회에서도 그러한 합리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게 왜그리 어려운 개념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것이 아닌 도는 저 산속 어딘가의 동굴속에 은장되어 있는 신비의 똥입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너무도 눈에 잘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문화이고 예술을 이용해 내보이는 것입니다.

내 도가 또는 내 보편이 드러나는 것을 문화예술로 한번 해보이는 것입니다. 순서상 방법상에선 이거 부터인거죠

욕망의 분출은 보편입니다. 즉 내 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억압하면 정신병 걸립니다. 사람은 정신이 건강하고 온전해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지나치면 남에게 피해가 가고 사회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런 것도 역시 보편입니다. 다만 이런 것을 해가면서 스스로 깨우치고 알아가는 것이어야 하지 이미 위에서 훈계하고 억압으로 강요해선 안됩니다. 이제는 윤리도덕역시 우리 스스로 설정하고 변화시켜가는 것이니까요 이런식입니다. 

그래서 자천 초기에 사람을 가르치면서 하는 것이 상처받은거 해소하고 억압한 감정들 해소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강한 심리가 아니면 그로인한 사고의 왜곡과 성취의 방해는 심합니다. 이것이 사회나 세계로 아나면 그러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한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엔 이러한 이유가 하나의 사회를 보는 시각또한 이러한 일관적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도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도 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개체와 보편을 함께 봐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해왔던 것입니다.

 

다시 이것을 다르게 포현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나라의 젊은 아이들이 우리가 잘살게 되어가면서 그로인한 보편적인 관념형태가 관심사가 욕망의 방향이 이 나라를 넘어 주위나라 그리고 전지구적인 사람들에게도 반향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함께 감정을 나누고 성토하면서 어울릴 것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전 세대는 굶는 것이 있어서 배고프고 가난함을 알고 그로인해 성공이나 돈만이 전부로 알았고 잘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목적으로 살고 그러다보니 가족과 나라에 충성하면서 나라가 조직이 시키는 것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암시처럼 살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는 이후 세대가 오는 것에 배경으로서 작용하는데 이건 객관적인 사고나 보편적인 사고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가지게 되니까요

나와 비슷한 세대는 이런 앞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가난하지만 내가 가난한건 아니고 나도 그분들의 영향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면서 사회를 보고 나와 주위를 보면서 고민과 갈등을 가진 세대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갈등과 고민은 지금의 컨텐츠를 만드는 것에 나타납니다. 오겜이든 지옥이든 기생충이든 그들은 그러한 암울한 시대를 거쳐오면서 힘겨운 고민을 하면서 형성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그 고민이 세상을 보면서 하는 것이라서 그 세상의 보편과 정의가 뭔지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만이나 내 주위만이라고 하기엔 세상은 넓고 더 많은 세상 더 많은 사람과 더 진지하게 사람에 대한 성찰을 해야하는 갈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거치면서 이후의 젊은 세대는 당연히 보편을 보게 되는 세상의 현실과 유행과 방향을 보게 됩니다.

이걸 막을 수 없는데 우리 세대가 앞 세대와의 갈등과 대결에서 얻은 개념이나 사고를 보면 자신의 힘겨움이나 이념을 강조하고 강요하면서 이후의 세대를 압박한다면 그것 역시 이상한 것이 되고 그럴 수 없는 당위가 형성되어 갑니다. 

그것에따라 지금의 아이들은 자기 욕망에 더 솔직할 것이고 더 광대하게 분출하면서 맘놓고 살 수 있는 때가 오게 되는 것이겠죠 누군가 활동하고 드러나며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이 좋지 억압하고 누르면서 이념에 개인의 욕구에 종속시키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우리세대나 우리나라만의 성향이라고 보죠

 

그래서 이 세대는 한국인이 아닐지도 이미 한국을 넘어가는 보편인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