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울 2024. 7. 6. 12:49

귀인은 기축입니다.

丑은 당사주에서 천액이라고 해서 재앙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건 12 지지를 생물이나 사람이 나고 자라고 성장하고 죽고 하는 순서로 보면 子의 어머니 자궁 속 양수에서 나온 갓난아이를 말하게 되어서 여러 전염병이나 천적이나 다양한 위험에 취약해서 그럴 겁니다.

물에서 갓 올라온 무방비가 되죠

자를 물로 보면 물가가 되어 뻘이나 강가나 모래사장이나 강이나 바다, 냇가 주변의 땅, 길, 유원지, 도시들이 되겠죠

이런 건 어떤 관점에서 보게 되는가로 다르게 말하게 됩니다.

인묘진사등등도 그렇게 물에서 점점 멀어지는 어떤 것이나 곳으로 보게 됩니다.

혹은 자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겠죠

가장 먼 오午가 공공성이고 중앙이고 법이고 뭐뭐 주작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순서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요즘은 가장 공공적인 곳에서 가장 사적인 이 자궁까지 제어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그렇게 모든 것을 밝히고 외부로 드러낸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밤이 사라지면 우린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태양이 살을 제거하는 것도 되지만 태양 자체가 살이기도 합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그 선은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 선을 찾아가고 그 찾는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이고 설득력이 있고 합리적이냐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겠구요

 

귀인은 이미 준비된 의미가 있습니다.

갖추어진 자연에서부터 사회제도나 사람이나 기술이나 학문이나 먹을거나 입을거나 즐길거나 해야 할 것이나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이미 있게 되는 것이죠

감상적으로 접근하면 종교가 귀인에 가깝고 우린 저러한 정부나 기관이나 기업이나 지위나 어른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그런 것이 감정적으로 날 위해주는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로 인한 배반감은 충격을 겪을 것이지만 그래도 외부사물이나 사정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좀 더 감정적으로 판단하려는 것도 성향이라서요

 

자연적으론 계절이 봄을 여는 것이 되어서 여기가 귀인입니다. 부모나 윗사람이나 신이나 귀한 것이나 길한 것이나 그렇게 도움이 되는 사람 대상들입니다. 봄을 열게 도와주는 것은 드디어 나에게도 봄이 오는 구나하는 기대를 하게 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일단 먼저 있게 되어야 식물이나 동물이나 우리가 활동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 기축은 귀인입니다. 갓난아이라서 위험하지만 그래서 모두가 돌보고 도움 주려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이세상은 날 돕고 살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면 되죠

 

土로 이루어진 의미가 그런 것이죠 온누리입니다. 이미 있는 이 세계요

사회에선 날 돕는 사람인데 이미 뭔가 알고 있고 뭔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선구자나 앞선 자나 위에 있는 사람이나 존재입니다.

그런 걸 귀인이라고 하죠

내가 가야 할 것을 먼저 가 있으니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때론 부모이거나 상사이거나 지위가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신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도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귀인이라고 합니다.

신이라고 하면 우선 기독교적인 신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쪽 우리가 사는 동쪽에서는 신이라는 것은 내가 기준으로 해서 이용하고 이득 되게 하며 필요할 때 사용하는 존재이지 내가 복종하거나 따라야 하는 대상은 아닙니다.

점치는 것과 같아서 내가 필요로 할 때 신을 기반으로 해서 점을 치는 것이라서 이때만 있으면 됩니다.

언제나 항상 자기가 기준이라는 걸 모르면 잘못 배운 겁니다.

종교적인 체계는 누군가의 권력 지배를 위해 작위적으로 암시하면서 만든 것이지 본래의 것은 아니라서 오해가 있으면 안 됩니다.

이 귀인이 신인데 이것이 공망이나 이상한 상태 거나 너무 많으면 그러면 신이 날 속이거나 귀인이 날 속이거나 날 돕지 않거나 이롭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으로서 단정해서 이건 이거다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행생극론은 그 당시 황당하거나 혁명적인 이론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일방적인 생이나 일방적인 복종이나 어떤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 상황 따라 장소 따라 생 할 수도 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 됩니다.

그걸 모르고 왕이니까 신이니까 권력이니까 윗사람이니까 난 복종해야 한다는 식의 일방성은 극이 없는 것이라서 내가 극하거나 신이 극하거나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노예가 되는 것이거나 뭔가의 종속이나 놀잇감이 되는 것이겠죠

 

아직도 이 풍수 하는 자들이 하는 말이 이런 것이면 죽는다 재앙이 있다 이래서 어쨌다고 하는 말을 합니다.

생극론을 이해 못 해서 그렇습니다.

다른 것과의 생극으로 인한 강약을 따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안 좋은 것을 더 부추기는 생이 있으면 물론 극단적으로 가겠고 그게 아니면 완화되어 다른 식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다른 것과의 연관성을 말하지 않고 이래서 이렇다고 단정하는 말은 일단 제껴도 되는 자들입니다.

뭘 말하든 맥락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석하게 되는지 정합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서 거기엔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이 하나의 결과로 나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이 귀인은 지위가 있는 자가 되어서 내가 하려는 것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됩니다.

항상 이런 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점치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점치려고 할 때 귀인의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지 점치지 않을 경우는 귀인은 설정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동하는 그 순간 내 주변의 운명은 줄 세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의 대상을 항상 귀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학문엔 없습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그런 의미로 볼 것도 대상도 없는 것입니다.

무지개를 등사라고 해서 항상 그런 의미가 되지 않는데 등사도 길한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 건 그 상황을 잘 봐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의 의미로 정해져 있다고 단정 지어서 사물이나 사건을 보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들으면 됩니다.

즉 점입니다.

점이란 마음이 동하는 것으로 마음이 동하는 그 순간 운명은 설정됩니다.

그전엔 아직 설정되지 않았고 아직 그러한 운명으로 진행될 것이 정해진 게 아닌 것이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죠

뚜껑을 열 때 그때만 고양이가 죽었던 살았든 되는 것이고 뚜껑을 여는 그것이 마음이 동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엔 없는 개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그 고양이가 뚜껑을 열기 전엔 아직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모른다지만 이미 어느 정도 정해진 결과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죽었거나 어느 정도 살았거나입니다.

그건 우리가 마음이 동하는 그 순간 운명이 설정된다고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습관이라서 어떤 식으로 동할지 이미 방향성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경향성이라고 하는 것이지만요

내가 어느 운명을 자꾸 설정하는지를 보는 게 공부이지만 ㅎㅎ

 

귀인이라고 하면 대단한 뭔가라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그건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명리학 같은 것에서 사주에 있는 귀인같은 것은 그 귀인이 작용하는 시간이나 공간이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거라서 그에 따른 귀인의 대상이 되겠지만 점이나 일진에서 또는 매월에서 작용하는 것은 일시적인 귀인이나 오늘만 귀인이거나 이번 달만 귀인이거나 올해만 귀인이거나 하는 것으로 이런 구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풍수에서도 시체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거리에 따른 운의 적용을 하는 것이 있을 것인데 아직 그걸 구분하는 술수가 부족하긴 합니다.

 

귀인은 길가다가 누군가 누군가를 돕는 것을 보면 나도 누군가를 돕거나 도움 받거나 하는 것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십자가가 강하게 다가오면 그런 인생에 중요한 것이거나 형이상학의 뭔가를 접할 일이 있는 것이 되겠죠

무빙이라는 드라마에 구룡포는 십자가 따라 가야 하는 것이 평생의 배우자를 만나는 의미로 전환되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