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학/산천

하나의 가설

제라울 2019. 1. 26. 19:55

산천을 설명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이해될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공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식이 왜 그런지 말하고 싶은 것이고 공식을 실제 산과 들에 적용하기 위한 풀이라서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닌 것인데 이런 설명이 유치한 설명이기도 해서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유치하고 더럽고 무시할 만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런 작업을 앞으로도 할것입니다. 즉 사소하게 설명하고 싶다는 것이죠.

 

산이라는 것이 경사가 심하니 내려오는 속도가 빠릅니다.

무엇이 내려오냐하면 빗물이겠죠 우선 물을 기준으로 설명을 하게 되는데 물만이 아니라 운명이나 공기나 모든 현상들을 말합니다. 과거엔 기운이라고 했죠. 지금은 기운을 풀어서 운과 명, 물과 공기, 삶과 사회적인 흐름들이나 생활체계나 사회구조나 이런 것으로 말합니다.

퉁쳐서 기운이고 생기라고 하고 신비로움이라고 합니다. 이말은 산천에서 물이라고 하든 바람이라고 하든 기운이라고 하든 이런 것엔 저런 것이 함축 된 것 듯인데 그것을 염두하고 글을 읽어야 합니다.

비라고 하는데 비라는 것이 비가 오면 이런 기운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면 기운과 땅이 만나 그다음의 것으로 다시 생성되어 나오고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엔 그것이 펼쳐지면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펼쳐지게 되면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데 비가 와야 기운은 땅과 만나 그동안 펼쳐지면서 일어난 모든 생활이나 사회적인 일들이 소화되고 변형되어가면서 다시 땅위로 올라오며 그러면 맑은 날씨가 되어 갑니다.

그래서 비가 오고 안오고 하는 대기 현상이 운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이 됩니다.

그런면에서 산이란 그 빗물이 땅과 접촉하면서 좌우로 가르고 위아래로 속도를 주면서 질적인 변화를 만들게 합니다. 소화하고 흡수하는 방법을 정하게 됩니다.

분수라고 하는데 물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산 능선이 있으면 능선을 기준으로 빗물이 내려오면서 좌우로 물이 갈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태백 산맥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갈라진 빗물과 서쪽으로 갈라진 빗물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가서 다른 강이 되어가며 결국 동해로 가느냐 서해로 가느냐 남해로 가느냐를 판가름하는 것처럼 이게 다른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언덕은 물을 갈라서 다른 물줄기 시내와 강이 되어 다른 삶의 노정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 됩니다.

즉 빗물이 산과 접촉하면서 일종의 태생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떨어지냐로 인해 다른 빗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말하면 떨어진 곳이 험한 바위냐 두툼한 토산이냐 아니면 오행으로 수산이냐 금산이냐식으로 나누어서 다른 족보를 가지고 다른 성질을 가지고 다른 운명을 가지고 그런 빗물이 됩니다. 태생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바위가 험하게 생겼다고 험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빗물이 내려오니 그 영향을 받은 물이 내게로 오면 험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바람이 내게로 온다는 것인데 붓물처럼 바람도 어디서 오느냐 어떤 것과 접촉하고 오느냐로 그 바람의 길흉을 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디를 흐르느냐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것으로 변형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험한 바위가 있는 강가를 지나면서 강을 흐르느냐 잔잔히 아름다운 강을 흐르느냐로 그 물은 다른 물입니다. 어떤 곳을 지나왔냐로 강물은 다른 운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집앞을 흐르는 강이 험한 곳을 지나온 것이냐 아름다운 곳을 지나온 것이냐로 그로인한 강물의 질이 다름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모양으로 흐르느냐로 다른 작용을 하는 물이 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강물이 흐르는 모양이 나에게 포근하게 해주냐 치려고 대드느냐 등으로 그 강물의 의중을 본다는 것입니다.

빗물로 말했지만 물이 상하를 오르고 내리면서 상하의 관계를 만들고 교류시키며 활동하게 하는 것이어서 그랬습니다. 그것이 기운이고 신비로움이며 위에 설명한 것들의 의미라고 보아야 합니다.

대기현상인데 그냥 날씨가 그렇다는 것은 요즘들어 하는 과학의 관점이고요

우린 산과 들과 비와 하늘과 건물과 사람과 동물과 식물들 이땅의 모든 것과 다양한 교류와 협력과 연관을 가지는데 그게 단순 물리적인 현상으로만이 아니라 기운적인 형산으로 주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걸 이해못하면 우리식 사고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은 경사지니 이러한 흐름이 빠르게 됩니다. 그로인해 산은 그 흐름을 멈추게 하기 위해선 좀더 강하고 적극적인 방법을 찾게 됩니다. 물이 감싸야 하고 안산이 명확하게 있어야 하는 식으로 산을 멈추기위한 것이 확실해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산을 멈춤음 빗물을 멈추게 하는 거라서 물의 흐름을 더디게 하거나 고이게 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산을 보면 어떻게 동적인 흐름을 정적인 것으로 바꾸어서 모이게 하는지를 따지다보니 물이 흐르는 것이 막아주는 것이어야 하고 이걸 감싼다고 합니다. 앞에서 산이 막아주는 것이 있어야 하기도 합니다. 결국 물이 물을 막는 것이고 물을 어떻게 하면 천천히 흐르게 하고 고이게 하느냐를 보려는 것입니다. 물이 모든 것이니까요. 산이 용이네 기운이네 지기나 생기나 이런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사이고 물의 흐르는 속도이고 물의 성격을 어떻게 하느냐로 말하는 것입니다.

지평선이 있는 평야는 반대가 되는데 이곳은 흐름이 너무 느려서 상대적으로 빠른 강물을 찾아야 합니다. 아니면 좀 낮은 것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러한 것을 등지게 됩니다. 산은 경사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빠른 흐름이 있는데 평지는 낮아야 빠른 흐름이 있게 되는 반대가 됩니다. 낮으면 물의 흐름이 있는 것이 되니까요.

이렇게 산과 평지는 다른 것이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속도가 달라서 입니다. 빠르면 느리게 하려고 하고 느리면 빠르게 하려고 하는 것이 서로가 접촉하고 교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입니다.

그리고 평지에서도 안산은 중요시 하는데 빠른 것을 찾아서 변화를 위해서입니다. 공부를 해도 변해야 이해한 것이 있고 뭔가를 노력했으면 변화가 있어야 달라진 것으로 되고 그 변화가 있음이 노력의 댓가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분명 속도 차이로 인해 일어나는 것인데 다만 결론이 나야 하는 문제는 다른 것인데 그것이 안산이나 앞에서 고이게하고 멈추게 하는것이어야 하고 이건 관절처럼 매듭짓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안산은 중요합니다. 결과를 성취를 만드는 것이어서 그러합니다.

이건 언덕이고 고이는 것이어야 하는 모양이어야 합니다. 흐르면 마무리가 안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며 떠돌게 됩니다. 내 것인가 하면 남이 가져가고 성취했는가 하면 남의 공이 됩니다.

남주기 위한 것이라면 상관없습니다. 내 것으로 할 생각이 없다면 역시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면 그곳의 경사를 봅니다.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는 것이 이 경사를 알기 위함입니다. 물이 어느 정도 속도로 흐르느냐로 그 경사의 기울기를 아는 것이고 어디로 기운지 알아야 그에 대한 자세를 취하는 산과 들과 물의 역할을 알게 합니다.

경사와 같은 경사로 되어 있는 산이나 들보다 경사를 거스르는 것이나 완화해주는 것이 경사의 균형을 맞추게 되며 이런 균형을 맞처어 주는 것이 길한 작용으로 오게 된다는 것이 됩니다.

세상이 한쪽으로 흐르면 그것을 균형과 조화를 하려는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면 그것을 누군가는 그로인한 문제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리 저리 왔다 갓다하는 것이 시대의 현상이니 어디로 가고 있고 얼마나 경사지고 얼마나 완만하며 그러한 시대적인 경사를 보고 그에 따른 상대적인 일이나 현상을 유도하면서 균형을 맞추어가고 너무 기울기가 없으면 오히려 기울게 하기 위해 무게 중심을 바꾸고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시대와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무 아름다우면 추한 곳으로 가고 너무 흐름이 없이 지평선이 길고 멀면 변화가 심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기울면 완화하고 너무 평평하면 기울게 하며 이러면 저런 것을 걱정하고 저러면 이런 것을 걱정하며 별일 없으면 일을 저지르고 일이 너무 많으면 쉬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땅도 그러한 기울기나 완화된 것이나 이런 거면 저런 것을 저런 거면 이런 것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