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가설
이것도 생각하기 위해서 우선 가설적인 개념을 정해놓는 것입니다.
이렇다가 아니라 이렇게 해서 놓고 보고 그다음에 이게 맞는지 아닌지 앞으로 점검해 갈 것이죠.
사주라는 것을 보니 정해진 것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어떤 것이 정해진 것이고 어떤 것이 아닌 것인지를 구분해야 할 거 같다.
이말은 삶의 환경이 정해진거 같은에 그 환경에서 어떻게 살지는 정해지지 않거나 어느정도 유격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동성과의 연애를 할 경우 어떤 사주이길래 이러하는가를 따져보면
어느 경우는 망신이 있어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망신이 여러 의미가 있는데 동성을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부끄럽거나 수치감을 느끼는 인생노정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망신이 동성애와 연관되는 신살이냐하면 그렇게 단정짓자는 것이 아닙니다.
망신이라는 것으로 산다는 것이지 만약에 동성이 망신스러운 것이 아닌 사회에서는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망신에 연예인을 할 수도 있지 않는가? 아니면 남 앞에서 시선받으며 사는 것이나 주목받거나 아니면 돈이 좀 분탈되거나 권력이 좀 떨어지는 것으로 살아가도 되는 것인데 굳이 동성인가는 그시대의 망신이 무엇이냐가 됩니다. 망신으로 산다는 것이지 동성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동성애이 정해진게 아니라 망신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중에 이사람은 동성애을 망신으로 해석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굳이 이사람은 이렇게 해석했는냐가 되는데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사주에 나오지 않습니다. 조상 따지고 전생 따지고 할 수는 있지만 그건 너무 나가면 허황됩니다. 여기서 부턴 본인의 판단이고 결정이라는 자유가 있게 됩니다. 운명이 정해진건 그 판이나 환경이나 이러한 제약이고 이런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살지는 정해진게 아니라 스스로의 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누구는 일지 반안으로 동성을 좋아하게 되기도 합니다.
즉 하나의 신살이나 사주 구조로서 그런게 아니라 어떤 신살이나 구조로도 될 수 있는 것이어서 인생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사주구조나 신살을 동성애로 이성애로 해석해서 살아가는 것을 정했느냐 입니다.
반안이 왜 동성애가 되느냐면 반안은 좋기도 나쁘기도 한 것인데 좋은건 천살을 이기는 것이어서 무서울게 없는 것입니다. 왕 안 무섭고 선생님 안 무섭고 감독하는 자도 없고 관리하는 자도 없는 말그대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또다른 아픔을 주게 되는 이유입니다. 고대의 기게스의 반지나 투명인간이나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며 무법이라면 자기 맘대로라면 무슨짓이든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동안 벼르던 살인이나 법죄도 저지르고 동성애처럼 남이 함부로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경우도 반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삶으로 할지는 자기 판단입니다.
판은 정해집니다. 물론 엄밀히 또 복잡하게 하면 이 판도 스스로 정한 것이지 제삼자의 누구나 신같은 뭔가가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이런 구조적인 운명이해가 부족하니 이걸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입니다. 암튼 반안이든 망신이든 뭐든 그런데 그 판에서 뭘 할지 그 판을 무엇으로 해석해서 살아갈지 그건 스스로 판단할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당장 정해진걸 바꿀 생각말고 다른 운명이 되도록 조금씩 멀리보고 지금의 사소한 판단부터 신중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이후의 운명을 결정하며 판을 만들게 됩니다. 그것이 개운법입니다. 수년의 의지세움이 그리고 그 정밀한 진행이 지금의 운명적인 제약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