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자천하는 방법
자천을 하는데, 즉 도를 알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도를 왜 터득하고 싶은지 그건 모르겠지만 이걸 하려고 한다면 좀 과감한 결의가 필요 합니다.
구체적으로 뭘 바라서 하는지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나 어디서 본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이거나 그럴 것인데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고요
각성을 원하거나 연금술을 하려거나 나름의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한마디 하면 그럴 경우 좀 더 도에 대한 다양한 서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두가지 수련법이나 기술이나 관념이나 체계를 보고 뭔가 정해서 해야겠다고 한다면 시간이 지나서 후회할 일이 있을 것이고 공부도 정체가 빠르고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호흡이면 된다. 기로 하는 것이다. 명상이어야 한다. 대각을 해야 한다. 툰달리니를 해야 한다. 이걸 알아야 한다. 저걸 해야 한다. 비밀스러운 뭔가 해야 한다. 밀법적인 것이 있다. 이런 것을 접했다면 협소한 정보이니 좀 더 다양한 것에서 다양한 정보와 지식과 체계를 섭렵하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협소한 지식으로 도를 넘보기엔 도를 너무 우습게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그럴만한 자격은 없을지 모르지만 단연코 말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성취는 별볼일 없을 거라고 심하게 말하며 말리겠습니다.
말리기만 하고 방법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자천법을 말하는데 내가 말하는게 맞고 남은 틀리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 것도 다 살피고 연구해서 자기 것으로 해가면서 좁게 보지 말고 크게 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굳이 기술적인 것은 말하지 않고 대략적인 방향성만 제시 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 그런 것까지 남에게 기댄다면 그 기대심이 도가 아닌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스스로의 자립이 되지도 않는 심성으로 뭘 이루려고 한다면 도가 아닌 것이죠.
우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누구나 하는 생각이지만 거기서 하나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떤 사물을 선택하고 어떤 것이 좋아지고 어떤 것이 생각이든 감정이든 판단이든 행동이든 하게 되거나 일어나거나 한다면 거기에 왜 난 이걸 하려고하는지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지 이게 좋은지 저게 싫은지 이게 기분 나쁜지 저게 끌리는지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뭔지, 저런 말하는 건 왜그런지 이런 자기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나 감정이나 이런 것에서 그런 것을 하는 원인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내가 왜 이러고 싶은 것이냐,
이런 식으로 비판적으로 자기를 대하는 것인데, 원래 이런 것을 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보다 따지고 비판하는게 습관이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인데 이러면 그렇게 따지고 비판하는 것들을 하나의 체계로 정립해서 관념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만 했지 비판하는 이유가 불분명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 건설적이지 못합니다. 이런 생산적이지 못한 비판은 자아가 공허해지고 성취 또한 어렵게 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자아가 일어나고 성장하려는 것인데 그다지 제자리 걸음이면서 비판하기만 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그렇게 자극적이고 남 비판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버릇일뿐이기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도가 비우는 것을 하지 못하면 안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비운다는 것도 비판한다는 것이 되어 비우기만 하면 역시 공허 합니다. 비워도 비워도 비운 그 사람은 사라지지 않으며 비우려는 그 의지가 이미 전제된 것이라 역설이 됩니다. 역설은 스스로 해결하면서 그 다음의 경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비워도 비워지지 않거나 비워도 비운게 아닌거거나 자기가 납득할 관법을 찾는 것인데 이것을 해내라는 것입니다. 비판으로만 일관하지 말구요.
그리고 생각을 그다지 안하면서 사는 분들은 일부러 자꾸 생각을 하고 비판하며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서 자기가 사고하고 감정내고 행동하는 그 근저의 원인 또 원리 또 본래의 자기 의지나 의도를 알아내는 훈련을 하길 바랍니다. 훈련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기술 안 쓴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쓰는건 이 사고능력은 누구나 하는 거라서 기술이면서 기술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생각하고 비판하면서 그 원리를 알고 그 원리가 자기의 의지임을 알아야 하며 그로인해 자기 형성을 이루기 위해 일관적인 체계를 만들면서 합니다.
이러면 인문적인 것만 진짜고 이공적인 것은 무시하냐고 말할지는 모르겠는데 사고를 숫자로 하든 문자로 하든 그건 방법이고 성격이고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지 결국 이치이고 개념인 것이라서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고 요령은 가르치기가 힘듭니다. 잘하는 것을 찾아 하는 것인데 이런 것으로 해보고 저런 것으로 해보면서 오랜 연구가 있어야 하는것인데 즐겁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오래 할 수 있으니 그런 것을 하나 잡고 하면 될 거 같습니다. 대개 십년 정도 꾸준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어떤 공부든 그만한 연구없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으로도 재밌게 개념 연구하고 이치 파악하는 것인데 나를 알기 위함이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함이니 이런 것도 그런 목적에서 나온 것이라서 당연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더 깔끔하고 혼란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수학적인 거나 논리적인 것을 누구나 해야한다고 봅니다.
사고하는 것에 어떤 체계가 있어야 하고 논리가 있어야 해서 합리성을 가져야 합니다.
불명확한 정리나 정의, 논리적 비약이나 논점 혼란이나 방법론에 대한 이해부족들은 해결하고 가야 합니다. 뭔가를 알게 되는 것이 도의 공부인데 뭔가를 안다는 것은 뭔가에 대한 자기 이해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대각이나 깨우침이라고 미사어구를 쓴다해도 역시 그렇게 미사어구를 과장하면서 말하는 이유를 납득 시켜줘야 합니다.
같은 집단의 구성원 내에서 즉 만약에 수학자들의 무리에서 수학을 설명하는 것은 공식과 숫자들의 나열이 어렵습니다만 수학자들은 이해하겠죠. 그렇지만 일반인이나 다른 장르의 또 분야의 사람들은 못알아 듣습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또는 다른 장르로 번역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정확히 안다면 쉽고 상식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아니면 그러기 위한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런정도의 설명을 못한다면 그것의 각성이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하구요. 물리학자들이 일반인 상대로 어려운 물리 법칙들을 설명한 것들을 보면 결국 개념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재밌고 상세하게 잘 설명합니다. 그런면에서 인문으로만으로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하든 그것이 정말 제대로 공부한 것이면 비슷한 결론이나 개념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불교나 다른 어떤 조직에서도 그들끼리는 알아 듣거나 그 속에서의 방법으로 뭔가 행세할 수 있다 해도 밖으로 나와서 일반인이나 다른 장르에선 거기에 맞는 방법을 써주는 것이 예의이고 보살심일 것인데 절에서 하든 말버릇을 시장에서도 하는 우를 범합니다. 중이기 때문에 이미 먹고 들어간 접근이나 대우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건 자기가 아니라 뒷배경의 후광으로 자기를 착각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누구나 전혀 다른 장소, 사람, 조직이나 체계에서서 자기의 견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항상 이런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거만해지게 됩니다. 즉 계급장 때고 결판 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선입견 없이 서로의 대화로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날 우러러보거나 내가 아는 것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전혀 모르거나 전혀 다른 장소에서 있다는 전제를 하지 않는 사고입니다.
언제나 생소한 사람과 상황에서의 자기 견해의 평가를 전제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하고 그런 세상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날 추앙하는 곳에서만, 날 아는 곳에서만, 날 이해해주는 곳에서만 산다는 건 이미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반복이라서 정체된 것입니다. 정체는 썪습니다. 이걸 우물안 개구리라고 누구나 아는 비유이지만 이말을 하는 사람 역시 어떤 우물에서 놀고 있는지 또 경계해야 합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알아가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자기가 하는 것에 원인을 추구해 들어가는 것이 일차적으로 해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요즘엔 책들이 많으니 책을 보는 게 좋은데 그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의견 다른 견해 다른 방법 다른 원리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찾아낸 원리나 내 자신에 대한 이해하는 방식과는 다른 의견이 있고 또 비슷한 것을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 비슷하거나 다른 것들을 보면서 그들과 나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씩 객관성이 형성되어 갑니다. 내안에서만 사고하고 정리해가던 개념으론 어느 이상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어떤 정보나 논리나 방법을 아느냐 모르냐고 자기이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고 얼마나 다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얼마나 깊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지를 알기가 힘듭니다. 홀로의 사고안에선 어디에서 구멍이 있는지 알기 힘듭니다. 머릿속에선 정합성이 좋았는데 누구와 대화하면서 전혀 말로서 설명하지 못한다면 머리에서의 정합성입니다. 머리를 나오지도 못하는 그런 각성은 각성축에끼지도 못합니다. 이걸 각오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나와 비슷한 것으로 고민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이 책을 내고 주위에도 있으며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수두룩 합니다. 자기의 사고나 감정만 보고 자기의 지식이나 자기가 알아낸 것만 보고 자기위주로만 관념을 형성하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논리의 비약이 중구난방이며 남들과 대화나 소통이 안되며 자기 속으로만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남들이 이해 안해주면 남이 무식하거나 남탓으로 하게 되며 자기만 대단한지 알기도 합니다.
외부가 어떤지 남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고 해석하고 있고 받아들이며 활용하고 있고 살고 있는지 그런 것을 전제하지 않고 사고 해가고 자기를 알기위해 비판한다면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고 어디서 오류가 나고있고 어디서 불가능한 비약을 하고 있으며 뭘 내가 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어디를 가고 있으며 그 끝은 어딘지 모르게 되어 혼자만의 벽을 쌓고 잘난 맛에 살거나 좌절하거나 그럴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것보다 개념이라는 것이 너무도 다양하고 너무도 깊고 너무도 기발하며 너무도 창발적이며 너무도 기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서이고 굳이 내가 다 혼자서 연구하지 않아도 남들이 해놓은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생각보다 별별 것이 다 있고 별별 것이 다 연구되어 있고 별별 것이 다 가능하다는 그 신선한 발견들을 즐기길 바랍니다.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남도 알고 있고,
그대가 기발한 거라고 생각한 것들은 이미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지나간 것이기도 하고,
그대가 성취한 고귀한 것들도 이미 너무도 흔한 것이기도 하다는 이런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거기다 내가 어디에 빠져서 이런 것에 열중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그대는 자기안에서만 살고 있는 사람이며 남을 보지 못하는, 남을 한번도 인정하지 않는 잔인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무리 대오 각성을 주장하고 위대한 깨달음을 말해도 벌래만도 못한 자기안의 거인입니다. 누구나 자기안에선 자기를 거인으로 압니다. 밖으로 나오면 투명인간으로 바라봐 주지도 않는 사람이면서 자기는 거인으로 아는 자입니다.
이런 생각적인, 또는 사고 훈련적인 것만으로 도가 터득되냐 도는 그외 뭔가 더 해야 할 것이 있느냐 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성취적인 어떤 거 그러니까 연금술이나 선도에서 말하는 금단이나 결태나 대주천이나 그 이상의 신선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아니면 영적인 현상이나 초자연적인 것이라면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뒤받침 되고 이런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일치되어야 각성이 되고 견해를 이루며 지식이 되어 갑니다.
머리만 아무리 굴려도 물론 개념이해가 되고 관념이 형성 됩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입니다.
그 이상의 견해 그리고 그 견해로 인해 내외를 일치하고 자아성취나 실현하고 도가 되기 위해선 물론 이런 것이 완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냐 하면,
이건 뭘하면 되느냐고 고민할 게 그다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뭘로 하든 오랜 정성이면 되는 것입니다.
호수(주문)을 외우든 좌선을 하든 그런 것을 오래 그리고 정성스럽게 하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어떻게 하느냐 더 잘되는 방법 없느냐 이런 기술적인 것은 그다지 의미가 적습니다. 그런 방법적인 기술이 성취의 시간을 앞당기지 않습니다. 이건 오직 정성과 시간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외에 이런 것을 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나 증상들은 그때그때 믿고 문의 할 수 있는 분에게 하면 됩니다. 분명 하다보면 별별 이상한 것에서 흥분되는거나 무서운 거나 기이한 거나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런 세세한 것은 구체적인 질문과 답변으로 하는 것이 나아서 여기선 그냥 정성이면 된다고 하고 갑니다. 강마을인데 그래도 오직 마음이 곧으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 훈련이라고 했는데 이런 정성스러운 공부와 사고가 서로 잘 원활하게 맞아들어갈 때 어떤 성과가 일어나는 것이지 그중에 하나만 하는 것으로 뭔가의 소기의 성과를 내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라서 오래가지 못한 것이고 삐뚤어진 것이라 이상한 모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