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란
기문둔갑
이런건 잘난척이다. 도움되면 좋지만 굳이 이런것을 공부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취향이라서이고 전략이라서 이거 아니어도 자기가 쓰는 도구가 있으면 되는데 성격따라 다른 것으로도 하는 것이니 굳이 이거여야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나도 이런 것을 잘 사용하지는 못한다. 그다지 성격에 맞는 거 같지는 않다.
이거 저거 다 하려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서구철학하고 양자물리학과 수학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철학을 제외하면 포기에 가깝다. 기문둔갑도 도구로 쓰는데 공부할 수 있게 되어서 하는 것이지 한문도 못하고 자료도 없는데 배우는 것은 지난하다. 그래서 배울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이다.
말하고 싶은건 내가 이런 것을 한다고 다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거로밖에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니 자기의 성격에 맞고 기호에 맞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우선 둔갑이니 갑을 숨긴다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거엔 갑이 왕이라고 하겠지만 난 마구할때 갑질이라고 하는 듯한 그런 의미로도 썼다. 그러니까 갑들을 제거하거나 경계하는 방식의 마구로도 기문둔갑이라는 것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쓰기 나름이라는 것이지 정해진 정의나 의미가 고정된 것은 없다.
지금은 갑은 생명이라고 본다. 그리고 의지이다.
그래서 생명을 꺽어선 안되고 남의 의지를 짖밟아선 안된다. 이것이 기문둔갑의 본뜻이라고 본다.
왕따위는 경도된 노예근성에서 나오는 사고방식이다. 아직도 이런 생각으로 갑을 왕을 위한 것이라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동양학을 하면서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 그 지능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미 비빔밥 사주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즉 격을 갖춘 과거급제하는 양반들을 위한 사주가 아니라 지금은 서민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사주를 보는 것인대 그들은 격이 나쁘거나 없거나 불필요한 거라서 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봐야 한다는 그정도의 안목은 가지는게 지금의 사주의 흐름이다. 그만큼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문이 아직도 왕따위나 운운한다면 참으로 한심하다고하겠다.
기문은 을병정이 있고 무기경신임계가 있다.
갑은 생명이고 의지이니 보호해야 하고 을은 그것이 드러나는 현상이거나 번식이다.
그리고 갑을은 그러한 것이고 병정은 감정이고 의욕이다.
무기는 생각인데 여기부터 현실에 드러나는 것이다.
경신은 행동이다.
임계는 결과이다.
그래서 무기경신임계정병을 을 쓴다.
그중에 을병정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 것이고 무기경신임계는 현실에 드러나는 것이라서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에서 구현되는 현상들을 보는 것이다.
우린 과거에 가슴이 생각한다고 했다.
즉 감정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고 생각은 다음이다. 감정이 변하지 않으면 생각이 혼자 변할 수 없다.
그래서 을병정이 중요하고 이것을 따로 길하게 본다고 한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생각이 아니라 지고지순한 감정을 원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신을 흉하게 해석하는데 내 행동이라면 좋지만 남이 나에게 하는 거라서 흉한 해석이 된다.
아마 난 여리고 온순한 갑이나 을인데 남은 날 해치는 경이나 신이라고 하나 보다.
그만큼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전제가 기문이다.
임계 역시도 내가 뭔가 이루고 성취하면 좋지만 남이 그러면 내 것이 남에게 간 것이 되어 혼란하고 억울하고 뭔가 뒤죽박죽이 된다. 이건 피해의식이 있는 것인데 임계는 수라고 해서 어둡고 정신적인 것이어서 뭔가 없다면 누군가 가져간 것이고 뭔가 안된다면 안보이는 뭔가의 해꼬지이고 이런 것으로 해서 임계가 나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