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제왕학이라는 게 뭘까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게 과거부터 있던 말이지만 지금 사회에선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곳에서 하던 말을 이런 제목으로 규정하는 것이지 전혀 다른 것을 하자는 것은 또 아니다.
그러다 왜 갑자기 이렇게 하게 되는가는 맥락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것은 언제나 크기의 문제이다.
얼마나 큰가인데 어디에 큰가도 된다.
아무나 보고 크라고 하긴 어려운데 크고자 한다면 커야 하는 방법, 대상, 과정이나 용법이나 그런걸 하라고 한다.
그게 도라고 하고 덕이라고 하고 뭐라 하던 역시 이런 말이 된다.
자천이 권력욕이라고 했다. 좀 비아냥이 섞인 것이긴 한데 그렇다고 그런 것만으로 한 말은 아니다. 당연히 이래야 하고 이것이 결국 우리가 갈길이라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었다.
이걸 어떻게 알다듣는지는 모르겠다. 이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는데 내가 사용하는 것하고 같은 것인가 하는 의아함을 느끼게 사용하고 있기도 한다.
남이 권력을 추구하면 비난하고 비웃는다. 그로인해 내가 피해를 보기도 하고 권력이 강제성과 폭력과 억압과 독선이 있는 거라고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대개가 이렇다.
도 닦는 곳에선 다른 것이라고 하고 싶지만 여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누구나 제대로 배운 사람은 드물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빼가는 것이고 겉치장만 쉽게 배우는 것이라서 그렇다.
사실 도를 배우는데 권력을 가지라고 하는게 좀 웃겨보이기도 하다.
뭔가 무소유여야 하고 이런 세속적인 것을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그렇다.
세상에 그어디에도 온전한 벗어남이나 탈속이나 무소유나 그런 건 없다. 무소유라는 것도 말장난이다. 완벽한 무소유는 그런 말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야 하고 그런 상태라면 이미 그런 개념을 남에게 전달도 못한다. 내가 무소유다 라고 말하면 이미 소유이다. 무소유를 소유하고, 또 입을 소유했으니 말하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소유했으니 말하고 이런 말장난이 통하는것이 사회에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유한 자들에대한 반항과 울분이 있어서 이런 것이 유행하거나 동의를 얻게 되는 사회현상일지 모르겠다.
세상이 있고 그 세상을 알고 알게 된 세상에 내가 산다. 그세상과 등지고 벗어나는 것은 안된다. 안된다기 보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어디든 거긴 세상일 것이니까 세상에서 벗어난 그세상은 어떤 세상인가라는 또 말장난을 하게 된다.
세상을 본다는 그 안목을 가지는 것이 이미 제왕으로서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우린 스스로 서고 주체적인 판단을 하며 살고 최소한 자기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작은 왕이다. 자기 삶에서만은 자기가 왕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있으니 그로인해 뒤섞인 관계이고 중층이고 복합적이고 어쩔 수 없는 구분과 구분 안되는 나의 의미를 가진다.
내가 나이지만 내가 아니기도 하다. 내 방이나 집이나 사는 지역이나 공동체나 사회나 국가나 지구나 이런 것이 나의 일부라서 나라고 오로지 구분되는 명확한 구획물은 없다. 나라고 정의할때 배제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고 그것을 배제하면 막상 내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내가 가능하게 전제된 전체에 눈을 뜨게 되기 시작하고 그러한 세상의 속들이 보이면 그러한 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구상하게 된다.
이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왜 우린 제왕이 되어야 하고 이걸 배워야 하는지는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다 설명하긴 그렇고 이렇다는 것이다. 하고말고는 알아서이고 강요하지 않는다. 원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다고 정말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가하고 두고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기로에서고 있다. 이전과 이후가 갈라지는 갈림인데 좋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기로에 서는 것은 처음도 아니고 뭔 이유가 있을 때마다 하는 소리라서 단순하게 이렇게만 말해선 뭔소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설명하면 이제 우리가 제국이 된다거나 우리나라만을 보고 살다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나 영향이나 전체 인류문명과 지구문화를 생각하며 경제활동이든 정칙활동이든 문화활동이든 해야 하는 시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위해 먹고 꾸미고 공부하고 놀고 생산하고 일벌이는 것이 아니고 그이상의 어떤 이상적인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되었다고 하겠다.
사실은 이미 이런 목적으로 오래전부터 한 것이긴 한데 이걸 한 것은 소수의 미리 앞을 내다보는 자들이 한 것이고 지금은 이러한 거대한 담론을 개개인이 모두 인지하고 살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기회거나 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나 발전단계상 이런 것을 거치기 마련이다. 이때 어떤 방향으로 어떤 체계로 하느냐로 그들의 국가정체성이 형성되었는데 우린 이제야 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벌써 되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있는 것이기도 하면서 상당히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이런 개념을 처음부터 가르치긴 했는데 그당시의 사람들이 시기가 되지 않으니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알아듣는데 곤란함이 있었다. 지금은 시기가 다르고 국제분위기도 다르고 상황이 이러하니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지고 있다.
이걸 미리 알고 대비하고 이리 되도록 준비시키고 그런 것이 우리가 할일인데 전혀 감을 못잡기도 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면에선 이걸 다시 적용하면 지금은 이러한데 앞으론 어찌 되는가라거나 앞으로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라거나 우린 어디로 갈 것인가라거나 뭘 할 수 있는 것인가라거나 어디까지 확장될 것이고 어디를 해야 하며 뭘 의미두어야 하고 무엇을 보여줄 수 있고 어떤 성취를 주고 어떤 문화가 되고 이런 것을 알아야 앞으로의 마구를 할 수 있는데 그걸 위해서도 지금을 잘 판단해야 한다. 뭘 할지는 지금 월 하고 있는 것인가를 알아야 해서이다.
지금이 제왕학이라고 하면서 개념을 규정해가고 있지만 사실 사후논리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러하니 이런식으로 하나의 관념을 형성하는데 그렇지만 이런 말이나 기미는 내가 그전부터 여기저기 써놓고 말하고 있던 것이라서 나에겐 이미 있던 관념이고 개념들인데 이렇게 대놓고 정의하면서 이렇진 않았을 뿐이지만 내 머릿속에선 항상 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걸 기준으로 삼고 지금껏 마구한다고 돌아다니고 이래야 하는데 저런 것이어야 하는데 하면서 다그치고 몰아 온 것이기도 해서이다.
과거엔 이런 것이 군자학이라든가 대의론이나 대인론이나 얼마든지 있었던 것인데 그 사람의 크기가 다름이고 크기를 다르게 하려는 것이고 크기가 다른 신분이고 하는 인간 불평등을 말하는 듯한 것들이기도 한 것이 있어왔지만 역시나 사람들은 곡해를 하는 것이고 이것이 지극히 곤란하고 어려운 것이라서 성취하고 완성한 사람들이 극소수라서 대개 허풍이나 이상론이나 잘난체가 되는 것이 되었다.
인간이 작아서 별거 없는 자들이 지가 정치한다고 하는 자들이 많은 이 시기엔 웃기는 짓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인간만을 보고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니 이런 것에 대한 학문이 있고 이념으로 작용하는 것이어야 하기도 해서 말하게 된다. 경제를 하든 정치를 하든 문화를 하든 가정에서 살든 취미생활을 하든 사소하고 고귀한 것을 구분없이 그모든 것에서 스스로 제왕이고 제왕으로서 격을 갖추고 체면을 차리며 사는 것이다.
제왕이 되기 위한 인격과 학문과 성취를 가져야 하고 멀리 보고 깊이 보는 혜안을 갖추는 것이어서 그에따른 행동이고 삶이라는 것이다.
우린 모두 왕인데 왕으로서 살지 않으면 결국 천박한 자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길 왕이라고 해서 무조건 왕도 아니고 또 그것에서 만족해서도 안되고 제왕으로서 이루어내지 않으면 제왕이 아니다. 넌 왕이다. 하지만 제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