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학/산천

의룡경

제라울 2020. 10. 8. 14:50

의룡경

 

산줄기가 흘러가는데 히말라야산이나 우리나라의 소백산 줄기나 그런 고산은 산이 진행하는 듯하고 너무 높기도 하고 별다른 머물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자리를 찾으려면 산이 흘러가다가 머무는 듯한 자세를 취할 때이다.

머무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 안정적인 지형을 의미하는데 흘러 흘러가는 듯한 산맥이라도 가다가 주춤거리는 듯도 하고 약간 두텁고 주위의 산들이 감싸기도 해서 멈춘 듯한 곳도 있게 되는데 그런 곳이다.

자리를 찾기 위해서 우선 보는 것이 멈추는 듯하는가 이다.

산이 물을 만나면 멈춘다고 하는 것이 산을 멈추는 하나의 방법인데 산이 산을 만나도 멈춘다. 스스로 힘이 다해서 멈출 수도 있다. 또 가다가 다른 산이나 물이나 다양한 서로 간의 조합으로 멈추는 자세를 취하는데 그런 곳을 의미한다.

 

이때 산이 감싸서 멈추게 되는 경우 그러니까 좌청룡이든 우백호든 이런 것이 세 겹이나 5겹이 감싸면 이곳이 자리가 된다고 책에 쓰여있는데 과거인들이 3,5,7,9라는 홀수를 좋아해서이다. 산봉우리도 3, 5로 좋다 하지 짝수는 그다지 안치는데 편견이다.

두 겹으로 감싸면 권이 되고 한 겹이면 부는 좀 되는 것이다.

이런 산들이 가다가다 산이 낮아지다가 물을 만나면 물에 대드는 것이 아니라 몸을 돌려 갈고리처럼 회전해서 뒤돌아서 멈추게 된다. 이걸 회룡 고조라고 하는데 이러면 안산이 멀리 내가 온 곳 출발한 그 조산(조상산)을 보게 되는데 이럴 경우만 안산이 멀어도 된다고 한다. 그 외는 안산이 바로 앞에 있어야 하는데 멀면 성취에 시간이 걸리고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회룡고조

 

진룡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다지 신경 쓸 것은 없다고 본다.

진룡이라면서 좌우가 호위하는 산이 있는 것을 찾는데 그런 것은 임금이나 지위가 있는 자들이 사람들에게 호위하며 있는 것이고 권력을 잡고 있는 모습인데 우리 일반인들은 그런 것을 굳이 바랄 것은 없다.

또 그런 것이 아니라도 권력을 잡기도 하는 세상이다. 물 하나 감싸서 지위가 오르고 산하나 이뻐서 오르기도 한다.

그러니 진룡이나 간룡이나 하면서 진가를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가게 하나 내서 먹고사는 것을 충족하면 되고 좀 더 확장해서 부자가 되면 더 좋고라면 이런 진룡 따위 구분할게 아니다. 아무 산이나 감싸주기만 해도 좋고 바람을 막아주기만 해도 좋으며 이런 정도만으로도 부자가 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이쁘게 된 산이면 한다. 왜냐하면 이상하게 생긴 산이 부자는 되는데 엿같은 인간이거나 남 등쳐서 돈을 버는 것일 수도 있어서이다.

 

간룡의 구분은 그래도 하면 산보는 것에 도움이 되고 의미 이해가 되는 것이 있다.

그래서 간룡은 주된 산줄기라고 하면 주된 사회의 위치라고 하는 것이다.

강물이 양쪽에서 따라가는 산줄기나 산들이 양쪽에서 따라가는 산줄기가 간룡이다. 대충 이런 것이면 되고 지나치게 이게 간룡이다 아니다를 구분하려고 애쓸 것은 없다. 비슷하면 비슷한 발응이 있을 것이니 그러면 되지 명확한 구분이라고 응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생긴 산줄기 그대로를 보면서 이해하고 발응 하는 것을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산경표에 의해 각종 정맥들을 구분해서 이름을 지어 놓아서 보기가 좋다. 이걸 기준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이미 간룡이 대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간룡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 뒷산이나 앞산이 어떤가가 더 중요하다. 그것이 나에게 부를 권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낮으면 낮아서 그런 방법으로 하면 되고 높으면 높은 방법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꼭 이런 형태이어야 하는 것은 없다. 

 

강물이 길게 길게 오는 것은 그만큼 크고 세력이 있는 땅이기도 하다. 물줄기의 길고 짧음으로 강약을 따지는 것이다.

그 강물이 원기이고 생명수이다. 길수록 저력이 있고 깊은 학문을 가진 사람이거나 자본이 있는 기업이거나 역사가 있는 나라가 된다. 

사람이면 학문이 깊거나 자본이 많거나 역사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 외 탐할 것이 이 세상에 무엇이던가

 

산에 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강물이 빗물이 시냇물이 기라서 물을 어디로 흐르게 하고 어디에 모이게 하고 얼마나 빨리 흐르게 하고 느리게 흐르게 하고 얼마나 깊고를 주는 것이 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을과 도시도 어떤 산맥이 와서 멈춘 것인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간룡일수록 큰 도시이고 지룡일수록 작은 도시이고 이왕이면 관청은 큰 산줄기가 와서 모인 곳에서 하면 좋다.

 

수구는 산들이나 바위가 막아주는 듯한 자세가 좋은데 수구를 보는 이유는 동하게 해서이다.

물이 나가고 들어오는 관문을 만든 곳이라서 어떻게 들고나고 가 어떻게 사회에 들고나고가 되어 수구가 좁게 되었을수록 중요하게 나가고 중요하게 들어온다. 수구가 넓으면 막 나가고 막 들어와서 제어가 안된다.

그리고 나가면서 산들의 모양이 어떤 신분이나 정체로 나가는가가 된다. 대문을 나가면서 하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지위이다. 그래서 수구의 산이나 형태를 보고 그 안쪽의 상태를 안다.

산들이 그 자리로 와서 낮아지면 숙이는 것이면 좋다. 머리를 들면 대들기도 하는 거라서 이왕이면 숙여주고 엎드리면 편하다고 책에 쓰여있다. 이런 것이 복종을 바라는 심리인데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고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체제라서 그러하다. 지금은 이런 복종적인 인간은 필요 없다. 

언제나 창조적이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야 살아남고 남과는 다른 재능과 기술과 발상을 요구하는 시대에선 이렇게 산줄기가 와서 엎드리고 숙이면서 복종하는 듯한 것보다 특립하고 똑바로 서있고 당당한 형태이어야 한다.

 

조산처럼 앞에 있는 산이 낮으면 낮은 곳으로 하고 높으면 높은 곳으로 한다.

앞이 너무 높으면 위로 가서 그 높은 것과 높이를 맞추어서 내가 압력을 받는 것처럼 되는 것을 피한다.

너무 앞이 낮은 산이면 내가 낮은 곳으로 가서 그 산하고 높이를 맞추어야 서로 교류가 되는 것이다. 아니면 어긋나는 상황이라서 이룸이 적다.

이게 맞추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조산이나 앞이 너무 높아서 나도 높을 곳으로 가고 싶지만 그런 장소가 나오지 않으면 감수 할 수밖에 없다. 압박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 그 압력이 더 오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그 장소의 의미를 상세히 봐야지 너무 한 두 가지만 보고 아쉬워할 건 없다.

 

그 자리에 바람이 불면 삭막한 인생이고 물이 없어지는 곳이면 되는 일이 없다.

바람은 살면서 어려움이 처하고 일마다 저항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앉는 자세라도 피하듯이 해서 바람을 이기고 해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물은 이루어진 결과가 잘 나지 않고 뭐든 모이지도 않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니 이럴 경우에도 수구라도 막아서 좁게 해주어야 한다. 땅이 물이 마르더라도 멀리 나가는 수구가 막히면 그런대로 일의 성취는 일어날 것이다. 이것도 안되면 바람이라도 머물게 하면서 대인관계를 추구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찾아가야 한다.

 

전순이 있는데 이건 손오공의 근두운 같다. 묘 앞에서 사람들이 서 있고 절하는 그 장소를 말하는데 그리고 그 밑으로 이중 턱처럼 두툼해지는 것이 있으면 더 좋다. 없으면 절약해서 살고 차근히 모으는 것이면 그런대로 되는 것이니 너무 과욕만 안 부리면 괜찮다.

내가 타고 있는 것이고 방석 같아 내가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줄기에 놓은 곳은 이 전순이 필요한데 그래야 안정적으로 산줄기에 올라타고 있는 듯이 보여서이다.

이런 방석 같은 것을 먼저 펼치고 거기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낮은 평원에서는 그다지 불필요하다. 이미 낮아서 그런 위험이나 불안해 보이지 않아서 이다.

 

산의 등과 얼굴을 구분해야 하는데

산의 앞뒤의 경사를 보고 급경사가 있는 쪽을 등이라고 하고 완만하면 얼굴이라고 한다.

산의 좌우나 앞뒤의 경사도로 보는 것이니 경사가 완만할수록 얼굴이다.

 

이런 식이다.

숫자가 있는 쪽이 얼굴이다.

그리고 3번은 봉우리가 살짝 3번 쪽으로 수그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고 대충 보면 그렇게 봉우리가 숙여주는 쪽이 얼굴이라고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물이 둥글게 감싸주면서 흘러가는 쪽이 얼굴이다.

그런데 막상 산을 보면 좌우나 앞뒤가 비슷하게 경사진 게 있다. 비슷하게 완만하거나 비슷하게 가파르다면 얼굴과 등이 비슷해서 다 얼굴로 보거나 다 등으로 보거나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울기가 완만하여 얼굴이라고 보았는데

반대쪽 경사가 좀 있는 쪽이 강물이 감싸면서 갈 수도 있다. 이런 경우도 두 방향 다 그에 따른 장소의 대응이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실제로 보게 되면 산이 등 쪽이라고 거기를 안 쓰지도 않게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대표적인데 산의 등 쪽에 우리나라의 최고 수장이 있으니 이걸 보면 등과 얼굴을 구분하지만 등이라고 버리는 것은 아니다.

구분은 할 수 있지만 버린다는 것은 아니다.

다 땅의 형태에 따른 용도나 의미가 있어서 그 의미에 맞으면 취하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산의 등 쪽을 지금 사회는 더 좋아한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복종적인 종교나 권위를 좋아하면 그런 곳을 간다. 산의 등이라는 것이 가파르니 그러한 위엄 있고 힘 있어 보이는 형태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기가 좋다고 할 수 있고 대기업이나 거대 조직도 그런 산의 등 쪽에 해당하는 위엄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경우 산의 등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가게를 열고 그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를 하게 된다. 바다 건너오듯이 해외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를 낼 경우 산과 가게 중간에 도로가 있게 하거나 조금 떨어져서 산의 위압에 거리 두는 것이다.

그리고 도로가 있다는 것은 묘의 주인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니 도로가 흉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영업하고 살면 된다.

그래서 무조건 산의 얼굴만을 취한다는 식의 과거 이런 책의 말은 그르다고 생각한다. 실재 그런 것이 지켜지지도 않을뿐더러 산을 오해하는 것이다. 즉 땅의 의미를 이해 못한 것이다.

산의 형태에 대한 의미로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지 버리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다.

산이 무서우면 무서운 것과 어떻게 관계하며 내 것을 이루고 살지를 고민하는 것이고 산이 험악하면 역시 그런 험악한 것과 어떻게 관계하고 서로 잘 살 궁리를 하면서 사는 것이다.

청와대가 그런 험하고 등 돌린 산이라서 우리가 그런 것과 살기 위해 해온 과정이 있다. 이것이 잘못이라거나 땅 때문에 망한다거나 하면서 할 말이 아니다. 우린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자기가 살아온 것을 부정하거나 이상한 재단을 하는 것은 교양 없는 짓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또 그런 삶에서 성취하고 존중하며 인생의 꿈을 꾸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때론 저항이고 질곡이고 극복하기 힘든 것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잘라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파도 안고 가는 것이 자기 인생이고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한 마음이다. 땅은 함께 할 대상이지 자신의 이득에 따라 재단할 곳이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좌우 전후의 평형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이건 설명이 많이 필요하다.

어느 땅이나 장소를 가든 땅은 기울어져 있다. 평평한 곳도 있는데 그렇더라도 물이 흘러갈 방향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흐르면 왼쪽으로 기운 것이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오른쪽으로 기운 것인데 이러한 기운 방향을 우선 살펴야 한다. 그게 아니라 평평한 곳이면 앞으로 가서 합쳐지면서 앞으로 흐르게 된다.

이렇게 앞에서 합쳐지고 앞으로 흐르게 되면 안산이 없으면 쭉 물이 빠져나가니 그것을 보고 알아야 한다.

1번그림

 

이렇게 1번으로 말하면 그 물이 흐르는 것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산이나 언덕이나 건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 균형이 맞는다고 한다.

물이 흐르는 방향과 상반되는 높은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이 흘러가는 쪽이 그 땅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그래서 그 낮은 곳을 채워주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건 마당이 기운 것인데 그 기운 것에 반대쪽에 저러한 언덕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완전한 평지라서 그다지 기울기가 없는 곳이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약간의 언덕이나 오르막에 집이 있을 경우 분명 그 땅의 기울기는 있다. 그러면 그 기울기에 보완해주는 상반되는 언덕이나 산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건 수구를 말하는데 저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가 제일 낮은 곳이라서 그 위에 산이 저렇게 솟아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된다.

 

이건 물이 빠져나가는 쪽만 산이 둘러쳐지지 않아서 그쪽이 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균형이 안 맞는 것이다. 그곳을 보완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개울에 다리를 만들고 정승을 만들고 하면서 보완한다.

 

산이나 물은 내쪽을 감싼 듯이 하는 것이 좋다. 산이 끝이 내쪽으로 살짝만 감싸도 좋고 감싼 듯이 해도 좋은데

 

이것처럼 산이 감싼 듯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완전히 구부러져서 감싸면 좋지만 실제로 이런 것도 많다.

이것도 감싼 것이다. 두 번째는 등고선으로 보면 저렇게 보이고 옆에서 보면 저렇게 산의 얼굴 쪽이 내가 있는 쪽으로 향해준 것이다. 바라만 봐도 좋다는 것이다.

 

책에는 또 암공수의 좋음을 말하는데 물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지만 크게 돌아서 나를 감싸고 있는 길한 물줄기가 더 좋다는 말도 있다.

뒷산 너머에서의 암공수와 안산 너머에서의 암공수든 어디든 암공수는 좋다.

낙동강이 부산에서 안 보이지만 그것 때문에 부산이 그리 발전한 거라고도 하는 식이다.

산이 가다가 멈출 때 이런 경우들이 있다.

1번은 양쪽의 물이 합쳐지면서 산이 멈추게 된 것이고

2번은 물이 돌아 산이 멈춘 것이다. 

2번을 회룡고조라고 한다. 용이 돌아서 할아버지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귀성은 1번 빨간색을 말하는데 산줄기가 흐르는 방향과는 다른 옆구리 쪽에서 나온 것인데 이러한 횡룡이라고 하는 것이 나오기 위해선 뒤에서 받쳐주는 산줄기가 있어야 한다. 뭔가 방향을 틀 힘을 주는 다른 힘이 있어야 한다.

이걸 귀성이라고 하고 나를 돕는 귀인 같은 것이다. 횡룡은 기존의 흐름에 다른 것을 하려는 것이 된다.

귀성은 그런 일에 도움 주는 귀인이나 은연중에 일이 잘 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귀성이 너무 크면 돕는 듯이 하다가 뺏어가는 거라서 안되고 너무 작으면 도움의 힘이 적어 아쉬운 것이다.

낙산은 귀성이 없다면 또 있어도 저 멀리서 역시나 받쳐주는 것을 말한다.

낙산이 붙어있는 이어짐이 없어서 그다지 아닐 거라고 볼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낙산 때문에 횡룡의 줄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기도 해서이다. 산과 들, 강 그런 자연은 이어짐이라는 개념이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라 응함이라는 것이어서 저 멀리 또 강 건너에 있다는 것이 하나의 산줄기가 방향을 틀게 되고 다른 산 줄기가 나오게도 하는 힘을 가진다. 그런 의미 규정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백리 먼 곳의 어떤 산 때문에 이곳의 물줄기나 산이 다른 형태를 가지게도 되고 천리 먼 강물 때문에 이곳의 산과 물이 다르게도 된다. 이것이 물리적인 힘의 작용이 실제로 있기도 하고 산과 물이 있다는 그것이 이미 미리 이곳에서 또 이런 식으로 자세를 취하게 되는 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응으로 산을 보게 되면 산의 의미가 다르게 되는데,

생긴 건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산맥이 방향을 틀기 위한 귀성 역할을 하는 것이거나 낙산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상대적이기도 해서 이 산에선 저산이 보조적인 역할이고 저산에선 이산이 보조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관악산이 화산이고 서울에 지대한 역할이 있는 것이지만 한남정맥은 아니다. 그 한남정맥이 김포 쪽으로 방향을 틀고 강화도까지 가게 하기 위한 받쳐주는 힘을 계속 밀어주고 있는 산이다.

즉 정맥이 아니라 곁가지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 주위에선 가장 높아 또 태조산의 역할을 하니 주요 기준이 되고 있는 산이다. 이렇듯 응은 서로 간의 입장에서 보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위대해도 지지대나 균형 맞추기 위한 부수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다른 쪽에선 심하면 살짝 보여서 도적산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산이 좋고 위대하다고 해도 멀리 선 그저 훔쳐가려는 도적일 뿐이다.

아무리 재벌이고 정치인이라고 해서 지들끼리는 대단하다고 추켜세워도 시민입장에선 세금을 빼앗는 자들이거나 내 세금으로 일하는 종일뿐일 수도 있고 교환해 달라고 아쉬운 소리 하는 자일 수도 있다. 그 관계의 구성은 입장 따라 다른 것이지 정해진 규칙은 없다.

과거엔 임금을 그렇게 상대적으로 나에게 종속된 관계일 수도 있다는 발상을 하지 못하거나 못하게 하려고 그런 말이 없지만 백성이 하늘이라고 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그것을 해소하고 있었다.

그래서 혈도 거기 있다면 그 혈을 내가 어떻게 이용할지도 되는 것이다. 어딘가 대혈이 있다고 하면 그 대혈을 이용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즉 그 대혈에 들어가는 것만이 그 대혈을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룡은 자기가 중심이지 다른 산이나 자리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쓰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산이나 자리든 다른 산이나 자리 입장에선 부수적이고 종속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자리도 자기가 중심이라서 그렇다.

이런 풍수의 사고엔 과거의 왕권 중심주의가 너무 진하게 드러나는데 이걸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혈을 왕취급하듯 하는데 어리석다.

다만 주위의 산과 물이 자리를 중심으로 감싸줄수록 좋고 배반하거나 멀어지거나 그다지 좋은 의도로 보이지 않는 형태들은 그만한 어려움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곳이든 완벽한 것은 없어서 웬만한 어려움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 그다지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다.

한양도 인왕산의 위엄을 생룡으로 하지 못하고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가는 줄기의 함몰로 인해 살인이 일어나는 것인데도 그냥 하는 것을 보면 웬만한 어려움은 그냥 한다. 어떤 것을 볼 거냐가 어떤 어려움을 감당할 거냐가 되겠다.

 

하편에선 유성정혈법이 좋다고 말하고

주위 산들이 높으면 높은 곳이 좋고 낮으면 낮은 곳이 좋다고 한다.

주위 산들과 높낮이를 맞추어야 한다. 청룡이나 백호가 낮으면 낮은 곳으로 간다. 안산이 낮아도 그렇다. 높으면 높은 곳으로 가는데 이렇게 높낮이를 맞추는 것은 엊비슷해야 교류가 되는 것이지 차이가 너무 나면 서로 위압이고 강압이지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같다. 다만 높이가 차이 나면 그런 상태로 교류이고 비슷하면 또 그런 상태로 하는 거지만 우선 이렇다고 책에 있다.

탐랑의 유혈엔 바람을 피하는 것을 신경 쓰고

무곡의 겸혈 자리는 뒤가 깨지거나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피한다.

거문의 와혈은 기울어지는 것을 피한다. 오목하게 생겼는데 이것이 기울면 안 된다.

파군의 첨창혈은 바깥에서 감싸주는 것이 필요하다.

염정의 여벽혈은 앞산이 둘러줘서 감싸야한다.

 

명당이 넓으면 관대한 사람이 나오고 안산이 자리를 핍박하면 우악스러운 사람이 나온다.

안산이 공손하면 공손한 사람이 나고

자리가 안산에 공손하면 아첨하는 사람이 난다.

안산이 험하면 험한 사람이 난다. 안산이 길하면 길한 사람이 난다.

 

삼겁은 자리의 기운을 누설시키는 세 가지인데 천겁, 인겁, 지겁을 말한다.

천겁은 자리를 만들고 더 나아가 작은 혈을 또 만들어서 누설하는 것을 말한다.

용이 흘러가며 멈추지를 않은 것이다.

지겁은 전순이 너무 크거나 뾰족하고 흉해서 누설시키는 것을 말하고 이때는 물이 가로막아주면 된다.

인겁은 조산이 너무 멀어 도움이 안 될 때이다. 조산이 멀면 뜻이 오래 걸리니 기다릴 수 있는 경우에 한다. 

 

의룡십문

질문 형식으로 문답하는 글이다.

 

1. 양자와 도사, 승려들의 대를 잇는 것을 묻는 것인데 혈육이 아닌 후손에 영향이 가느냐이다.

결론은 간다고 한다. 중요한 건 제사 지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마음의 이어 짐이라고 해야 한다. 조상을 생각하고 그 조상이 그 후손을 생각하는 마음이 서로 이어지는 것이지 뼈나 혈육이 아니다.

 

2. 자식들의 순서는 하도낙서에서 비롯한 것을 쓰는 것이다. 

왼쪽으로 물이 나가면 큰아들이 잘되고 오른쪽으로 나가면 막내가 잘되고 물이 한가운데 모이면 모든 자손들이 잘된다. 하는데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경복궁이 왼쪽으로 물이 나가지만 큰아들이 잘되지 않았다. 청룡이 생룡으로서 제 역할이 안 되는 것이 있어서도 그런데 이렇듯이 한 두 가지로 때려 맞추면서 점치듯이 말하는 것은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3. 자리 하나로 그 후손들이 몇 대 몇수십 대 잘되고 말고를 말하는 것은 과장이고 그런 것보다 여러 작은 자리들이 대대로 이어지면서 크게 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큰 자리 하나보다 작은 자리 여럿을 합치는 것이 더 쉽고 역량도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의 자리를 두고 거기서 대대손손 발복이 이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허풍이다.

그 다음대 또 그 다음대의 사람들이 또 나름의 자리를 가지게 되어 이어지는 것이고 그런 자리를 가질 만한 인품이 이어지는 것이다.

 

4. 양택과 음택의 힘의 차이는 없다.

 

5. 머물 곳은 물이 감싸고 산이 깨지지 않아야 한다. 양택은 좀 더 큰 자리이고 음택은 한 사람이 누울 정도의 작은 자리이다.

 

6. 주산 객산을 말하는데,

주산이 물이 감싸거나 산이 감싼 곳이고 객산은 흘러가고 등 돌리고 가는 거라서 주산을 중심으로 하고 객산을 객으로 해서 서로 간의 관계 설정을 한다.

 

7. 형국론 (사람이나 동물들로 보는 방법)도 안산이 있어야 하고 또 객산인지 구분해서 봐야 한다. 

 

8. 한쪽 자리가 발복 하면 다른 쪽이 쇠한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이게 모든 자리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자라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직렬연결과 병렬연결이 있듯이 이런 것도 비슷하지 않나 한다. 

 

9. 가혈과 화혈이라는 것이 있다 한다. 진혈의 뒤에는 가혈(가짜혈) 앞에는 화혈(꽃혈, 이것도 가짜혈) 이렇게 있다고 하는데 글쎄 좀 이상한 듯하다.

물론 어떤 자리가 뒤에도 비슷한 자리가 있고 앞에도 있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가짜인가 하면 가혈이나 화혈이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주위의 산들이 의미가 다르다면 혹 모르겠다.

진혈에서는 감싼 듯이 보이던 산이 가혈에선 등 돌리는 듯이 보일 수 있나? 그렇다면 가혈이지만 진혈에서 가까우면 그럴 리 없고 멀면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무조건 진혈 뒤는 가혈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봤을 때 주위의 산들이나 물길이 어떤가를 보고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자리만 진짜로 하려는 편집증으로도 보인다. 

큰아들 둘째 아들 막내아들이 있는데 둘째에게 아니면 막내나 큰아들이나 한 아들에게만 왕위를 물려주면 다른 아들은 뭐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민입장에선 그래도 왕족이고 평생 놀고먹는다. 지들 입장에선 왕이 되지 못해서 억울하고 한스러울지 모르지만 놀고 있는 것이다.. 왕에 대한 집착만 버리면 사는 것에 그다지 힘들게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도 되는 것을 왕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한 것이 안타까울지도

그래도 사람마다 힘든 게 다른 것이라서 남 입장에서 힘들다 아니다고 할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왕이 되지 못한 한을 몰라준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그릇이 그 정도 이기도 한 것도 있다. 왕이 목적인가 왕이 되어서 하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어선가

왕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왕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인가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면 그다음의 이상을 꿈꾸는 것이 또 인간인데 가지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면서 한 생을 마감하면 그게 너무 편협하다.

그런 사회를 만들고 좋다고 이어온 과거의 체제도 답답한 것이다. 왕이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것보다 다른 목적으로 사는 것이 얼마든지 있고 하는 삶의 다양성을 주지 못한 그 사회의 병폐이다.

이런 것이 혈자리에도 와서 진혈만이 진짜이고 다른 것은 억울하거나 패배자가 되게 하는 이런 논리는 좀 가당치 않다.

사회가 다르니 땅의 의미나 가치도 다르게 보는 것이고 같은 것에도 다른 의미부여를 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것을 임의로 하는 자가 도인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대적인 한계나 사회의 굴레를 넘을 생각은 없어서 그저 그 세상이 주는 대로만 받아먹고살다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도를 배우는 것이면 이러면 등신이라고 욕한다. 남이, 사회가, 시대가, 세상이 하는 대로만 사는 것은 우리의 갈길이 아니다.

이 양구빈은 도를 안 닦았나 시대적인 한계가 너무 많은데 ㅎㅎ

차이나인은 도닦아도 차이나인인가? 신선도 여권이 있고 국적도 있고 그러겠다.

 

10. 박환

산맥이 흘러가면서 박환을 하는데 대개의 의미는 거친 산에서 부드러운 산으로 변해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엔 구성으로 나누어서 어떤 구성산으로 되었느냐를 본다.

결국은 탐랑에서 우필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우필이 평지이니 산은 평지로 변화해서 나아가는 것이 된다.

중간에 다른 구성산으로 이리저리 변해도 결국 좌보우필로서 끝나게 된다.

 

위룡편

산맥 속을 흐르는 물줄기인데 물이 땅 밖으로 나오면 아래로 흐르고 땅속으로 들어가면 위로 흐르는 것이기도 해서 산 정상으로도 물이 오르고 산 따라 흘러가면서 산 중턱에 샘을 만들고 정상에도 만들고 하는 물이 있다.

이걸 위룡이라고 하는데 수맥과 비슷할 거라고도 볼 수 있는데 물이 산 따라서 흘러가면서 자리를 만들고 있다.

땅속엔 압력이 있는데 그러한 압력에 따라 물이 흘러가면서 방향을 가지는데 그런 땅속의 힘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땅 위의 물과 땅속의 물과 산들의 모양과 바위와 흙들 사이의 충돌과 힘의 겨룸과 주고받는 흐름의 길이다.

자미원은 1번 그림의 3처럼 물이 모여서 앞으로 흐르거나 오는 것을 말하고

태미원은 한강처럼 좌우로 감싸면서 큰 땅을 만든 것을 말하고

천시원은 평지처럼 여러 곳에서 물이 올 수 있는 곳이고

천원은 물이 궁수로 감싼 곳이다.

 

변성편

 

탐랑이 무곡에서 녹존으로 변하면 끝 부분에 봉우리가 있으면 녹존 대록이 된다.

청룡이 짧기도 백호가 짧기도 하는데 청룡 백호가 감싼 것이 아니라고 탓할 필요 없다.

때론 돌이 나오기도 한다.

 

바위들 사이에도 자리가 있는데 괴혈이라고 한다.

 

탐랑이 문곡으로 바뀔 때 쇠가죽과 비슷한데 이런 곳은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 없다.

평지로 된 곳에 언덕이 있는 거라서 논밭이 있고 두툼한 것이라 그렇다.

 

탐랑이 파군으로 바뀔 때 층층이 있어서 하늘로 오르는 계단 같기도 하다.

깃발처럼 생기면 귀족과 재상이 나온다.

 

파군이 탐랑으로 바뀌면 탐랑의 자리는 긴 창처럼 된다.

 

탐랑이 염정으로 바뀌면 소치혈이 되는데 청룡 백호가 감싸지 않아서 꺼리는데 제후와 재상들이 나오는 걸 모른다.

 

탐랑이 좌보성이 되면 연소혈을 맺는다.

산이 높으면 괘등혈이다.

 

탐랑이 파군성이 되면 삼지창 모양인데 다른 두 가지가 가운데를 감싼다.

 

그렇지 않고 탐랑이 다른 산으로 변하지 않으면 유혈이고

거문은 와혈이고

무곡은 비녀나 겸헐이고

녹존은 여벽혈이고

문곡은 장심혈이고

파군은 삼지창혈이고

좌보우필은 연소혈이다.

그외 도끼 혈이 있는데 직룡이든 횡룡이든 90도 꺾여서 있다.

 

 

단제수언

 

땅을 찾을 때 

처음은 용을 살피는 것이고

둘은 수구의 닫힘을 보는 것이다.

마을에 들어갈 때 처음 살피는 것이 수구이다. 수구를 막는 산들이 있고 이런 것이 나성인데 혈을 향해야 한다.

종이나 솥 모양이면 부자가 되고 붓이나 목형의 산이면 귀한 인물이 난다.

용감한 모습이면 장군이 나고 평평하고 작은 산이면 마을에서라도 이름 안다.

용은 머무는 듯한 자세를 살피는 것인데 산들을 잘 보면 그 산들이 향하는 곳이 있다.

이 산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보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닌데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보다 보면 그럴듯한 보는 방법이다.

 

중간에 역법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잘 모르겠다.

 

요풍(골짜기 바람이나 산이 거기만 낮아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있으면 낮은 곳으로 가서 바람을 피하게 하라

물이 합쳐지는 곳을 찾아 그 안쪽에 용이 있다.

그리고 회룡 고조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혈과 재혈(하관, 관을 묻는 곳)이 서로 다르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정말 이런가 하는 의문이 드는 곳이다.

턱에 혈이 있으면 뇌에 하고 백회에 침을 놓는 게 아니라 배꼽에 놓고 이런 말을 하면서

혈이 있는 곳에 하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나 위에 해야 한다고 한다.

내 생각엔 실제로 묘들을 보러 가면 혈과 묘가 서로 딱 맞추어서 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이 실수이기도 하고 땅의 모양으로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도 하고 그리고 일부러 그렇게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이 실수든 의도적이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것에도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혈을 앞에 두고 뒤에 재혈 하는 경우 그 무덤의 주인은 대개 하나의 일파를 만드는 사람이다.

큰 건 나라를 개국하거나 어떤 가문의 시조이거나 뭔가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의미가 되는 일을 한 경우이다.

혈을 뒤에 두고 재혈 한 경우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은 경우로 후원에 의해서 지위가 오르거나 살게 되는 일이 있어서이다.

누구의 도움으로 뭔가 된 경우이다.

좌에 혈을 두고 재혈 하면 학문과 정신적이고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한 경우이고 우에 혈을 두고 재혈 한 경우는 권력과 무와 장악하는 것이기도 현실적인 능력이 있어서도 그렇다.

이렇듯이 그 업적의 차이가 있는데 이렇듯이 혈과 재혈의 차이가 있게 된다.

 

 

이렇게 내가 의룡경을 맘대로 간추리고 설명한 것이다.

임의로 한 것이라서 이것이 의룡경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책으로 공부하기를 바라고 이건 그냥 참고이거나 도움이 될만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책에서 뭘 배울지는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할 문제이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사회체제가 있고 그로 인해 그 사회의 영향으로 그 당시의 사고체계는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의 구조대로 개개인의 사고 구조 역시 비슷하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할지는 각자가 다르지만 이런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지금은 사회체계가 다르니 과거와의 차이로 인해 달라진 것이 뭔지를 모르면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곡해하고 어설픈 학문 공부가 되는 것이니 이걸 명심하면서 이런 과거의 책들을 읽어야 한다.

작가의 세계관을 모르고 읽으면 "별 등신을 다 보겠네"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제왕학 > 산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맥법  (0) 2021.03.31
질문이 있어서 추가 설명을...  (0) 2020.12.02
우필  (0) 2020.07.05
파군  (0) 2020.07.05
문곡  (0) 202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