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론을 이 묘들을 위주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알아야 하냐고 생각한다면 다른 곳에서도 말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고 나름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이런 것을 하고는 있는데 굳이 다른 분들도 이런 것을 익히고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 부담이 없었으면 합니다.
나도 그다지 전문가는 아니라서 공부해가는 중이니 잘못된 이론일 수도 있는 것인데 차츰 다시 알게 되거나 잘못알게 된 것은 또 올리면서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굳이 전문 서적을 탐독하고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긴 한데
그런 시간도 여유도 없을 것이라서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하게 알도록 반복해서 쓰고 간단하게 쓰려고 하니
자꾸 보다보면 기본적인 것을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알려고하지 않고 기본 골격만이라도 알면 되는 거라서 올리는 글을 보면서 익숙해지면 더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말이지만 우리가 시신을 땅에 모시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라서 그런 접근은 사절하고,
다만 우선 산천(풍수)의 이론이 이러하니 그 기존의 있는 이론을 토대로 지식을 습득하고 나서 다른 것을 해야 해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 유명한 세종의 릉인데 세종은 세종대왕이라고 해야 뭔가 맞는 듯이 입에 붙어 버렸는데 "세종대왕" 뭔가 그럴듯합니다.
그럼 그 호칭에 맞는 곳에서 묻혀 있는지 볼까요?
우선 북성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주에 있지요 이 산이 멀리는 속리산에서 부터 올라온 거라고 대개는 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꼭 백두대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 땅이야 내가 모르니 그곳의 사정이고요
우리 나라는 백두대간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한줄기 라서 이걸 알아야 하지만 그것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정말 중요한건 산맥의 순서가 있어서 입니다.
산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물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물이고 그게 따라 가치가 정해지니까요
물자체가 가치이기도 합니다. 경제가 지위나 사건이나 일의 가치를 구분짓고 있으니까요
또 그전에 동해야 사건의 정체와 현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과거부터의 이론이 있고 이건 그럴듯하니까요
그래서 물이 흘러오는 곳의 산이 어떤 모양이냐가 물의 정체가 되고요 즉 험한 산에서 물이 오거나 그런 산을 거쳐오거나 하면 그러한 산의 의미가 동해 온다가 됩니다.
그리고 물이 시작하는 곳이나 오는 곳이 시간순서가 되는 것이라서 이걸 봐야 합니다.
그래서 백두대간으로 산이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오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그것을 알기위해선 물이 어떻게 산을 갈랐는지 알아야 하고 그러니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는 백두대간으로 그것을 해결했습니다.
신경준의 산경표에 나오지만 태조 이성계나 이방원이나 그들이 릉 조성 논의에도 이러한 한북정맥이나 한남정맥이 나온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땅의 개념일 것입니다.(조선실록에 있다는데 내가 확인한 것은 아님)
여긴 한남정맥이라고 합니다. 산맥이 이어져 가는 것엔 나름의 법칙이 있는데 한남정맥이라는 것은 한강의 남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큰 강을 중심으로 산이나 땅을 가르는 것입니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다른 산과 들의 족보를 가진다고 할까요 다른 줄기나 가문이 된다고 할까요 다른 맥락이라고 할까요 다른 이어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걸 철석같이 믿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고 우선 여기선 이 북성산이 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한남정맥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산맥이 서울의 입장에선 아래에서 올라오니 대드는 것이 되어 그 조상들이 역성적인 면이 있었다고 하면 넘 나간건지는 몰라도 그런건 우선 놔두고 암튼 지도에서 보듯이 북성산에서 나온 줄기가 뒤를 돌아보듯이 해서 다시 북성산을 향하는 곳에 세종의 릉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모랄까요 자기가 나온 산으로 다시 되돌아보는 것을 산천에선 회룡고조라고 합니다.
룡이 조상을 돌아본다는 것인데 이렇게 뒤로 도는 산으로 향을 해서 그렇습니다.
이렇듯 누가 먼저인가 혹은 부모인가를 알려면 백두대간을 알아야 하는 것이 됩니다.
이걸 엄청 좋다 아니다는 별문제입니다. 뒤돌았으니 미련이 있다는 것도 되고 복고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보수적이라고도 할 것이고 유교적으론 효자라고도 할 것입니다. 충성스럽다고도 하고 지나치게 하나를 품고 있다거나 그리워한다거나 하는 것도 되어서 여러가지 의미이지만 잘보면 되돌아서 뭔가를 본다가 됩니다. 그러한 마음이 사람마다 무엇을 보는지 그리워하는지 집착하는지가 다르겠지요 그래서인지 세종은 효자라 하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나라의 부강함이나 독립이나 자비나 너그러움이나 정의나 어떤 다른 꿈을 품고 있는데 이당시에 이 사람이 그걸 무엇으로 규정하고 개념화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것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 어느 왕도 하지 못한 그런 업적을 남기는 건 불가능하겠죠 그것을 추동한 그 무엇이 무엇일지 그건 더 연구해봐야 겠죠
그것이 이 회룡고조라는 커다른 형태로 땅은 보여주게 됩니다.
산의 모양에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고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산천을 이해하는데 도움도 됩니다.
너무 나가면 망상이 되거나 허황된 것이 되기도 하는데 그 적정한 선을 지켜가며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든다면 됩니다.
어떤 면에선 회룡고조가 문약한 면이 있습니다. 강력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되돌아서 마마보이 처럼도 보이니까요
때론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니면 스승이나 신이나 나름의 마음에 믿고 의지하는 것을 품고 오히려 더욱 고집스럽게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 되기도 하고 그건 다르겠지만 여기서 보듯이 회룡했다는 그 맥락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회룡을 어떻게 썼는지 그것이 다를 뿐입니다.
현대엔 타국에 가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엄밀히는 세종대왕릉을 영릉이라고 합니다. 英陵
효종대왕도 영릉인데 한문이 다릅니다. 寧陵
왕의 묘가 릉이라고 하고 그 앞에 붙이는 단어는 어떻게 생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후에 논의를 거쳐서 세종이라고 하는 칭호를 종묘에 하려고 하는 것이고 릉 이름도 그렇게 지어니나 ㅎㅎ
그래서 회룡이라는 것이 산줄기가 나아가다가 방향을 트는 것인데 이때 방향을 튼다는 것이 무조건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산줄기가 방향을 틀기 위해선 요도라고 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이건 산맥이 이리저리 몸을 틀때 그 반대편에서 지지해주는 산줄기를 말합니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받쳐주는 것이죠. 그리고 방향바꾸는 것과 상관없이 잡아주는 것이 있는데 그건 지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방향 바꾸는 것을 받쳐주는 것과 산맥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것이 있다고 해서 요도지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요도이든 지각이든 너무 길거나 크거나 하면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거라서 그것도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게 나쁘다기 보다 그런식의 이야기가 될거라는 거죠. 요도였는데 거꾸로 자리를 차지해서 주인이 되지 말라는 것도 없어서 지각도 그러하고요, 이런 것도 자연스럽게 있는 것이니 당연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역성혁명이 자연적인 것이지 인간의 탐욕은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더 좋게 했느냐는 또다른 가치판단이지만요
그런데 회룡은 단순히 방향을 조금 트는 정도가 아니라 뒤를 돌아야 하니 그 요도들도 많이 필요하고 강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릉뒤에서 있는 것은 따로 이름지어서 귀성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귀하게 보고 좋게 보는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다
다시 설명하면 빨간색의 용이 진행하는 것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에 파란색처럼 그 뒤를 지탱하는 것이 있게 됩니다. 이걸 요도라고 합니다.
이거 처럼 그냥 가지가 나누어진 것은 지각입니다.
다만 귀성은 여기 회룡고조처럼 릉이나 묘에서 뒤에서 지지하고 있는 산줄기를 말합니다. 꼭 회룡의 묘가 아니라도 모든 묘에서 이것이 있으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길면 오히려 설기되어 혈의 기운을 뺀다고 해서 너무 길면 안되고 적당하게 밀어주거나 받쳐주는 식으로 있으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이 부족해서 나약한 것이 되겠지요. 현실에선 뭔가 하려고 하지만 지지세력이나 후원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겠죠
위 그림을 보면 많이있죠. 그래서 이곳은 회룡하기에 어려움이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또 말이지만 이런 용어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산줄기를 볼때 이런 구조로 본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산이 나아가고 진행할 때 이런 옆에 가지 뻗은 것을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방향바꾸는 것을 돕는 가지가 있다. 나아가는 것을 돕는 것도 있다. 이런 서로 돕고 또는 방해하고 이런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회룡이라는 것이 그냥 산맥이 가다가 뒤돌았다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외 다른 설명을 한 것이 아니라서 다른 식으로 이름지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세종릉은 산모양이나 여러가지를 참고해서 봉황이나 금계나 모란이나 이런 것을 이용해서 이름을 짓기도 했나 봅니다.
아무튼 재미 있는 것중에 하나가 주변의 다른 산줄기들이 한곳으로 모여들 듯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에서 처럼 말입니다.
이것도 서적을 뒤지면 이름이 있을 것인데 사실 산천(풍수)엔 엄청난 용어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들을 외우기엔 지칠 정도지요 그런데 이렇게 외워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모르지만 난 그다지 안해도 된다는 입장입니다.
위의 그림에서처럼 이렇게 산줄기들이 모여옵니다. 이걸 볼 수 있으면 되고 그로인해 사람들이 많이 따를 것이라고 보거나 어떤 일을 추진하는데 이겨낼 수 있는 조력자들이 있을 거라고 보면 됩니다. 산줄기들이 모여오는 것처럼은 보이지만 그에 따라 물줄기도 한곳으로 모여지는 것처럼은 안보여서 무조건 다 순종한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물까지도 다 한곳으로 모여오듯이 된다면 뭐든 원하는 대로 된다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그리 쉬운 세상사는 아니니까 적당이 갖추어야지 너무 완비되면 그것도 그다지 좋다보기 어렵죠. 일에 저항이 없다면 일한게 아니라 그냥 세태에 따라 흘러간 것이 되니까요.
물이 안모인다는 것은 안모이게 하는 산줄기가 있거나 그런 형태이거나 하는 거라서 물만으로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또 보면 남한강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릉의 입장에서 물이 직충을 하는 것이 됩니다.
물이 릉에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이 직충으로 오는 것을 어떻게 극복해 내는냐가 관건이 된 땅이 됩니다. 다른 곳에서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위험이 있는데 가려져서 안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은 엄청 다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말행 할 것은 안보이는 것을 보고 준비하는 자는 그만한 그릇의 크기가 있다는 것이고 안보이니 모른다고 외면하는 것은 소인이 됩니다.
묘들을 보고 그 주인들의 일대기를 보면 이런 위기를 정면으로 보는냐 외면하는냐가 보이기도 합니다.
서애 유성룡의 하회마을은 뒤로 물이 오는데 그것을 외면했습니다. 그 물이 안보이니 모른다가 되는데 보인 다음에 그제서야 행동하는 좀 아쉬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아쉬움을 징비록이나 사후에라도 반성하는 생은 그사람이 그만한 또 그릇이기도 한 것이지만요
암튼 우선 물이 회룡이다 보니까 한곳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물이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 갈 것입니다. 그런데 북성산에서 세종릉으로 길게 회룡하는 것이 있어서 그 바깥쪽에서 물이 들어오거나 그쪽으로 물이 나가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물이 한 방향으로 향할 수 밖에 없죠.
물이 모여서 릉으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물이 모여서 한곳으로 빠지는 것인데 이 빠지는 물이 남한강의 충을 방어하는 제일 요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거나 쉽게 빠지면 그것도 내 능력과 권위 실력들이 쉽게 소모되고 빠지는 것이 되니 그것을 막기위해 섬같은 것이 막고 있습니다. 水口수구 즉 물의 입이라고 한문이 그럴건데 좀 이름이 이상하긴 한데 물이 빠지는 곳을 말하면 이런 곳에서 쉽게 빠지지 말라고 있는 것을 수구사라고 할 것입니다. 사라는 것이 모래 사沙인데 산천(풍수)에선 산을 사라고 합니다. 왜 사라고 하느냐는 과거엔 강가의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쌓아가거나 그림 그리며 배웠다고 해서 그렇다는데 그다지 신빙성이 안보이는데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도 합니다. (이게 우리나라 상황을 추리해서 하는 말인데 사라는 단어가 차이나에서 사용해서 문헌으로 온 것인데 그들 상황을 추리해야지 우리 상황으로 하면 이상한데요)
그리고 그림에서 이 수구사는 남한강이 충해오는 것도 일차적으로 막아주는 열할도 해서 역시나 좋군요.
이 물이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 엄청 중요합니다. 무조건 물이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가 산천의 첫째 관건입니다. 이것을 우선 외워두세요 "결단코 물은 못나가게 한다"입니다. 물론 정말 못나가면 썩어버리니 안되지만 그정도라는 것이죠.
그래서 지도로설명하면
우선 물이 이렇게 내려가는 것들이 있고 남한강과 만납니다.
세종릉에서 만나서 나간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서 아쉬운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소인같은 마음이고 그렇게 모여가는 것에 일조해서 하나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 되어서 좋은 것입니다.
이 세종대왕이 있어서 조선이나 지금우리나라가 얼마나 이득을 보는지 보면 알죠
자기 것으로 사유화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당시에 개념으로 정립하지는 않지만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욕망을 정립하고 언어로 하는 서구인들의 뻔뻔함이 웃기지만 그전에 행동이나 결과를 보면서 그 안의 진짜 욕망을 인정하고 보려는 문화가 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이 시냇물이나 강만이 아니라 비가 내렸을 때 그 빗물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 나가는가를 염두에 두면서 보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빨간색의 물이 나가는 것을 파란색의 산줄기가 막아서는 것이 되어 이것이 수구사 역할인데 물이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것이 관쇄되었다고 하는데 빗장을 잠근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이름보다 이렇게 물나가는 것을 방해할 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실이 있게 됩니다. 일이나 사건이나 매듭을 지어야 하나의 결과물이 되니까요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충의 큰 시야에서 이 땅을 보고 이제 릉으로 가봅시다.
이것이 세종릉에서 본 북성산입니다. 그래서 묘의 향을 정할 때 저산을 보게 했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회룡고조엔 안산이 없어도 된다고 합니다.
이 묘의 향을 정하는 것이 대단히 까다롭고 이론도 많고 애매하기도 한 것이라서 어려운데 그건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여기선 회룡고조이니 부모산을 보게 향을 하면 될 것입니다.
잘보면 앞으로 가로지르며 산이 있는데 이것이 백호입니다.
백호란 좌청룡 우백호라는 것인데 묘나 릉을 등지고 서서 앞을 봤을 때 오른쪽으로 감싼 산이 백호이고 왼쪽을 감싼 산이 청룡입니다.
무조건 혈이나 묘를 등지고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지도에서 보면 알지만 좀 백호가 밀고 나와서 앞에 지금 공사하는 곳이 명당이라는 곳인데, 명당이 일종의 릉의 앞마당을 말합니다. 이 명당이 내가 얼마나 넓은 영토를 가졌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고 있느냐 얼마나 큰 의지를 가졌느냐 얼마나 큰 세상을 꿈꾸느냐 이런 것이 됩니다.
그런데 위 지도를 보면 이 명당이 쭉 앞으로 나있는 것이 아니라 백호가 나와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있습니다.
정면으로 명당이 형성된게 아니라 왼쪽으로 기울었죠.
방향으로 봐서는 북성산을 바라보아야 하니까 백호가 방해하면 안되는데 의외로 백호가 북성산을 바라보는 것에 도움주지 않고 적극적으로 막고 나서는 듯하기도 합니다.
다르게는 백호가 가까워서 백호와 더 어울리기가 쉽게도 됩니다.
이러면 백호가 내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고 때론 방해도 하는 듯한 것이 됩니다.
방해는 북성산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죠 그러니까 아버지를 원하는데 주변이 안된다고 할 수 있는거죠.
아니면 조상이나 민족을 위하고 싶은데 방대하는 세력들이 있다고도 할 수 있고요.
역시 이것도 하나의 긴장입니다. 맘대로 안된다는 거죠. 왕인데 맘대로 못하게 하는 견제가 있다는 것이 되어서 차라리 성군이 되는데 도움된거 아닐까요? 제맘대로 하면 잘못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이 되니까요.
이방원이 왕후의 장인이나 오빠들을 죽이기도 했으니 그 중간에서 애매하달까 뭐 그런 것도 있나봅니다.
저 릉의 뒤에 입수용이 보이는데 가서 찍지는 못했습니다. 뒤로 돌아가려니 방송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ㅎㅎ
그다음은 효종대왕릉을 가보도록 하죠.
여기서 궁금한 건 이 릉도 회룡고조이냐 아니냐 입니다.
비슷하게 되돌아서 형성되었는데 왜 효종릉은 회룡고조라고 안하냐 입니다.
근데 제 개인적으론 회룡고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효종릉에서 보면 북성산이 안보입니다. 우선 이게 걸리는 것이죠. 그리고 회룡하면서 산맥이 돌아가는데 요도 그러니까 귀성이 그것을 받쳐주는 것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돈 것은 돈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회룡고조라서 고조가 되지는 않지만 회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효종도 효자라더군요. 더 나아가 뭔가 품은 의지가 있는데 그게 음.
다만 귀성의 부족으로 지지자가 부족하고 후원해조는 사람이나 역량이 부족하게 될거라고 봅니다.
보는 봐와 같이 북성산이 안보입니다.
저 밑에 두 사람은 우리가 또 릉뒤로 갈까봐 감시하려고 온거 같습니다. ㅎㅎ 우리 올때 와서는 할 일 없이 저기 있었거든요.
회룡이라서 그런지 효종은 어릴때 즉 과거를 되씹으면서 청을 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북벌정책이라는데 자꾸 과거에 집착하게 하는 것이 되겠죠. 다만 귀성의 부족과 저 남한강의 직충을 감당하기는 어려운데 아마 청룡쪽의 두텁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됩니다.
게다가 이것이 이 릉 조성시기부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금천교라고 해서 왕릉은 다리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꼭 왕릉이 아니라도 묘의 앞에서 물줄기가 있습니다. 계곡이 있으니 물이 내려오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런데 위 그림처럼 물이 되어 있으면 안됩니다.
다시말해 나무가 있는 쪽에 릉이 있습니다. 릉 입장에서 보면 물이 뒤돌아서 가는 것이 됩니다. 배반한다는 것이죠. 이러면 안됩니다. 날 배신하는 것입니다. 뭐가요? 뭐든요 암튼 효종은 갑자기 죽습니다. 생명이 배신한거죠.
저번에 간 김유신묘를 보자구요
김유신묘에서 볼때 물이 안으로 휘어 있는 것입니다. 배반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 한끝차이가 성공해서 내것으로 쟁취하냐 못하냐를 가늠합니다.
물로 효종의 릉의 물길이 작은 것이고 그다지 저 조그만한 물 길리 그렇게 확대해석하냐 겠지만 바위하나 물길 방향하나 끄트머리 하나로 산천은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작은 것이 큰차이를 만듭니다. 세상의 일은 작은 차이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주역의 일양시생이 아닌가요?
이걸 역수라고 합니다. 다른 물줄기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인데 저 상대편 물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공사하는 사람이나 관리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끝을 만들었을 것이지만 지금 저걸 바꾼다고 효종이 살아날 것은 아닌데 그다지 신경쓸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나 이제 뭔가 하려고 할때 또 주변의 물길을 볼때 또는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이 어떻게 방향을 하고 있는냐를 작은 것을 보고서도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주의깊게 보면 산천보는 것이 재미 있을 것입니다.
여기 효종의 릉에서 물길이 이렇게 방향을 한 것에 청룡쪽에서 밀고와서 그런데 이 청용 끝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걸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못찍었습니다.
다음지도에선 이렇게 나오는데 직접 찍은 것을 봐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도 있습니다.
내청룡인데 안쪽으로 향해서 좀 불의의 사건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은 교통사고를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하거나 뭔가 놀랄일이나 구설이 생기지 않을까 하죠.
옥수진경에선 개구룡이라고 해서 관재나 구설이라 그런 거라고 합니다.
입이라서 시비걸리고 그러다보면 서로 송사하고 그런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