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동구릉 간 답사여흥기와 풍수도움을 위해 설명을 하려고
글을 씁니다.
근데 저도 풍수를 답사하는 것을 그다지 많이 한게 아니라서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으니
참고 해서 보시고 오류가 있으면 수정하거나 나름의 이론을 공부하면서 비판적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것들도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거까지 하면 너무 복잡하니
풍수적인 설명만 한정해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이런 글을 쓸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니어서 사진을 내가 원하는 것을 찍지 못한게 아쉽고 그래서 설명이 정밀하지 못한게 아쉬운데 차차 나아지겠습니다.
우선 이 동구릉이 산맥이 어떻게 흘러온 것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그런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검색을 이용하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게 맞는지 알수가 없는데 여긴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동구릉을 한번 갔는데 사실 풍수 공부하는 사람이 릉이나 묘를 한 번 가고 끝인 경우는 없고 대개 공부 과정에서 수시로 가면서 보고 또 보고 깊이를 가지고 나름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서 한 번 보고 안다는 듯이 말하기는 너무 성급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이거저거 정신없이 봤지 집에 와서 이거 못보고 저거 확인 못하고 이러면서 아쉬움이 너무 남기도 했습니다. 릉이 많아서도 그렇고 준비 부족으로도 그렇고 맘대로 오르고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눈치도 보이고도 그랬습니다.
패철은 전혀 안보았는데 패쳘이나 이기적인 풍수를 연구는 하는데 아직은 땅을 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고 그다음에 이기적인 방법을 적용하려고 하고 있어서 시기상조라서 그냥 땅을 보는 것만 했습니다.
그리고 왕숙천이 곁에 있는데 지도로 보면 이 동구릉이 있는 산이 검암산인지 구릉산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곳의 전체 국의 성격이 좀 이상한거 아닌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왕숙천의 반궁수를 산이 막아주고 있어서 견디겠지만 그렇다고 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그 영향을 어떻게 견디느냐로 인생이 다른 것이 아닐까도 생각했습니다.
멀리는 한강도 있는데 이것이 암공수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길한 모습이라기 보다 역시 위협이 되는 것이고 장래에 닥칠 것이 될 거로 봅니다. 멀리 있어서 그런데 이렇게 당장 닥치는 것도 아닌 것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 몰라도 왕이라서 문제입니다. 왕숙천이든 한강이든 왕의 입장에서 안보이는 일 이나 장래에 올 일에 대비는 해야 합니다. 일반인이면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그다지 문제 없을 수도 있어서 당장의 일상이나 가정에만 신경쓰기도 힘겨운 것입니다. 하지만 왕은 자기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위치라서 거대한 위기나 담론이나 멀리보는 시야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인도 인생전체에 이러한 영향으로 벗어나기 힘들 것인데 그저 운명의 장난으로 여기고 살면 될지 모르지만 왕은 국가 전체의 문제이니 대비해야 하고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마 일반인은 이런 곳에서 사는 거라면 시일이 흐른후에나 자손대에서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사건이나 후손이 나올거라고 봅니다. 영향의 크고 작음 멀고 가까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다르겠지만 있을 건 있게 될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땅이 이런 긴장과 관계에서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수릉으로 첫 동구릉을 보겠습니다.
문조와 신정왕후의 릉입니다.
신정왕후는 고종을 수렴청정하고 천수를 누리기 까지 해서 이 릉은 이 신정왕후의 것이지 요절한 문조의 인생으론 들어올 수 없어 보인다.
위의 사진이 입수라고 하거나 잉이라고 하거나 그런 것인데 보기가 너무 이쁘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처음 이걸 보고 나름 놀랐는데 이렇게 잘생긴 입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놀람이었는데 다른 릉들을 보면서 뭔가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자연적으로 어느정도 있을 수 있다해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섞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근데 이 수릉은 좋은거 같습니다.
이 입수 뒤로 해서 룡맥을 따라 올라가보았는데 결속처도 있고 굴곡도 있어서 잘 만들어진거 같아 보였습니다.
결속처란 결인속기처라는 것을 줄여서 하는 말인데 잘록하게 좁아지는 산맥이나 산줄기 위아래로 기복이 있거나 좌우로 좁아지거나 그런 것인데 이런 것이 있어야 그 앞으로 혈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다음에 간 곳이 현릉인데 현덕왕후와 문종입니다.
그런데 이 왕후와 문종 사이에 이런 물이 흐르는데 좀 더럽게 보였습니다.
이게 릉 조성 당시부터 이랬는지 지금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이날은 이랬습니다.
둘 사이의 힘든 일이 보이는 거 같아 기분이 별로이게 됩니다.
이 두릉의 입수는 좀 지저분했습니다. 이끼도 낀 것도 있어서 더 그랬습니다. 다른 릉은 관리도 하고 그래서인지 이쁘게 되어 있었는데 여기는 왜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관리를 했을것인데도 그다지 이쁘다고 보기 어려운 입수입니다. 아까 수릉에 비하면 너무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크고 튼튼하니 나쁘다기 보다 흙이 잔디도 없고 관리소홀인지 모르겠습니다. 묘뒤가 튼튼하면 가문은 좋다는 것이라고 대충 하는데 그렇긴 합니다.
명당이 깨끗하지 않고 물줄기가 노란선으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길게 된 선 안쪽이 자기 껏인데 그 안에 다른 선들이 나 있으니 마당이 그곳에서 움직이기가 불편하다는 식입니다.
현덕왕후의 앞마당 즉 명당이라는 곳의 모습인데 물줄기 흔적이 보이는 것이 명당에 사람이 있기 어렵게 된 듯합니다. 저런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는 어려운데(예를 들어서 말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건 자기 지위가 부실하다는 것이 되어서 원래 풍수에서 명당은 중요합니다. 이곳이 넓고 깨끗해야 그만큼 지위가 있고 부가 있게 됩니다. 사주로 말하면 재가 있는 것이고 부하직원, 친구, 지지자, 동료, 영역이나 활동공간 같이 것이 되어 그렇습니다. 그런게 그런 곳이 저러하니 이 릉의 주인은 그다지 서 있을 땅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 활동영역이라는 것이 친구, 동료, 사람들도 많고 하면 그만한 황동영역이 있다는 것이고 땅으로도 영역이 있거나 지식이든 무엇이든 그런 영역인데 이것이 그리 좋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땅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은 분명 사후논리라서 맘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맞고 틀리고는 알아서들 이해하시고 그냥 재미로 들어두면 됩니다.
그런데 이 긴 선의 물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아까의 수릉의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원진수가 됩니다. 이렇게 릉이나 묘 곁에 있는 물을 원진수라고 하는게 이게 너무 빨리 흐르면 설기 됩니다. 일종의 진기가 다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 다 나가고 수명 짧고 병들고 직장 짤리고 요절하고 이런식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며 이 원진수가 너무 길면 복이 응하는게 늦는다고도 합니다.
간단히 이 물이 너무 빨리 흐르면 그만큼 빠져나간다. 뭔가라도 빠진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빨리 흐른다는 것은 경사가 졌다는 것이거나 물이 양이 많다는 것인데 이런걸 유심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수릉의 원진수이다. 이게 길게 길게 굴곡지면서 흘러가서 이 왕후의 길고 오래산거나 왕 부럽지 않은 권세를 누리는 것이 되는 자기 능력이 됩니다. 근데 그 능력이 실제 어떤 모습일까? 얼굴이 이쁘나? 말을 잘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나? 아님 포근해서 기대게 만드나? 위엄이 남달라 사람을 끄나? 뭘까요?
그 다음이 건원릉 입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찍었는데 이것도 습관이 안되서 그냥 보고 저거 좋다 하고 내려오고 이건 이러네 하고 돌아서 와서 설명할 사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담엔 좀더 찍어야지 다짐을 하면서, 건원릉을 봅니다.
아마 풍수학계에선 이 건원릉이 명당이냐 아니냐고 설왕설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보는 방식에 따라 같은 것을 두고도 이렇게 다르니 이 학문이 어려운건가 봅니다.
우선 안산에 좌향을 맞춘거 같지는 않고 삼합수법으로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수구에 그런대로 맞아서 묘향묘파일까?
하륜이 지리신법에 근거해서 했다고 하는데 사실 난 아직 좌향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무학대사가 점지 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 것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릉을 높게 쌓아 올린 흙언덕을 사초지라고 하는데 모든 왕릉은 와겸유돌이라는 혈의 형태중에 오직 유혈만을 고집합니다. 이것이 밑에세 우러러 보게 만들어서인지 적통을 승계하는 법에 잘 맞아서 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걸 너무 고집해서 생기는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위로 오를수록 귀가 되고 아래로 갈수록 부가 더 발하는건 있습니다.
그래서 가게를 내어도 높은 지대로 가면 좀 고부가가치 가게를 내고 아래로 갈수록 범용성의 것을 파는 가게가 될지도 모릅니다.
건원릉을 옆에서 찍은 것인데 사초지가 쑥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용맥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아래에서 정자각까지도 약간 둥글게 볼록합니다.
우선 이 정자각이 너무 멀리 떨어진 것이 의심스럽 습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둘째치고 왜 떨어지게 한 것일까요?
이 사진 처럼 사초지에서 정자각이 떨어져 있다.
이 불룩한 중앙의 잔디가 용맥이 흘러간 듯이 보이는데 이게 자연적인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 그건 확인하지 못하겠습니다. 근데 자연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다른 문제가 있는데 이 길따라 기운이 흘러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 정자각 쯤에서 혈이 맺혀지는데 이 릉 말고도 릉이 아니라 정자각에 혈이 맺히는 곳이 더 있었습니다.
그럼 일부로 정자각을 떨어뜨린 것인가요?
우떤식으로든 유혈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애매머시기 하고 그냥 평지에 크게 만들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고대, 즉 삼국시대는 그랬던거 같은데 언제부턴가 굳이 이런 산위에 올리려고만 합니다.
암튼 점점 릉의 이쁜 풍수적 형태들이 인위적인 것이 아닐까 의심이 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수법으로 말하면 혈 앞에 이렇게 물이 좌우로 나뉘어지게 하는 것은 분류수라고 하여 자손이 패역질하는 것이 되는데 이게 왜이럴까요? 이건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아깝습니다.
그리고 이 정자각에 대한 설이 있는데 왜 丁자 모양의 정자각일까요?
여러 설이 있겠는데 장용훈 이라는 풍수가의 말이 제일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게 축좌 정향의 정의 방향에 놓은 거라서 정자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정향이라는 것이 꼭 패철의 정자라기 보다 정남쪽에서 약간 오른쪽인데 원래 방향이라는 것이 나침판대로 무조건 저기가 남쪽이라는 것이 아니라 집이든 무덤이든 그 앞이 남쪽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이 뒤에 있으면 거기가 무조건 북쪽이라는 것이죠산이 남쪽에 있든 동쪽에 있든 상관없이 뒤가 북쪽이다.
그래서 왕릉도 릉의 정남쪽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정자각을 둔다 합니다.
그럼 왜 이런 정향으로 하냐하면 종묘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라죠
이건 목릉의 인목왕후릉에 올라서 찍은 전순인데 전순은 턱이나 턱의 아래 살이 두툼하게 있는 것과 같아서
기운이 더 내려가는 것을 막는 역할이고 모아주는 역할 같아서 돈이 축적되고 자손이 건강하고 잘 낳는다는 것이 됩니다. 다른 릉은 여길 오르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못보았는데 이곳은 할 수 있어서 올라서 보니 전순이 너무 알음답다. 이거보고도 놀랐는데 이런 전순이 있나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도 인위적인 사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것참 어디까지 자연스러운 것인지 어렵습니다
선조의 릉이나 의인왕후의 릉을 뒤로 돌아가서 산맥이나 현무봉을 확인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이 두 릉이 횡룡입수로 보이는데 의인왕후 릉은 귀성이나 낙산이 정확하게 맞지 않아 보이고(그래도 귀성이고 낙산은 낙산일거 같습니다.) 선조는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데 입수가 직선으로 들어와 성격이 단순한가요?
근데 전체 국세가 그다지 균형 있어 보이지도 않고 치우친 듯한 명당이 좀 그랬습니다. 사람을 포용하고 많은 지지를 얻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안산이 일자문성같아 어떻게 보면 칼이고 어떻게 보면 책상이고 그렇게 일자로 쭉이어져 있는 산이 안산으로 있으니 이것도 볼만합니다.
그다음 휘릉을 갔는데 이분의 일대기를 보니 참 여느 왕보다도 나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세가 전체적으로 좌우 균형이 좋았고 둥글게 감싸서 아득합니다.
안산이 아미사같이 이쁜 곡선을 이루어 그래서 왕비가 되고 대비가 되어 오래 유지했나 싶기도 했습니다.
입수의 잉이 곡장을 넘어서까지 이어지게 만들어서 이게 뭔가 싶어서 찍었습니다.
사진으론 확인이 어렵네 ㅠ
암튼 그랬습니다.
그다음이 또 유명한 영조릉인 원릉입니다.
이때쯤 우린 무더위와 땡볕과 허기짐으로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기를 안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로들 니가 가라고 미루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봐도 입수가 이쁘게 있습니다. 그런데 보니 좌청룡이 마땅이 없습니다.
이상한데 그 대단한 영조인데 이렇게 릉이 허술한가? 내청룡이나 내백호가 없다니 그럼 뭘로 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결국 막아놓은 줄을 넘어 오르게 했습니다.
이건 사초인데 이렇게 전순이 길게 내려오는 것도 참 별납니다. 그래서 오래 살았나요?
아마 전순보다 후룡이 엄청 길어서 오래 살았을 거 같습니다. 아마 후룡과 전순을 어디쯤 잘라서 릉을 만들지 고심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절법이라는 어려운 용어가 있긴한데 흠
양쪽으로 용맥을 찍은 것인데 사진으론 굴곡이 잘 안보이는데 이렇게 길고 골국 있는 릉은 이것이 첨입니다.
오직 혼자 잘난 것입니다. 내맥이 이렇게 좌우 흔들고 내려오니 머리 하나는 좋았을 거 같습니다.
학의 무릎처럼 생긴 맥이 아니라 좌우로 흔드는 맥입니다. 이 용맥하나로 내청룡내백호를 이기고도 남았는가 봅니다.
하나더 재미있는건 이게 내청룡이나 내백호가 없어서 돌혈처럼도 되고 뱀처럼도 되고 그렇습니다. 용맥을 보고 가던중 뒤돌아보니 저 용맥에서 노루일 것인데 그것이 지나갔습니다. 방위로 병이 사슴이고 정이 노루이며 이들은 돌혈입니다.
그다음은 경릉인데 힘들고 지쳐서 더이상 오르지 못하고 정자각에서 발을 돌려 숭릉으로 갔습니다.
이 릉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아래 있을 때와 위로 올랐을 때의 안산이 달라서 향을 정확히 안산으로 한건지 잘모르겠고 한쪽이 요풍이 불오는 듯이 보이는데 가족의 지지중에 어려움이 있었을까 청룡쪽으로 바람이 불어올거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혜릉을 갔는데 홍살문 앞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 릉은 어이없었습니다.
무슨 찐따도 아니고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어진 릉도 다 있나 할 정도로 뭔가 이상했습니다.
단의왕후, 릉이라도 만든어주니 고맙다 하라는 것인가 이런 하다만 릉을 만들어 놓다니 ㅠㅠ
숭릉이나 혜릉에서 보면 왕숙천이 사페수처럼 보입니다. 물이 이쪽으로 안오고 멀리서 도망가는데 이러면 내껄 빼앗긴다가 됩니다. 좌천이나 잘리거나 손재가 나겠는데, 현종은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태어나서 액댐이 된건지 자리가 좋은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효종이 결국 북벌을 못한 것으로 된건지 아무튼 그래도 나름 잘되었던 거 같은데 힘든게 없던건 아니겠지 그런데 이 혜릉은 참 제대로 당한건가 ㅠㅠ남편이 왕이 되기도 전에 죽어서 뭘 누려보지도 못했네요ㅠ
향이 달라서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혜릉은 물이 멀어지면서 가는 듯하고 숭릉은 궁수가 되어 길한 물이 됩니다. 이건 분명 엄청 다른 것입니다. 숭릉은 향을 물길이 저러한곳에 해야 할 정도로 길한 향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여기가 왕이 될만한 릉이냐 하는 것인데
이건 접근법이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왕이 아닌 상태에서 왕이 되는 과정을 겪는 사람이냐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그냥 왕이 되는 자식이냐
왕에게 시집가서 왕후가 되는 것이냐
이런건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왕이 아닌자가 왕이 되는 자가 자리가 제일 거창하고 또 거칠고 웅장하겠고 살기도 있을 겁니다.
역적짓을 한거지 그만한 살생과 독선적인 면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게 아닌 왕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출생이 좋은 것이니 왕같은 위엄으로 접근 할게 아닌거죠
또 왕비의 경우엔 신분 좋은 자에게 시집가서 출세하는 것이니 이것도 또한 다릅니다.
여기는 이런 세가지 경우가 다 있습니다.
건원릉은 이성계이니 역성혁명을 한 것이고 그로인해 본인과 자식들이 지들끼리도 죽이고 또 무수히 사람을 죽였습니다.
건원릉을 어찌 볼지는 또 차차 보충해서 말해야 겠죠 한 번 가보고 다 아는 듯이 하기엔 좀
그리고 다른 릉들도 그다지 대단하기보다 금수저 물고 나서 그렇게 산것이 일단 맞을거 같습니다.
그러니 그리 대단한 혈이라고 하기도 그렇죠
좋은 혈이다아니다가 아니라 금수저 문다 아니다. 그래서 잘 이어 받을 수 있다 아니다.
그런 정도겠죠
거기에 이곳으로 오는 맥이 있는데 불암산에서 육사를 지나 오는데 이걸 과협이라고 하겠죠
지도에선 육사에 골프장이 있는데 육사생의 취미인지 대가리들의 취미인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역겹긴 합니다.
암튼 이곳이 기맥이 이어지는 과협인데 과협의 중요성은 여기가 성패를 좌우한다 일의 성격을 좌우한다.고 하겠는데
이곳을 육사가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출신이나 군인이 과거와의 전통을 과감하게 막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면 좀 이상한가
그건 좋은데 조선이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은 아니라서
지나간 왕조를 그리워하거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은 미친 것이니까
왕이라는 것을 위해 시민들을 우민화하는 그런 나라가 다시 올 수 없습니다.
육사쪽 산이 과협으로 거감괘 중에 역룡으로 보이는데 과거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역적이 나는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