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학/산천

태조산

제라울 2019. 4. 10. 15:37

풍수학에 태조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산의 조종이라고 하나 산의 근원이라고 하나 그런식인데 모든 산이 거기서부터 비롯되며 산의 조상이라는 의미일것도 같은데 과거엔 곤륜에서 산이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걸 지금은 조금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은 히말라야나 에베르스트 산이거나 그런 식으로 말합니다.

과거엔 차이나에게 굴종하던 시대라 그들의 체계로 학문을 하니 그들이 하는 말이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니 차이나에서부터 산이 시작하고 학문이 시작하고 세상이 시작하고 하면서 거기에 자기의 혼을 바치고 자기뿐만이 아니라 나라의 백성까지 그래야 하며 반항하면 죽였습니다. 멍청하고 거기에 잔인하기까지 한 시대였죠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도 이것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문에서 다른 외국어로 바꾸면 달라지는게 있는가요 결국은 다른 나라에 자기의 정신을 던져주는 것은 같을 것인데요

꼭 남의 사상이나 학문을 따라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시대의 변화를 보고 말하는게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나의 좆대가리에 복종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의 중추적인 기둥을 정하고 거기에 다른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것은 검토해 봐야 하는 사상이 된 시대입니다.

그런면에서 백두대간도 비판적으로 해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산맥이 백두산을 근원으로 해서 우리나라는 백두산이 태조산이라고 합니다. 역시나 하나의 기둥에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여러 정맥이 있고 그 여러 정맥이 평등하게 서로 대등하게 볼 순 없는 것일까요?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사상인가요?

산이 높아야 위대한 것이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정말 산이 커야지만 위대한 인물이 나오고 위대한 혈이 되나요?

지금 세상을 지도하는 인물들이 그런 큰 산에서 태어났거나 그런 혈에서 태어난사람들인가요?

가까이 차이나나 멀리 미국이나 유럽이나 지도자들의 태어나고 살고 있는 곳이 그렇게 산이 크고 위대한가요?

우리나라만해도 근래의 대통령중에 몇이나 섬에서 태어났나요?

작다못해 섬인데 그런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굳이 크고 높은 산이 중심이고 조종이라고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작고 낮은 곳에서 나온 인물이 세상을 지도한다면 작고 낮은 산이 세상을 지도한다고 해도 되는 것이 풍수적인 것이 아닌가요?

말락처에서의 혈이 더 강하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래서 섬이 백두대간에서 마지막에 해당하는 곳이니 강한 기운이 있어서 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이건 범주 오류입니다. 말락처라는 것이 한 국의 지역에서 초락 중락 말락으라고 보는 그런식으로 혈이 순차적으로 생겨날때 하는 말이지 거국적인 정맥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범주를 넘나들며 광의적으로 보는 방법도 있으니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식이면 낮고 보잘 것없는 것을 기준으로 즉 말락을 기준으로 산맥이나 용맥을 규정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안하잖아요 말락을 기준으로 용맥을 보는 것이 있던가요? 아마 이것을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한때 모든 것은 하나의 중심이 있고 나머지는 그 중심을 위해 있는 들러리로 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문이든지 이런식의 체계로 나누고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간단한 개념을 모르면 학문을 한게 아니라 주워들은 것입니다.

아니면 그냥 책에 이렇게 써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고 백두산을 근원으로 정맥들이나 용맥들을 나열하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근거를 사상적으로 길게 설명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봐야 하는지 산을 말하기 전에 그 사상적인 체계를 뭔저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의도를 보여야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의견을 가질 수 있고 판단할 수있게 됩니다.

과거의 또다른 문제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존중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주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 키우려는 것을 안한 것입니다.

 

한양이 수도가 된지 6백년이 넘습니다. 한북정맥에서 6백년을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두산이 아니라 한북정맥 그것도 북한산 또는 북악산이 태조산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정맥들을 재편성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지 않는 걸까요?

한남정맥의 관악산이 민중들 이제는 시민들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악산과 북한산이 서로 대칭으로 있으면서 갈등하고 대립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기준이 있게 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도 북악산이나 보현산의 거만한 지배에 저향하며 숨죽여 모색하고 자기의 의지를 드러내려는 힘겨운 사투가 모인 관악산의 지루하고 힘겨우며 피흘려온 역사의 시기입니다.

그래서 관악산이 기준이라고 더욱 강조하겠습니다. 그 일렁이는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불길을 외면하는 지도층의 패악질을 견제해온 세월입니다.

치악산은 서강을 만들어 한양에 복종하고 시대에 편승하려는 우리의 감정에 거스르고 다르게 살며 자기 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강을 서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강이 남한강이 되어 돌아올 동안 다양한 서러움과 한을 담고 오게 됩니다. 그래서 치악산은 우리가 웅지를 품고 위대한 저항을 하게 하는 그 기준입니다.

이런식으로 얼마든지 많은 산을 기준으로 해서 산맥과 용맥들을 재편할 수 있습니다.

제발 하나의 관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에꾸가 되지 마시고 자기가 보는 견해를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산은 우리가 저 태을로 날아오르는 그 발판입니다. 그 산이 어떻게 우리를 이끄는지 보아야 하는데 스스로 자유로운 발상을 못하면 그저 남의 등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어코 떨어지는 아쉬움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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