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절 : 그러면 마음이 없는데 그거부터 만든다?
제라울 : 마음이 감정에서 차이를 생성할 수 있을 때 그것을 마음의 시발점으로 삼죠
그 감정에서 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바라 보게 될 때 형성됩니다.
감정을 보게 되어야 감정이상의 무엇이 되는 것이니까 그렇죠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보고 따라가는, 그리고 제어하게 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보기만 해선 안되고 보여진 감정을 어찌해야 할지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감정을 제어하게 되면 마음이 커져가게 됩니다.
연절 : 그게 왜 마음이라는 거죠? 감정을 제어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누구나 감정에 대한 자세가 있는 것인데 그럼 모두가 다 수련하는 것이 되잖아요
제라울 : 누구나 해요 누구나 하는 것이니 하는 거지 특별하거나 이상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의 평소에 하는 당연한 것에서 구분하여 다른 무엇으로 이해하느냐로 차이가 되는 갈림을 아는 것이죠
그렇지만 또 누구나 하지는 못해요
누구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감정은 행동하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로 쓰지 감정과 자신과 구분하며 다루지는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참는 거나 기다리는 것은 있겠죠. 배가고픈데 음식이 나와야 먹고 요리를 해야 먹고 돈이 있어야 사 먹고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이지 음식이 있고 배가 고픈데 앞에 놓인 상태에서 참는 것은 이유가 있어야 해요
이유가 없으면 참으려고 하지 않는데 언제나 그 이유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어떤 것이든 이유가 없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니까요
대개는 내가 감정을 드러내도 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멋대로 감정을 드러내며 이유로 삼아 행동하고 있죠
내가 응석을 부려도 응석을 부려도 되는 상대가 있고 응석을 해도 되는 당위성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방법도 적절해야 해요 이런 것을 무시하고 하는 경우는 어린이 밖에 없고 성인이 이러면 미숙한 것이라서 아직 제대로 정신이 성장되지 못한 것이 돼요
응석만이 아니라 그 외 어떤 것이든 그래도 되고 상대가 허용하고 방법이 적절하고 그러한 이유가 있어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것이 아니면 미숙함이 됩니다.
연절 : 제가 응석을 부린다는 거에요?
제라울 : 예를 든 건데요....
예의라는 것이 미숙한 방법으로 하지 못했을 경우에 쓰기도 해요 그래도 되나? 그럴듯한 방법인가? 누구나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나? 그런 것이 없는데 행동하면 무례입니다. 응석이 그런 것을 다르게 한 말입니다.
연절 : 빡빡하시네
그게 유교적인 거 아녀요? 지금 시대에 너무 고리타분한데
제라울 : 유학도 수양이고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원하는데 비슷한 거죠
연절 : 그러니까 감정을 제어하면 마음이 된다?
제라울 :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감정을 보게 되면서 감정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 일어나게 되어야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나름의 사고방식이라는 게 형성이 되잖아요 감정과 외부 저항과 사회생활과 일상을 살아가면서 비교하게 되고 분석하게 되고 이유를 따지게도 되고 더 효율적인 것을 찾기도 하고 좌절도 하고 행복감도 느끼면서 나름의 사상이 생기지 않아요?
그저 감정을 본다고만 하고 감정을 참거나 제어한다고만 하면 이런건 누구나 다 하는 것인데, 이런 게 뭐가 그리 이상할 게 있느냐 하겠지만 그런 것에서 뭔가 정리되는 것이 없다면 좀 어렵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먹는 것에서 입는 거 사회적인 성공이나 바람이나 모든 것에서 우선 양보하고 참고 자식이 더 잘되는 것을 위해 살아온다고 해서 마음이 넓거나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에요
엄마가 아닌 상황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감정 다룸이 될뿐이에요 왜냐하면 그건 상황이 그렇게 돼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일상적인 감정의 이치이지 자기만의 특별한 것은 아닌 게 돼요
만약 엄마면서 엄마로서 하게 되는 감정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한 나름의 체계가 이루어지면 그런 방법으로 마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죠 이건 이러한 이치를 알고 한 경우예요
그러니까 알고 하면 마음이 되는데 모르고 처한 상황상 하게 되는 것은 그냥 일반적인 경우가 되죠
즉 수동적인 자기 삶과 능동적인 삶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죠
그냥 감정만 제어한다고 마음이 되진 않죠 마음이 보여야 합니다. 무엇이 마음이 되는 건지 확인해야하죠
연절 : 예를 덜어봐요 어떻게 감정을 제어해가라는 거예요
제라울 : 요리 잘해요? 라면 잘 끓여요? 잘하시면 라면을 누군가 잘 못 끓이면 말이 많아지겠죠 물은 500을 넣어라 생수병 한 벙 넣으면 된다. 달걀을 언제 풀고 이렇게 휘젓고 뭐하고 이런 걸 따지고 말하고 주장을 한참을 하겠죠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서 남들에게 군대 시절 말하는 것을 좋아해요 상대방이 듣기 싫고 하도 들어서 지겨워도 자기가 말하고 싶기 때문에 해요 자기가 말하고 싶다는 거요 상대가 듣든 말든 원하든 말든 싫증 내든 말든 상관없이 말하고 싶은 그것을 말해요 이런 것을 보셨어요?
연절 : 봤죠 말하면 맨날 같음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다 아는 것을 자신만 아는 듯이 말하는 경우도 봤고 위 사람이면 아랫사람은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별거 아닌 것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있죠
제라울 : 그것이 감정이에요 뭔가 하고 싶죠 그런데 그러 것을 하지 말아야 해요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해요 내 감정을 왜 남이 들어야 하고 요구받아야 하고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것부터 모르는 것인데 이런 게 너무도 많죠
아무도 내 감정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맞장구 칠 이유도 없고 감정을 풀 대상이 될 이유도 없고 이런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공이라고 하지 않아도 남과 나사이엔 분명 건너가기 위한 방법을 정해야 하는 것을 모른다면 무례한 사람이 돼요
이런 것은 전제된 것이 되죠
난 말한다. 넌 아랫사람이지 들어야 한다. 난 말하고 싶다 그러니 넌 들어야 한다.
이런 전제가 있는 것인데 이런 전제된 것을 알아 보는 사람이 천재가 돼요 상대의 의도나 심리나 한계를 볼 수 있으니까요 언제나 어떤 전제를 깔고 말하고 행동하는 지를 알아보려고 해야 하죠
이런 것을 알고 한다는 것이 마음이 이 정도로 확장된 사람인데 이러면 그 사람이 모임이면 모임 대화하고 있으면 대화의 그 판도를 좌우하는 사람이고 포석을 하는 사람이 돼요 누가 더 깊은 전제를 아는가이죠
그런데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만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뒤의 배경이나 바닥에 깔린 전제들이나 숨은 의도들을 모르게 되는데 그러면 당연히 이런 것을 아는 사람에 의한 다루어지는 대상이지 다루는 사람이 되지는 않아요
마음이 있다는 것은 포용하고 크다고 하는 것인데 포용은 좋게 말해주고 용서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넓고 깊게 알고 있느냐가 되요 그 아는 만큼 그 영역을 좌우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죠 알아보려면 그만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요즘 보면 자신의 주장을 안 들어준다고 억지 부리고 땡깡이고 응석을 하는 것을 정치에서나 사회에서나 주변에서 많이 보게 돼요 그런 것이 미숙한 정신인데 왜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이해시키기가 어렵죠
이런 것을 이해할 만한 지능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선 감정을 보는 것이 뭔지 모르고 그런 것을 원하지 않고 마음이라는 것이 미약하다 보니 그럴 겨를 이 없기도 한 것이죠
타인을 위한 한 조각의 마음조차도 내어줄 생각이 없죠
연절 : 아닐걸요 요즘 알아요 꼰대 짓한다고 하잖아요 그런 걸 남들도 알고 있어요 자기가 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어요 너무 단정 지으시네
제라울 : 그 정도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죠 자기가 뭐하는지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고 남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원하는지 아닌지 표정만 봐도 아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런 것을 알아도 무시한다는 것이죠
남을 폭력을 행사하는데 아픈지 몰라서 때려요 아파하니까 때리는 거죠
남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겠어요 그럴수록 더 떠들고 더 말하고 더 행동하고 더 하게 되는 것이에요
남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해야 한다는 것은 과거부터의 경계하는 문구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참고 억눌러 가면서 하지는 않아요 자신에게 손해 볼 거 없고 하기 쉽고 어떤 이득이 되면 저런 것을 하려 하지만 감정이 일어나고 하고 싶으면 그럴 수 없어요
연절 : 아는데 행동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거죠?
그럼 누구나 아는데 왜 행동으로 하지 않으려고 하죠? 그리고 왜 아파하는데 더 때린다는 거예요 아파하니 안 때리고 싶어 지는데?
제라울 : 그대는 왜 내 말을 못 알아 들어요 그대가 못 알아들으면 내가 힘들게 되는 건 아시죠?
그런데도 못 알아듣는 건 왜 그런 거예요? 내 입장에선 그걸 즐기는 것 같은데..
연절 : 그런 말이 어딨어요 내가 언제 그걸 즐겼어요 못 알아 듣는다고 지금 욕하는 거예요?
제라울 :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부분도 고의적인 것이지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닌 게 돼요
그대가 못 알아듣는 것은 그대 책임이잖아요 왜 못 알아 듣는 사람이 되거나 지금의 상황이 되게 했어요?
이걸 누가 책임지거나 누가 만든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면 어떤 사람이 누구를 때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선 그러기 위한 오랜 누적된 노력이 있어야 하지 그냥 하루아침에 사람이 딴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워요 가능하지만 그만한 결단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난 도 닦는 것을 결단이라고 하지만 이런 결단을 하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흔하지 않죠
연절 : 그러니까 감정을 참고 견디고 인내하라? 그거죠?
제라울 : 아니요 그건 강압적인 것이라서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더 잘해야 한다는 거예요
더 잘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잘할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이죠
연절 : 감정을 제어하라고 했으면서 뭐가 또 잘하라고 하는 것이 돼요?
제라울 : 능동적인 제어라서 그렇죠 그리고 잘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잘 되려고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잖아요
참으라고 한다고 참고 감정을 죽이라는 것이 아니죠 참으면서 적절한 방법을 구상하는 것이죠
잠시 머물면서 약간의 지연, 이것이 생각하는 시간이고 전제를 아우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기 위한 관망이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돌아봄이 되어야 합니다.
이유와 방법을 생각하고 한다고 했잖아요 뭔가 한다면, 하고 싶다면, 그래도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해오던 것은 의아스러운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해요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면 정말 내가 그 사람에게 말을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이유가 합당한가 그럴 순간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하죠
말의 주제도 정당하고 상대도 내가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이거나 그럴만한 상황이거나 이런 전반적인 사건 일어남의 이치들을 알고 있어야 해요
우린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시점이 있어요
등장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말을 건넨다면 이유가 있고 복선도 깔고 사건이 일어나게 하기 위한 순서가 되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가지는 일이 돼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하다 보니까가 아니라 나름의 짜여진 이유가 있게 되죠
우리의 삶이 이야기나 드라마나 소설처럼 단순하지는 않아서 이런 것이 복잡한 중층이고 크고 작은 것에서 뭐가 복선이고 뭐가 의미가 없고 있고를 다 알 수가 없지만 있는 것은 또 사실이에요
이 시점에서 화를 내야 하나? 여기서 넘어져야 하나? 여기서 누가 등장해야 하나? 언제 긴장이 일어나야 하고 언제 긴장이 해결되어야 하거나 해결되는 긴장인가 해결된다면 언제 할 수 있게 끌고 가야 하나 안된다면 이것이 미칠 영향은 뭔가 또는 장르가 이러면 기발한 이야기가 되나 이러면 스릴이 있을까 이러면 이러면 이러면....
감정 드러내는 것도 나중을 위한 깔아놓는 것이고 등장인물의 내적인 심리를 보여주는 것이고 성격을 말하는 것이고 이런 깊은 것에서 사소한 것까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게 우리 일상에서도 내가 지금 감정을 드러내야 할까 조금 있다가 할까 누구에게 먼저 시작할까 어디서부터 하고 무엇을 화재삼아 시작할까 어떤 실수하는 것으로 어떤 잘난 척으로 어떤 부대낌으로 어떤 사물을 이용하면서 어떤 곳에서 어떤 사건을 일으키면서 감정을 건드리고 뭔가 언제 오게 하고 언제 나가게 하고 돈은 얼마나 오고 얼마를 쓰게 하고 이성은 어떤 식으로 어떤 이성으로 만나야 하나 이런 것을 일일이 짜면 미친놈이 될지 모르지만 그래서 대개는 심층에서 하죠
이 심층에서 하는 것을 의식이 알아채고 있어야 하는 것이 돼요 이걸 자기 관찰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마음이 고요해지면 또는 감정에서 조금 벗어나서 관찰을 하게 되면 내가 하는 행위들이 보이는데 여기엔 이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듯한 설정들을 하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어요 아니면 그런 흐름들의 짜여짐이 보여지게 돼요
또 이걸 볼 수 있어야 관찰을 조금이나마 한 게 돼요
연절 : 머리 아파요 너무 복잡해요 간단히 정리해서 말해주면 안 돼요? 이게 무슨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도닦지 말라는 거지 이게!! 아니면 일부러 어렵게 설명해서 약 올리는 것도 같고 좀 더 쉽게 설명은 안돼요?
제라울 : 어디가 어려워요?
연절 : 다 다 어려워요
제라울 : 헉 ㅠ ㅠ
제라울 : 감정이 일어나면 그대가 공부할 때이니까 그 감정을 바라보아요 그럼 마음이 드디어 생성되는 때이니까요
그러면 그 감정을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되고요
감정을 제어한다는 것이 억압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해 지금 이 감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거죠
그러려면 내가 지향할 인생의 목적이 있어야 해요
난 저걸 성취하기 위해 저것이 되는 세상을 위해 뭔가 이생에서 하고 싶은 그 절박한 그러면서 그것을 위해 인생을 걸 수 있을 그러한 목적을 찾아야 해요 이것이 있어야 긍정적으로 감정을 제어할 수 있어요 아니면 한이 되거나 히스테리가 되거나 억눌린 감정이지 정상은 아닌 게 되죠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결정한 그것이어야 해요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도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대가를 바라거나 뭔가 기대한 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후회와 한스러움이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조금이라도 그런 빌미가 없을 그런 자신의 인생의 길을 정해야 해요
그러면 생각이나 감정이나 행동이 그것을 위한 것으로 다시 교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수련이라고 해요 수도나 여긴 자천이나 그렇게 공부라는 것은 내가 정한 그것을 위한 자기 단련이에요
이러한 결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단이 되는 것이 수월하죠 그 마음이 생성되는 것이니까요
마음을 정한다고 또 생각을 한다고 몸이 바로 변화되지는 않아요
신체의 변화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그 시간 동안 호흡을 하거나 호수를 외거나 무예를 하거나 뭘 하거나 이 마음의 결심을 가지면서 한다면 그에 따른 변화가 진행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야 진짜 수련을 하는 것이 되어요
이게 정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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