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절 : 훔 사과는 잘하네
자자 그런 어려운 얘기는 그만두고 그래서 어떻게 자천한다는 것이에요? 여기선 자천이라고 한다죠? 어떻게 하라고 했죠?
제라울 : 그건 전에 말했는데요
연절 : 그래요 그다음요 그럼
제라울 : 마음을 보거나 한 조각이 생성되면 이제 그것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확장해야 하는데 이럴 각오를 해가야 합니다.
마음을 보았다지만 아직 명확하지도 않고 정말 이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면서 의구심이 들고 이런 게 맞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한 것도 같고 이건가 저건가 하기도 하는 그런 마음의 흔들림을 잡고 강하게 의지를 다져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체적 단련과 다양한 지식의 섭렵과 사고를 통한 정리나 탐구를 해야 합니다.
연절 : 그런건 나도 잘하죠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한 길을 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난 잘할 수 있어요
제라울 : 그전에 자신의 마음 한 조각을 우선 확보해야 합니다. 그것이 관건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엄한 공부가 돼서 앞으로의 성취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연절 : 그것도 할 수 있죠 나도 자기관찰이라는 것을 하고 알아채는 것도 하고 그걸 왜 못할 거라고 해요 할 수 있어요
제라울 : 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섣부른데요 뭔가 내말을 오해하고 있을 것도 같은데 어디서 잘못된지는 당장 알 수가 없는데 해가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야 그때 뭐가 잘못된 건지 알게 되는데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지 말고 좀 더 명상이나 사고하는 시간을 가지고 내면을 보는 것을 해보는 게 어떨지요
연절 : 누굴 너무 멍청이로 보는 거 같은데 왜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할 수 있다니까 그래서 마음을 성장시키면 어떻게 되는지도 설명해줘요
제라울 : 그렇게 마음을 확보하고 성장하게 되면 곧음이 되어가죠 하나의 의지가 되어가면서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명확히 정해갈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이죠
연절 : 그게 뭐 어렵다고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의지는 나도 있으니까
제라울 : 그렇게 나도 한다 할 수 있다. 이미 하고 있다. 쉽다. 하지 마시고 정밀하게 생각하고 잘 하셔야 합니다.
연절 : 네네 알아서 한다고요 그래서요 의지가 되면 그다음이 뭐죠
제라울 : 의지의 확보가 되면 다시 그런 것에 거리둠을 알게 돼요 의지라는 것이 또 나라는 것이 드러나고 보이고 주장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비워지고 더 거대한 외부 세상과 동조할 있느냐로 성장되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죠
'나'라서 커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지 않음으로써 '내'가 되어가는 그 역설이지만 비워진 거기에 '내'가 있게 되는 그런 상태요
'내'가 아닌데 또 '나'인 것이 '나'로서 있는 것이죠
연절 : 왜요 왜 꼭 그렇게 '나' 아닌데 '나'라면서 그런 식이 어야 하죠?
제라울 : 그건 고집하고 단정하고 이것이라고 하고 이거여야 하고 이런 것이 굳게 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지 못하게 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되어서에요
연절 : 뭔가 정치적인 냄새가 나는데 보수를 까는 거 아닌가요?
제라울 : 세상이 다 비슷한 원리로 돌아가니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자기를 깨고 나아가려는 것이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죠
아주 간단하잖아요 지금의 나를 고집하지 않아야 다른 내가 되는 것이죠 다만 지금의 '나'와 변한 '내'가 같은 '나'이냐 다른 '나'이냐인데 다른 '나'입니다.
그러면 정체성이 달라진게 되어 이상한 것이 되는데 이래서 이 길이 힘들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됩니다.
누구나 지금의 '나'이길 바라지 달라진 그래서 어찌 될지 모르고 무엇으로 되지 알 수 없는 '내'가 되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겠어요
그저 정보하나 지식 하나 신체의 작은 변화가 있는 정도로서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이죠 예상 가능한 정도에서 변화하면서 뭔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대강 계산하고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런 정도로선 도가 되지 않는데 사실 이런 말이 뭔지도 납득을 잘 못해요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공부가 되는데 그다지 와 닿지 않으니 이 말도 좋은 말이네 하면서 지나가겠죠 잘 모르겠으면 무시하면서 지나가게 되고 하지만 달라짐 내가 달라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나아가는 것은 어려움이 됩니다.
지금의 '나'와 변한 '나'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니까요
그대도 그런거 같더군요 자동차 운전 못하다가 운전면허증 따는 그 정도의 변화를 생각하는 것일지도요
이런 거 체험했다. 이걸 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바란다.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 그럴 수도요
연절 : 그렇게 꼭 비아냥 대어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내가 그렇게 경솔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제라울 : 대화가 그다지 진진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그렇죠
연절 : 그러니까 내가 변할 거다 생각보다 더 극심한 심리적인 변화나 정체성이 변할 거다 이거잖아요
그건 이해했다니까 누굴 띄엄띄엄 봐나
그리고 그리고 뭐 중요한 거 있어요?
제라울 :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상승한다는 것이에요
연절 : 상승? 뭔 상승?
제라울 : 도닦는다는 것이 일단 상승이에요 위로 올라가는 것이죠
이걸 잘 못 이해해서 전일한 하나의 경지에 오른다고 하면서도 뭔가 개체 이면의 본질과 하나 되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있는데 이건 오해해요 그런 완전한 본질이라는 근원을 확고하게 정해놓고 그것과 하나 되거나 그것을 느끼거나 그것이면 다 된다거나 하면서 공부하면 제자리걸음이고 잘못된 마음의 방향을 정한 것이 되죠
그래서 상승해야 한다고 꼭 인지하고 해야 해요 올라가고 올라가서 더 나아지고 더 거대해지고 그런 개념을 가져야 해요
연절 : 올라가서요 어딜 올라가요 그렇게 오른다고만하면 뭔가 허공에 사다리 세운 거 아닌가요
제라울 : 네 공부하다보면 막막한 게 있는데 어디가 끝이고 어떤 게 완전함이고 어떤 게 본질이고 어떤 게 신이고 어떤 게 확실한 깨우침이고 어떤 게 열반이고 어떤 게 도대체 어떤 게 그것인가 하는 불확실함이 있어요
아무리 해도 확고하게 이거다라고 할만한 무엇을 찾을 수 없는데 이걸 찾았거나 안다거나 있다거나 하면 거기에 속거나 그런 말하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으로 보이거나 그렇게 현혹하는데 결코 그런 확실함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안 그러면 진짜 이 길에서 헤매는데 답 없어요
연절 : 아니 그러면 누가 공부해요 공부하는데 공부하는지 알 수 없고 어디 가야 하는지 어떤 것이라고 확실하게 답해주지 않으면 누가 이걸 해요 그런 애매 한 것을 어떻게 도라고 해요
제라울 : 그렇긴 한데 그게 어쩔 수가 없어요 원래 그런데 그걸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연절 : 아니죠 제라울이 잘못 알아서 그런 것일 수 있죠 다 깨우치지 못해서 그 정점을 가보지 못해서 그래서 안 보이고 완전하지 못한 것일 수 있죠
제라울 : 그렇기도 하겠네요
연절 : 그런데 그래서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라울 : 호흡? 호수? 무예? 명상? 심법?
연절 : 그중에 뭘 하죠?
제라울 :.........
연절 : 그런 것을 하는데 그런데 위의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말은 고리타분한 어려운 말을 잔뜩 하고서 그래서 뭘 하냐고 하면 결국 호흡? 이러잖아요
명상하면 저런 걸 알게 돼요? 마음이 확장하거나 안다거나 그런 게 명상하고 무슨 연관이에요?
제라울 : 신체가 변화해야 해서요 신체가 변해야 머리도 변해서 알아지는 게 생겨요 물론 그렇지 않아도 알아지고 지식이 보이는 것이긴 한데 우린 그 둘을 함께 하는 것이 좋아요 학문이 목적도 아니고 일시적인 지적 성취가 목적도 아니라서 나아간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나아가는 그런 앎과 변화를 같이 해가야 하니까요
뭔가 마음을 아는 듯이 말하지만 호수를 외우지 않아서 그다지 고요함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의 생각들의 들고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감정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본 적도 없고 그러면 성취될 게 없어요
공부하기 위해서 책상 앞에 앉을 필요는 없어요 서서 공부하든 누워서 하든 상관은 없는데 반드시 책상에서 공부하는 것을 기준으로 자유롭게 여러 자세를 취하는 것이잖아요
좌선해서 뭔가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좌선을 하면서 다른 자유로운 것을 해가야 해요 가만히 있어봐야 생각을 쫒아갈 거 아닌가요?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작은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으려면 앉아서 생각을 추적하고 분석하고 사라지게도 해보고 내면도 보고 외면도 보고 나를 보기도 남을 보기도 해야 그것이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고수들이야 자유분방하게 공부하지만 초보는 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해요 우선 신체적인 단련이 있어야죠 앉아보는 시간이 있어야죠 아니면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일정한 동작으로 그런 효과를 얻거나요 칸트는 산책을 하잖아요
동양에서도 산책하면서 도 닦는 사람이 있었을 것인데 이런 것을 무시하니까 내려오는 말이 없죠 생각보다 사람들의 마음은 자유롭지 않아요 그 자유를 얻기 위한 도를 모르죠
연절 : 그렇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 앉아 있는 것이나 뭔가 규칙적인 활동이나 그것이 마음을 알게 해요?
제라울 : 예
연절 : 알면, 알면 어떻게 되는데요?
제라울 : 그게 문제겠죠 알아도 보여도 그걸 어째야 하는지 몰라서 본걸 잊고 보여도 모르고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닌 게 되겠죠
연절 : 그러니까 뭐냐니까요
제라울 : 오래오래 단련해야 하죠
그러다 보면 감정이 올라오고 이런저런 감정으로 활동하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겠죠 그런 감정이 행동의 동기가 됨을 알면 그걸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걸 느끼겠죠 감정데로 해야 하나 그게 아닌 것인가 하는 갈등을 하죠
연절 : 그건 감정을 보면 누구나 이미 아는 거 아닌가요? 그걸 또 해요?
제라울 : 그렇게 안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모르는 게 되죠 그 정도로 안다고 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뭔가 알 거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 알거 같은 그것으로 자기의 성향이 바뀌고 인생이 변하는 것까지 가지는 않은 거죠 그걸 하기 위해서 이러는 건데요
연절 : 성향을 바꾸는 것이다? 감정을 보는 이유가?
제라울 : 네 서서히 바꾸는 것이긴 하죠 그 성향이 내가 이렇게 살게 되는 원인 제공인데 그런 성향을 가진 이유는 그렇게 길들여지고 습관 되어서이고 그렇게 살아와서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면 다른 사람이 되죠 다른 성향이 되는 것이죠
그 결단이 크면 더 단기간으로 변할 것이고 느슨하게 결단하면 오래 걸리는 것이죠
다만 성향이 바뀐다고 이번 인생이 바뀌지는 않아요 물론 바뀌는 것도 있어요 어느 한계 내에서 우리 운명은 달라지고 바뀌는 것인데 그 한계가 생각보다 유연해요 어느 정도의 어림된 간격 내에서 허용하는 운명의 변화가 있으니까요
그런 전혀 다른 남처럼 되는 것은 안된다는 거죠 그건 다음 생으로 태어나야 다시 전혀 다른 성향의 나로서 태어나는 것이죠
쉽게 운명을 바꾸어도 몇십억 부자가 한계가 돼요 백억이 되어가면서 혹은 10억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운명의 간섭이 들어오죠 방해가 있어요 그래서 천억이나 조 단위의 재벌이 되지는 않아요 그렇게 바꿀 순 없죠 그러려면 여러 생을 지나야 하죠
아무튼 내가 변하는데 그러려면 내가 보여야 해요 그런데 이 내가 보인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아요 감정이 보인다고 하지만 감정을 오래 보아야 겨우 보게 되는 감정들이 있어요 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미세한 것인데 그것이 그전에는 없던 것이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보고 있던 거지만 확인하지 못한 것인데 이런 공부를 하게 되면 차차 확인되는 감정이 나오게 돼요 이걸 위해서도 오랜 좌선을 해야 해요
그리고 그 감정들이 인생을 어떻게 흘러가게 하는지를 봐야죠
미세한 감정이 보이고 흐름이 보이면 이젠 다른 경지로 간 것이 되겠죠
연절 : 뭔가 기분이 나쁜데 그러니까 당신 같은 사람들만이 아는 그런 것을 알게 된다? 그걸 모르면 아무리 해도 안된다?
제라울 : 오래 한 사람이어야 뭔지 알게 되는 것이 있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안 한 사람이 이걸 쉽게 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