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학/명리학

역재월

제라울 2020. 12. 31. 14:29

이건 우리 같이 자천하는 사람들은 잘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보는 의미에선 당연히 중요한데 마음공부가 필요한 곳이 어디냐가 있겠죠

정치세계일 수도 경제 세계일 수도 일반시장이나 가정이나 일상 세계나 어디나 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알아서 적용할 것이고요 

난 항상 도를 배우는 입장에서만 말한다고 하는데 사실 일부러 대놓고 말하고 싶지만 약간 완곡하게 한다는 것이지 장성의 승질머리가 어디 가겠어요 그 장성이 상관인데 말이죠

신살에 십성을 대입하는 것은 되는가 아닌가도 있습니다.

엄밀히는 십성은 사회적인 구조입니다. 사회와 연관해서 나온 것이라서 사회적인 의미가 아닌 곳에 무리하게 적용하면 웃기는 현상이 되지만 그래도 이걸 알고 해 보면 더 재미납니다.

다시 말하면 십성이란

내가 생하는거 이걸 식상이라고 하는데 내가 생하는 듯한 것들을 말합니다.

생한다는 것은 해주고 싶거나 해주거나 이어지거나 시간적으로 선후가 되거나 공간적으로 쉽게 가거나 힘쓰거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생한다는 것이 자식 낳거나 뭘 만들거나 기르거나 먹이거나 이런 것으로 하지만 그게 결국 나에게서 이어지는 나아가게 하는 것이 됩니다. 생한다는 것의 포괄적인 의미를 알아야 하죠

내가 누군가를 때리면 그것도 생한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선후가 되어 인과 현상이 나타나니까요

봄이 여름을 생한다는데 거기에 그다지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시간적으로 그렇게 순서 되어 있으니 생한다고 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로 시간이 진행하는 순서로 일어나는 것은 생입니다.

극은 이긴다는 것인데 뭔가 행동한 것입니다. 처리한다는 말이 있는데 일처리 한 거죠

요즘은 자동차 시동을 걸어도 이벤트라고 자동음성이 나오는데 이벤트 사건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시간순서로 보면 식상인데 생인 것이죠 근데 그로 인해 어떤 것이 되었다 하면 극이 됩니다.

내가 누굴 때리면 식상인데 그래서 폭력이다라고 정해지면 재입니다. 때렸다라고 규정되면이죠

그래서 식상이나 생으로 살면 때린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가고 있거든요 아퍼서 눈물이 나면 눈물 나고 잇는 것이지 때린 것과는 별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울려서 고통스러워해도 먹을 거 주면 다시 해맑게 웃는 것이 이들은 생을 하는 것만 잇지 극을 잘 못해서 아프다 맞았다 하는 개념 형성이 일어나지 않아서 재가 되지 않으니 그렇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생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어떤 것이 일어났다" 하면서 극하지 않죠

 

그래서 이런 십성은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행한 것들과 나타나는 현상이지 자연에선 그다지 의미가 축소되는 것입니다.

나무는 날 생할 생각도 순서도 생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없습니다. 순서적으로 일어나니 생만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생각은 이미 우리가 재로서 그들을 보는 거라서 없다고 하겠습니다. 극은 당연히 없죠

봄여름 가을 겨울로 진행하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자연현상이 일어나니 그것이 다 생이다 라고 하는 것이지만 생이라는 말이 이미 극을 한번 거친 말이라서 그냥 그런 것이지 그게 생인지 극인지 그렇게 규정할 건 없다는 거죠 우리가 너무 극이라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살이란 이런 십성이 있기 전에 보는 것이 되고 이전이라기보다 이런 관점에서라고 해야 하겠죠

십성은 일간이 또 우리 사람들이 뭔가 하려고 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라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되는데

신살은 하려고 하든가 말든가 나타나게 되는 흐름입니다. 결이죠 그런 결에 따라 우린 흘러가야 합니다.

 

역마가 되면 내가 하는 것에 저항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성이 누가 내가 하는 것에 토다냐 하면서 으르렁거리는데 역마가 그거 아닌데요 하면서 다른 것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만든 것이나 하고자 하는 것에 유행이 지났다거나 꼰대적이라고 하거나 때가 어느 때인데 하면서 장성의 전성기가 지나서 그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주장을 내가 옳다고 오로지 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언제나 역마는 바로 나타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미 그건 다른 것으로 변하고 있고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재살은 타자이고 객관이고 제삼의 시선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세력입니다.

내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의견이나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시기나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내가 주장하려고 할 때 반대의견을 염두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객관적인 자료와 지표와 의견에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하고 염두하면서 주장해야 하는 것이 됩니다.

합리성과 정합성 논리성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객관성이라는 것이 나와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나 이외의 모든 외부는 재살입니다. 그리고 나조차도 나에게 재살입니다. 남인 거죠 나에게 내가 남입니다.

자기 사주에 재살이 있기도 하잖아요 대운이나 세운으로도 결국 옵니다. 나와 남이 같이 있죠

 

월살은 그렇게 자기 성찰, 자기 비판력, 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안목이나 반성력이 있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자기중심에 빠져서 안하무인이나 답답한 인간이 됩니다.

월살력이 없으면 자천은 물 건너가죠

자기 성찰을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알아차림이라고도 하는 것을 하려면 월살이 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림이라는 것이 월살이니까요

그런데 이걸 하려면 역마가 또 재살이 있어야 월살이 되어갑니다.

나에게 반대하는 나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월살이 되지 않습니다.

대개는 역마와 재살을 거부하고 못마땅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역마와 재살을 인정하면서 자기 월살을 만드는 사람들이 드물더군요

그렇게 자기 성찰을 하라고 강조하게 된 이유가 그래서죠

이런 당연한 신살의 흐름을 거부하면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집니다.

그 부하는 차곡차곡 쌓일 것이고 그것이 언젠간 나타나게 되는데 신살의 결을 따라가거나 저항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로 인한 대가는 스스로 져야 하죠 

하지만 이런 의식도 없어서 자기가 결을 거부한 인과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 많습니다.

대개 가족이나 후손에게 떠넘기죠

저처럼 신살을 엄하게 다루면 이런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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