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을 지나서 한 것 중에 대강의 기획은 가야산을 간 것이 됩니다.
백여 년 전의 역사와 비슷한 것을 하기 위해서이죠
왜 굳이 이 시기에 왜 굳이 그곳으로 하는 것인가는
시기적으로야 그전에 그러한 것을 했으니 그다음이 나라가 정립되는 것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대통령이 그 사람이라서입니다. 그 전생을 이용하는 것이죠
천자국이 된다는 거대한 설정아래 시작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천자국이 되지는 않지만 그런 식의 독립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더욱 세계로 진출하면서 위상을 높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인 말이 되겠죠
그것을 한마디로 천자국이 된다고 하는 것이고요 그만한 과장과 자극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처럼 주위국이 우릴 방해하거나 이득을 챙기려고 하거나 하는 외교적인 갈등과 기회가 함께 오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때처럼 당하거나 억울하게 빼앗기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준비했으니까요 뭘 준비한지는 대강 앞에서 썼죠
그래서 그때처럼은 안될 것입니다. 이런 건 가야산 갈 때 이미 썼었죠
그리고 경주를 간건 동학처럼 아래에서의 들고일어남이기도 하고 그들이 꿈꾸던 것이기도 하며 수운이나 해월이나 그러한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또 창의력으로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사람이 장르를 만들고 이끄며 앞장서는 사람은 있어야 해서입니다.
대중들이 스스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지휘하는 사람은 있고 거기에도 리더는 있는 거라서 그렇습니다. 다만 상하의 경직되고 훈계하고 갑질하는 그런 것은 안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경계는 항상 해야 합니다.
그걸 정한 즉 다음의 중간 목표를 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본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그걸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말했듯이 준비했습니다.
난 정의론을 다 읽었습니다. 마이클 샌들이 쓴 거나 존 롤스가 쓴거나 그 방대한 것들을 다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대가를 요구하기 위한 즉 정의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점점 무례하게 나오며 그에 따라 그들은 서서히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거처럼 그러겠죠 그럴수록 우린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정의는 구현될 것입니다.
책으로 마구 하는 것은 많죠 무술년 남북이 회담을 하기 전에 백낙청이 쓴 10여 권의 통일론을 다 읽었습니다. 그거 읽으면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죠 물론 통일을 이루기엔 아직 안된 것이 있어서 다 되지는 않지만 일단 그렇다는 것입니다. 통일전에 준비할 게 또 있으니까요 암튼 그런 정도라도 뭔가 일어나기 위해 그전에 그리고 그때 또 그 이후에 후속작업까지 혼자 다했습니다.
갑오년부터 역학을 공부했습니다. 명리나 기문둔갑이나 육임이나 자미두수나 풍수나 닥치는 대로 했는데 그건 그게 대단해서가 아니라 갑오년을 기점으로 선천과 후천이 갈라집니다.
이런 단어도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데 너무 늙은 단어들이라서 지금은 새로운 단어들이 넘쳐나는데 이걸 써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과거분들의 그 당시에나 쓰임이 있는 거라서 쓰고 그런 말밖에 모르던 시절의 말인데 지금은 딱히 쓸데가 없는데 쓰면 그것도 참 그렇고 해서 안 쓰는데 갑오년을 기준으로 후천이 되니 이젠 이런 말이 필요가 없죠
애가 태어나서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생이 되어가고 있는데 자꾸 태어난다는 말을 쓰면 미친 거니까요
이미 지난걸 자꾸 들먹여봐야 헛소리입니다.
아무튼 그 이후에 하나의 운명 창조가 됩니다.
이런 말도 하더군여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라고요 요즘 유툽보면 재미난게 내가 오래전에 떠드는 걸 어디선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곳이 있습니다. 너무 많아 거꾸로 이들이 말한걸 내가 말한 거로 착각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내가 따라 하는 건가 이들이 따라하는 건가 ㅎㅎ
이런 말은 누누이 했습니다. 안 하던 것을 하려고 하니 자꾸 망설이는데 그걸 해야 한다는 거죠 철학을 만들고 개념을 만들고 기술을 만들고 남 뒤나따라가지 말고 앞장설 날이 오는데 그 잘난 사람들이나 위인들이나 과거 천재들도 남의 것을 따라하지 자기 것을 안했다고 욕을 많이 했습니다. 이젠 우리가 못했던 안하려고 했던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많이 떠들었는데 이젠 다들 말하니 난 안해도 되더군요 욕을 많이 한건 일부러 그했습니다. 그런 세상이 오게 하기 위해 자꾸 떠든 거고 강조하려고 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야 할 때가 다가오니 자꾸 떠들게 된 것이죠 남들은 그냥 지 잘난 소리 하는구나로 들었을지는 모르지만요
말 개념 감정 행동 강조하고 숨기고 뭐든 의도가 깔린다는 겁니다. 보이고 알면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안 하던 없던 운명을 만든다는 것으로서 운명에 대한 고찰을 하는 것이 명리를 공부하고 기문둔갑을 공부하면서 어디를 어떤 나라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분야를 어떤 상품을 어떤 이야기를 어떤 어떤 이런 것을 하나하나 개척해가는 것을 말하려던 것이고 찾고 탐구하는 것인데 그런 식일 뿐입니다.
즉 역학으로 우리의 국운을 만들고 세우며 진행해가는 것을 맞추어준 것입니다.
이걸 오해하면 안 됩니다. 역으로 뭘 했다가 아니라 그런 형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정의론을 읽는다고 그런 정의대로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비슷한 상황이 되는 것에 정의론이라는 것으로 메타적으로 같이 동조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역학을 배운 분은 저렇게 말하면 내가 역을 이용해서 뭔가 짜고 운명을 결정하고 뭔가 하는 것으로 오해할 것인데 그런 식이 아니라는 것이죠
즉 이제껏 없던 국운을 맞이해야 하니, 이것이 운명을 개척한다. 운명을 정해간다. 운명을 이끈다. 운명을 개괄한다. 운명을 이해한다. 이런 것을 역을 배운다는 식으로 같은 듯 다른 듯 이러한 메타로 보면서 하는 것인데 새로운 나라의 운명을 역학이라는 식으로 동조해준 거라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응원이죠 으싸으싸 나아간다 나아간다.입니다.
또 말이지만 어떤 학문이든 그 목적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과학이나 수학은 미래 통제도 되구요 미래에도 항상 같은 동작을 해야 스마트폰이 좋은 거죠 낼 어찌 작동할지 모르면 안 되죠 언제나 내일 다음에 미래에도 이와 같길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제어하면서 학문들이나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으니까요
(과학은 같은 조건에서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의미가 있죠 그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된다고 보고요 그중에 가장 첨단이 지금 스마트 폰이니까요 우린 같은 조건을 인정하지 안죠 언제나 다르고 그 사람만의 고유함이나 능력이나 유일성을 중시해서 언제나 같은 결과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비슷한 결과를 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죠)
역학도 미래가 잘되길 바라는 것이니 그래서 그걸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이죠 비슷하지만 다른 결과를 내기 위한 문화창조의 메타입니다.
내가 소백산을 홀로 갔을 때 입으로 흥얼거리던 것이 어딘가에 기록했죠?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하면서요
그렇게 우리나라의 배는 봄날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더 나은 항구를 찾아서요 억울하고 배고프며 억눌리고 힘겨운 항구를 떠나 그와는 다른 문화와 도덕을 행하는 그런 곳으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바다는 위험한 곳이고 비바람이 있을 것이고 파도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온갖 수단을 쓰면서 나아가고 뒤따라 오는 배들에게 등대가 되어줄 의무도 있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죠
이대로면 시일이 더 걸리겠구나 내가 죽기 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리더국이 되고 그런 것을 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좀 더 충격요법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리고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충격요법은 결국 천재지변이 됩니다. 그건 그만한 희생을 한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생각의 진행을 안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그것도 역시 그렇게 정해진 거겠죠 생각을 안 했다고 될 문제이던가요 이미 준비했고 준비할 것이고 그것이 어떤 흐름이 되었으니 의식으로 올라와서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인데요
또 다른 이유는 명분입니다.
선진국으로 인정되기 위한 명목상의 이유입니다. 국제 간의 일이니 문서화되고 서로 간에 명분이 되는 것이 명확해야 의견이 일치되기 쉽습니다.
내가 또 기록하기 같은 것에 썼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 무엇을 한 게 있는가입니다. 어떤 역할 어떤 의미를 주느냐 다른 나라에게 어떤 것을 하는 나라인가라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우리는 이런 것을 하는 또는 한 나라이다라는 그 근거를 말하는 것이 필요해서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이런 글을 쓴 거?
이런 걸 기억 못 하면 내가 코로나를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한다고 하는 것을 안 믿을 것인데 사후에 때려 맞추는 거 아닌가 하고요
미리 말해두어요 알죠? 내가 한 것들은 미리 말해두고 그에 해당하는 것을 나중에 구현되어요
내가 말을 어림으로 해서 그렇지 해놓죠 분명 난 이웃나라에게 어떤 나라로 비치고 어떤 역할을 하는 나라로 알기 바라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어요 여기저기 많이도 떠벌려 놨죠
내 블로그 글에 "마음의 괴리"라는 글이 있어요 그걸 읽어보면 조금은 이해하는 것이 있겠죠
그것이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이었고 코로나가 일어나면서 선진국에 들어가면서 un에서 만장일치로 선진국으로 인정 받은 것이 개발도상국이 우리에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어떤 역할과 뭘 원해서 찬성을 하는지 그 역할에 대한 의미도 이해할 것이며 그것을 위한 코로나의 당위성이 나타납니다. 우리같이 선진국이 아닌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그 의미는 분명 다릅니다. 누군가에는 희망을 누군가에게 긴장을 줄 수 있고 나라끼리도 불평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에 의견을 제기하는 것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접근이 다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 난 과거부터 우리가 어떤 일이나 의미나 역할을 할 나라가 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구의 인류사에 편입하는 그 당위를 말입니다.
그런 것을 앞당기기 위한 충격요법이죠
그리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선진국에 들어가야하냐 하는 의문이 든다면 이건 선진국이 되고 아니고를 목적을 삼은게 아닙니다. 그 다음이 되어가면서 갖추어지는 중간 모습이죠 말했잖아요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지구의 인류사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입니다. 이건 선진국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다만 선진국이 되어서 하는 것과는 다른 부분이 있죠 암튼 그렇습니다.
하여튼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21세기 들어와서 4번째이니 대강 5년에 한 번입니다. 그러니 자연적인 현상에 내가 의도를 넣었다고 하는 것이죠 그걸 준비를 먼저 한 자가 거기에서 이득을 취할 것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성취하게 하겠죠 누구나 어느 나라나 같은 상황에 처합니다.
(미국에서도 이걸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자고 강연하고 다닌 사람이 있죠 그러다가 음모론에 빠져 악으로 선동하는 세력에 이용당하지만 머리나쁜자와 좋은자의 차이가 됩니다. 누구에겐 보이는데 누구에겐 안보입니다. 지가 못보는 것을 보면 악마라고 또 마녀라고 하면서 희생시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긴하죠)
그런데 어떤 준비를 하느냐가 막는데 급급하나 버티냐 희생을 얼마나 하냐 적냐 많으냐 처절하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발전하며 더욱 번창하냐 그건 그 나라의 준비 한자가 있느냐이고 그걸 얼마나 정밀히 했느냐입니다.
가야산을 다녀오면서 적극적으로 준비한 것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작년 올해 확인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사회와 세상의 변화를 보고도 모르거나 외면하면 역사적인 이 순간을 눈감으며 산다는 것은 음음 욕하면 안 되겠죠 난 착하니까!!
자천하는 사람은 사회와 세계의 변화를 눈뜨고 확인해야 합니다. 언제나 시대의 첨단이 무엇인지 그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다음의 것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거나 준비하거나 다루게 될 것이 아니던가요
그래서 내가 미리 어떤 것들을 말하는데 애매할수록 먼 일이고 좀 더 그림이 그려지면 가까운 것이며 그다음 딱 떨어지게 말하면 일거 같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사회에서 해줍니다. ㅎㅎ
난 어림적인 것에서 끝납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가깝지 않아요 상당히 멀어서 또 상위라서 대강의 흐름이고 사건들이죠 그래서 구현되면 좀 다르다고 봐요 내가 그리던 것과 너무도 다를 수도 있죠
그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대중들이 있고 그들이 해석하고 번역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고 다른 신관이나 집단 무의식이 다르게 원하는 것도 있으며 그런 것과 경쟁일 수도 타협일 수도 합쳐진 뭔가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난 방향을 정하는데 그 각도가 넓습니다. 30도, 60도 식으로 대강 정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만 들어가면 되죠
그리고 현문이나 산신들이나 지신들이나 사람들의 조직들이 나름의 세부적인 각도를 정합니다. 그들의 이해득실이 있으니까죠 이러다보면 내 입장에선 어 이게 이렇게 구현되나? 하는 것이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각도가 아슬아슬하게 되면 즉 벗어나기 쉬운 끝지점으로 가면 그걸 다시 조정할 준비를 서둘러야죠 아니면 그것이 다시 돌아오기 위한 일시적인 빗겨남인지도 알아야 해서 또 고민을 한참해야 할 수도 있구요
그러면 여기서 끝이냐면 아니죠 과정 이랬잖아요 모든 것이 과정이니 구현된 것을 보고 또 다음을 진행합니다. 왜냐하면 도는 저 멀리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요 그것을 위해 하는 포석이라고 했으니 과정이고요 그것이 되게 하기 위해 아주 서서히 방향을 조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목적이 명확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디를 가는지 어디서 틀어진 건지 조정을 하고 어떻게 해가야 할지 뭘 준비하고 안배해야 할지가 정해지게 되죠 언제나 전체적인 흐름과 목적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것이 갈길이니까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그 흐름이 만들어진 건 기해년 태백의 구문소를 갈 때입니다.
이건 일박이일에서 본거라 함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데 가는 것도 그다지 쉽지는 않았는데 막상 가서 보자마자 아차 싶었습니다. 청룡에 해당하는 바위 절벽을 뚫은 것인데 이건 억지로 지름길을 만든 것이니까요
돌아가는 물줄기를 이렇게 흘러가게 작위적으로 한다면입니다. 아까 말했죠 충격요법으로 더 빨리 일어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 딱 맞게 되잖아요 청룡을 뚫었으니 생명이 힘들게 됩니다. 청룡은 동쪽인데 여긴 생명과 연관되니까요 그리고 물이 지름길로 가게 되니 압축성장이 된다는 것이죠 빠르게 뭔가를 이룬다는 거죠 모험이기도 합니다. 한 방에 훅가거나 한 방에 건너 뛰거나 그런 긴장이 있죠
그리고 무지개가 떴습니다. 흉조죠 그 과정에서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다음의 경주 모임까지 이어지는데 앞 전망에서 본 금성의 산은 엄청 길함을 뜻해서 코로나에 우린 거대한 한 발을 내딛게 됩니다. 다만 다른 나라는 힘들더군요 그래서 그 산이 너무도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산 사진이 어디 있는데 ㅎㅎㅎ
코로나로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했었는데 우리나라적인 것이야 정보가 많으니 찾아보면 될 것이고 여기서 말할 것 중에
고단자 나오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죠
이것을 위해 대구의 와룡산을 가게 됩니다.
코로나가 생기기도 전에 혼자 갔는데 예전 병암서원에서 강의할 때 오른 산인데 일부러 용의 머리 부분은 안 갔습니다.
그때 어느 분이 거기도 가자고 하는데 내가 머리를 자른 것이니 지금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흠 이분도 지금은 여기 없으니 그것도 참
그걸 이어지게 하려고 오른 것이죠
그러면서 몇달 후에 그분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조국의 사건이 한창 거세어질 때 집 근처로 찾아옵니다.
그 카페에서 만났는데 화장실이 막혀서 물이 넘치더군요 카페 주인은 그것 고치려고 분주한데 그걸 보고 이분이 동해서 오르겠구나 했습니다. 하수구 막히는 것을 해결하면 뭔가 해결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경상도분이니 조국이 안 되겠구나 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고 주말이 지나 월욜인가 사퇴하더군요
조국 사태는 내가 7번 국도인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포항에서 끝내고 그다음이 김해에서 경주까지는 열차로 거꾸로 올라왔습니다. 이유는 두 세력이 다투라고요
그래서 김해에 그 분성산을 양복에 구두 신고 보듬 했는데 산이 낮아 쉽게 생각해서 물도 없고 별다른 준비도 없이 오르다가 나중엔 땀범벅에 옷도 벗고 손수건도 없어서 얼굴이 참담하게 되어가며 올라서 다른 등반객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로왕릉을 거쳐 수로왕릉 역으로 가서 해운대로 가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경주 가고 대구로 가서 고속열차를 타게 됩니다. 음 힘들던데 이거....
조국이 거기 출신인지는 모르고 난 두 세력의 충돌을 바랐는데 그런 갈등이 대화가 되는 것이라서입니다.
사회적인 대화죠 아직 미숙해서 이런 식으로 밖에 못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첫 술에 배 부르지도 않고 이런 미숙함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직 이 정도인 것도 사실이죠 싸우다 정들겠죠
대구에서의 코로나 확대도 역시 마구를 해야 합니다. 고단자가 나오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우연히 그렇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 일이 있기 일주일 전에 난 대구를 갑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폐에 자꾸 바람이 들어 기침이 나고 불편했습니다.
걸린 건가 하는 의심도 들고 그럼 가지 말아야 하는 건가 하는 좀 그랬습니다.
그래도 기차 타고 갔는데 동대구에서 택시로 앞산 케이블을 타러 갔죠
그리고 산에 오르니 전망대가 있는데 거기가 겨울이라 문이나 창을 닫았는데 박새 종류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쁜 새인데 말이죠 못 나가고 유리가 안 보여 머리를 박고 있었죠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마지막 한방은 뒤따라온 노부부였습니다. 남자분이 잡아서 풀어주려고 하니 마지막 힘을 다해 날아올라 유리창에 박고 떨어졌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죠
그걸 보고 있었는데 난 그리될 거 같아 멀치감치 피하고 새를 자극 안 주려고 하고 있었는데 왜 저리 새를 모르는 건지 의도야 좋지만 어리석음은 피해를 주는데 무지도 죄라고 부처가 그랬잖아
그러고 돌아왔는데 그 후에 코로나로 대구는 아수라장이 됩니다. 박새 한 마리의 저주는 아니고 내가 그리 한 것이 크니 쩝
아무튼 마구가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코로나의 전염은 다 그 이유가 있는 장소와 대상을 가지는데 그걸 일일이 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여긴 시간차가 있습니다.
대구 사건이 고단자와 연관되지만 고단자가 되어 가는 것이 더 빠르고 좀 나중에 대구가 그렇게 되니까요
물론 이런 것을 거치면서 고단자가 온전히 된 거라 무조건 이런 시간차를 말할 수 없을 것인데 상식적인 생각에 이 사건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서서히 계제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순서를 생각할 것이라서 설명하면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 쓴 것이 있는데 시간의 선후에 대한 것이 의미가 다릅니다.
내가 마구 하기 전에 이미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경우가 있고 마구 하는 중에 있는 경우가 있고 마구 하고 나서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의미가 다 다릅니다. 이런 것을 살피면서 또 알고서 안배해야 합니다.
내가 와룡산을 오른 것이 이미 시작인 것이고 그것이 사회의 동조가 저렇게 나온 것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계제의 성취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것에 사회적인 또 세상적인 공조나 동조나 같이 동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활동의 비쳐진 다른 형태라고 해야죠 그래서 나와 이 외부 세상은 거울의 대칭입니다. 다만 똑같은 형상은 아니라서 못 알아볼 것이지만 알아보면 보이는 것이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왜 고단자를 다시 있게 되나입니다.
있게 하거나 없게 하거나 이런 것이 내 맘대로 넣다 뺏다 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결과적으론 그러겠죠
난 미끼만 던지는데 그전에도 고단자가 없다고만 했지 고단자를 일일이 계제를 강등시키지는 않았죠 말의 미끼를 무느냐 아니냐죠
그리고 이번에 고단자가 나온 것도 그러한 미끼를 잘 안 물어서 그다지 내려가지 않은 분의 자연스러운 회복입니다.
그럼 왜 경상도인가 하면 내가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보수 성향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애초 대화가 되지 않으면 하찮은 것들이라서 그런데 진보도 대화 안 되는 미친 것들이 많은데 보수든 진보든 일단 대화가 서로 되느냐입니다. 인간이 이성과 합리를 내다 버리면 짐승입니다. 이런 것에게 아름다움은 바랄 수 없죠 이성도 없는 감성은 폭악뿐입니다.
정치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대화와 합리성에서 한마디로 미친것들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한참 썼듯이 의식의 수준입니다. 객관적인 사건을 두고서 감정에 따라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다르게 본다는 것은 너무 상심을 줍니다. 그래서 이성과 합리와 과학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서구인들이 대단하게 되죠 그런 것에선요 객관적인 사실을 찾는 것을 연구한 것이겠죠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런 말을 우리 문화가 만든 것이 아니라서 멀게 느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보수들이든 진보들이든 이성적인가 합리적인가 이게 아니라면 난 인간으로 치지 않습니다.
내가 해온 게 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 치면 열 받죠
말이 그렇다는 거고 그렇게 두고 볼 순 없죠 또 달래고 데리고 가야 하고 감정이 상한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니 이해해주어야 하죠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줄 의무도 있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것에 일조한 당사자로서요
그래서 이유가 되고 장기적으로 보면 한 나라이니 견해가 다른 건 당연하죠 더 잘되려고 하는 것에 다른 의견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되는데 그 정도의 성숙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보낸 사신 중에 ㅇ라도 사람은 일본이 침략한다 하고 ㅇ상도 사람은 침략 안 할 거라고 했습니다.
유성룡이 물어봤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냐고 하니 ㅇ라도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 반대한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의 감정싸움이 지금도 있는 것입니다. 겨우 이런 한 개인의 감정이 한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짓을 하는 저러한 정치인을 누가 사람으로 보겠습니까 요즘 하는 걸 보면 겨우 이 정도입니다. 그러면 안되니 다르게 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왜 굳이 대구 사태같이 부정적인 방법을 취하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장 수월하고 긍정적인 사회현상으로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경상도가 중요하니 그 파급은 클 것이지만 당장 사람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을 거죠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만한 시간과 과정을 거치고 상황이 되어야 하며 그들 스스로도 납득되는 것도 있어야 하고 돌파구도 필요하겠죠
물론 그냥 되겠지 하고 두고 보는 것은 아니고 그럴 만하게 자꾸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 경상도에서 고단자가 됩니다.
거기에 조국을 그만두게 해 주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급부상을 하게 합니다.
아 그리고 우리 카페가 회원수가 3천 명이 넘는데 그건 출판회를 하고 나서부터 광고하는 아이디들이 늘어납니다.
기계도 있고 도용당한 아이디도 있고 그러면서 광고하려고 들어와서 광고글만 하고 안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회원수가 이상하게 늘었죠 회원가입의 문턱을 높여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고 아무나 들어오게 두었습니다.
그게 <다음> 이놈들이 관리를 안하고 내버려 두어서인데 이젠 관리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이상 안 들어오고 도용당한 아이디들이 다시 탈퇴를 해서 회원수가 줄고 있습니다.
그전에 내가 카페 회원수를 보고 이게 더 늘거 같은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장될만하지 않는데 말이죠 광룡정이 유명해지거나 뭔가 배우려는 사람이 늘진 않는데 말이죠 이런식으로 더 늘어서 뻥튀기 할진 몰랐지만 수천을 채워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되니 이게 왜그래야하는지는 나중에 고민한 것입니다. 병이죠 좀비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들이 들어온거죠
아무튼 정자이니까요 오고 가는 것에 자유롭죠
그리고 이건 우리나라가 코로나로 국경 폐쇄하지 않는 것으로 응해갑니다.
처음 전염병이 생길 때 차이나를 막아야 한다고 하고 국경을 폐쇄해야 한다고 하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잘 방어하고 있는데 그리고 개방성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런 작은 것 같은 것의 소중함을 모르더군요 난 그걸 아는 정부가 더 이상했습니다. 외부와의 단절은 조심해야 하고 누구에게도 열려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요즘 세계의 고민이 되는 난민이나 다른 나라 유색인종 여러 소수인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소통에 대한 것으로 확장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쉬운 길을 안 가고 이념을 지키려는 것이 이상하죠 이런 건 보수가 더 잘하는 것인데 이념에 목숨 거는 것은 말이죠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힘들고 그것을 관철하긴 더욱 힘들고 이걸 알아주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정신 수준들이죠
너무 내 카페와 연결 하는 것일까요? 나도 이것을 관철하는 것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이었는데요
광룡정이에요 이름을 그냥 지은 것이 아니라고요 정자가 가장 낮은 건물입니다.
성 궁 원 전 당 합 각 재 헌 루 정, 건물의 그리고 공간의 높은 순서인데 맞나 모르겠네 이런 것도 다 잊어버렸숴
경복궁이죠 황제가 아니라서 성이 아닙니다. 자금성이잖아요 고종이 황제가 되니 경복성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어찌 되었든 마지막을 황제로 끝나는 게 다행이긴 합니다. 그게 엉성한 것이긴 해도 왕으로 끝나면 저런 서열에서 한 단계 낮은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니 자존심이 구겨지진 하죠
그 세력들도 그래서인지 굳이 2대 천자를 만들긴 합니다. 다 짜고 친 것인데 그런 의도도 있었습니다.
왕으로서의 굴욕을 벗기 위한 거죠
그래서 뭔가 해야겠다고 느껴진다면
그 이전에 이런 것을 해야 하는데 하면서 그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 고민을 하면서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이 형성되는 시간을 거치게 되죠
책을 통해서든 홀로 사색을 하든 누군가가 알려주든 정보를 취득하려고 하든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지식을 얻게 되며 그러면서 심층은 그 과정에서 나름의 무르익는 것을 알게 되고 지식이 명확할수록 더욱 적중하는 시기를 선택할 수 있고 중요점을 알게 됩니다.
그걸 위해 지금 이걸 해야겠다고 느껴진다면 <이것을>이라는 그것이 필요한 건가 하는 것은 그 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지식이 내가 얼마나 정확한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것이 있을 때 내가 지식적으로 연구한 건 노마디즘입니다.
들뢰즈의 책을 거의 다 읽었는데 이 사람이 책이 좀 그래요 천 개의 고원은 1000페이지가 되는데 두껍기도 지독하고 읽기 벅차죠 그걸 두 번을 보고 다른 것들도 싹 다 읽었는데 한국인이 쓴 해설서까지 다 봤습니다.
왜 탈중심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이고 왜 지금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어떤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을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있었죠
내적으로 소화되고 무르익어가면 어느 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나게 되죠 또 생각날 때까지 뭔가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뭐가 부족해서 아직 할 것이 안 나오는지 찾아야 하죠 나만 준비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번에 말했듯이 외부가 즉 세계가 그것을 해도 되는지 그걸 알아야 합니다.
때를 잘못 만나는 것이 쉽게 하는 말인데 그때를 맞추어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건 내가 준비하고 그 준비한 것을 할 수 있을 외부의 흐름을 보게 되죠 그 동조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할 시기가 오게 되고 그러면 어딜 가야 하는지를 또 고민하게 되죠
이 땅을 기준으로 하는 거라서 땅이 조력을 해야 합니다. 땅은 곧 사람이고 그래서 어느 땅을 가느냐로 사람이 응해주는 것이 됩니다.
내가 말했듯이 베트남에서 북한이 미국과 뭔가 하려고 가는데 난 지리산을 갔습니다.
법계사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르는 과정도 너무 힘들어서 산을 이렇게 힘들게 오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절에 가서 앞을 보니 물이 안모이고 앞산이 너무 높으니 협력이나 대화가 안 되겠구나 했습니다.
어느 지역을 가느냐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 응함이 빠르거든요 장소적인 위치 그 땅의 형상이 주는 기미 그 지역 사람들의 성향 모든 것들 다 참고합니다.
나라 전체 지도에서의 의미 산들의 의미 도시의 의미 도로나 바다나 강물들이나 이런 것들을 다 봅니다.
작년에 계룡산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가야산 천자국 마구 이후의 후속작업에 신경 쓴 것입니다.
가야산은 막다른 지역입니다. 들어가서 다시 나와야 하는 것이라서 이런 것은 과거엔 자미원이라서 상하 관계를 중요시하던 때에는 좋은 지역이라고 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는 것에 그러한 것을 이용하긴 했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상하관계이니 상으로 가기 위해 쓴 거고 상으로 가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니 그다음을 해야죠
(근데 내가 상의 의미를 한다고 오해해서 비판하거나 뭐라한다면 방법상의 순서라는 것을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대개는 그런 것을 기다려주지 않지만요 ㅎㅎ)
그래서 물이 하나의 수원 즉 물이 한줄기만 나오는 것이 되는 것인데 막다른 지역이란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른 수원 다른 물줄기가 서로 만나서 흘러가는 곳을 찾은 것인데 거기가 계룡산 근처인 거죠
그리고 거긴 북진이 있습니다. 이건 신분의 상승을 하게 하는데 그건 물을 막을 수 있는 또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바위가 늘어섰다는 것이라서 그러한 강대한 힘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후장상이 난다고 하는데 특히 왕후라고 굳이 말합니다.
그러니 그러한 더욱 상승하면서 그러면서 물이 두 줄기이니 다른 것과 합쳐져서 또는 다른 흐름을 받아들여서가 됩니다.
물의 수원이 하나면 자국의 것만을 고집하고 다른 것이나 외부나 세상을 외면하면서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게 과거엔 그랬는데 그건 과거인들의 한계이고 지금은 다양한 흐름이 다양한 결합과 교류와 연결로 되어간다는 것을 모르던 것입니다.)
그 모임 이후 난 블로그에 넷플릭스를 올리며 그것을 사용한다는 암시를 줍니다.
가야산을 가면서 제인이라는 것도 하게 됩니다.
제인과 그리고 현통마해로 이어지게 하고 있었고 그것이 점점 구현되어가는 것을 그 네트워크로 강화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팔찌를 하는 분도 안 하는 분도 있을 것인데 각오나 도덕의 차이겠지요 함께 하지만 따라오지 않는 것을 뭐라 할 건 없습니다.
별거 아닌 팔찌에 너무 거창한 의미부여를 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려고 정성을 들이고 있고 바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하고 그로 인해 세상은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데 그리고 일 년이 지나면서 그 구현이 나타납니다. 이것도 상징이겠죠 그러면서 결과입니다. 그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요 그게 있었잖아요 상상을 하셨나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드라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요?
언제나 있기 전엔 상상도 못 하죠 그러다가 그것이 눈앞에 나타나면 기적이겠고요
그러면서 누군가는 온갖 멸시와 비웃음을 참아가며 준비한 자는 있습니다.
이것이 두 물줄기 그러니까 우리 것과 남의 것을 합쳐서 하나의 현상을 만든다는 것인데 이것도 과정입니다. 이러한 것이 해나갈 일이라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죠
세상일이라는 것이 순서가 있습니다.
순서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 있는 것이죠
이게 되어야 저게 되고 이게 준비되어야 저걸 하고 바닥을 다져야 기둥을 세우고 이걸 알아야 그다음 걸 가르치고
속옷을 입어야 겉옷을 걸치고 초딩지나 중딩이고 다음이 고딩이겠죠
일단 이렇다고 하죠 이것도 무조건은 아니지만요
이런 것은 흔한데 그런 거 말고 자천에서 각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순서를 인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수학을 푸는데 기초적인 것들을 이수하고 그다음에 고위 방정식을 가르치겠지만 처음부터 고위방정식을 가르치면서 필요한 기초 수학을 그때그때 알려주어도 안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이렇게 안 하죠 안된다기보다 효율성에서나 가르치는 방식이나 장소나 과정에서 다양한 조건들이 그렇게 안 하게 하고 있습니다.
즉 순서가 절대적인 것은 아닌데 그것을 지키지 않겠다면 그만한 대가가 있습니다.
각성이라는 것도 돌발적으로 깨우칠 수 있을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수학처럼 그런 과정으로 아무나 되지는 않습니다.
이건 지적인 사유이니까요 지름길로 건너뛸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순서를 안 지키면 어찌 될지도 알아야죠
요즘은 심리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게 뭔지 잘 모르시나 본데 심리라는 것이 무형이라서 이렇게 저렇게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지 아는 것이 과거인데 심리학이 나오니 그게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한 번 상처 나면 물질에 상처 난 거처럼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형일 거 같은데 아니라는 거죠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서 히스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성 역시 그렇게 건너뛸 수 있을 거처럼 보이지만 마음이나 지식이나 물질 다루듯이 해야 합니다. 벽이 있고 길이 있으며 두껍기도 얇기도 합니다. 복잡한 미로이기도 큰 대로이기도 합니다.
그냥 알아지지도 않고 그냥 깨달아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벽이나 길이나 산과 돌 같은 것을 잘 보고 그에 따라 처방을 하듯 필요한 지식이나 과정을 가르쳐주듯 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건 마구도 마찬가지인데 그냥 내가 하는 겉모습을 보고 어디 가면 뭐 되는구나 뭐하면 뭐되는구나가 아니게 됩니다.
지식을 쌓고 정보를 얻고 그것에서 어떤 결론이 나와야 뭔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명리학을 수년째 공부 중입니다.
이게 어려워서 나름 뭔가 알 거 같다고 생각되는데 이제야 말할 수 있습니다.
2014 년 부터며 8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시간이 지나야 내가 명리학에서 어떤 마구 할 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탈중심을 이해하는데 철학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그거 역시 수년을 거치고 그 후에도 한참을 더 보고 그러면서 서구인들의 문명을 철학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 서구인들이 어디까지 간 건지 알기 위해 사고 훈련을 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뇌가 맛이 갔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해야 할 것은 해야 하고 준비가 안되면 다음으로 갈 수 없으니 일단 해야 합니다.
대가리가 나쁘니 남보다 더 노력해야 하니까요 하루 12시간을 책을 보면서 있었죠 과거엔 ㅎㅎ
서구 문화의 정점이나 첨단을 모르면 그 다음의 문화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어찌 되었든 서구문화를 기반으로 해서 그 다음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수원을 하나가 아니라 두개 이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중앙집권이 안된다는 것이고 시대착오이거나 정치의 헛발일 수 있습니다. 여러 수원이 여러 방향으로 가는 것이며 그 방향은 결국 바다로 갑니다. 수원이 하나가 아니라 그 결과가 하나입니다. 언제나 시민으로 즉 바다로 되돌아가는 것이겠죠 그 수원도 결국 바다에서 온것이지만요 복본 귀본 귀향 만류귀종하며 만류시발은 결국 바다입니다.
즉 내가 어떤 분야에 마구를 한다면 일단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어디까지?
그것에 자유로울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즉 명리를 예로 들면 명리학을 배워서 명리에 자유롭게 다룰 수 있고 운명을 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명리가 아닌 그다음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정도까지 가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마구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항상 질문이 있고 의문이 있습니다.
이게 뭐지 왜 이런 거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무엇이 그렇게 한 거지
이런 의문을 언제나 가집니다.
그래야만 서서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타나고 알아지며 알아가려고 행동하며 정보가 다가옵니다.
그래서 뭔가 알 거 같으면 그 답을 점검하고 원리에 대입하고 내 도에 맞는지 보면서 확신을 가져가야 마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의문입니다. 아마 의문이 사라지면 그때가 드디어 내가 멈추는 날이 되겠죠
세상에 기미는 언제나 있고 무엇을 기미로 볼지도 안목 나름입니다.
탄핵 당시 우리나라엔 닭들이 무수히 죽어갑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것이기도 하고 계명성인 닭을 죽여 덮고 싶어 하지만 이미 해는 뜨고 있었겠죠 새 시대가 밝아오는 것을 막을 순 없죠
이게 유년 닭의 해입니다. 닭의 해에 닭이 죽어가니 죽을 수 없죠 닭이 세상을 덮고 있는데요
금은 수를 생하는데 그 수가 기생충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기생충이 한해를 뒤덮더군요 기생충 약까지도 먹는다고 하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장식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기미라고 하면 기생충은 바이러스가 되어갑니다. 엄밀히는 다른 거지만 동양에선 같은 수이고 해자축이 같은 벌레이기도 기생충 이기도 바이러스이기도 하죠
을미년엔 미에 입묘 된 계수가 전염병을 일으킵니다. 다만 토에 극 당해 쉽게 사라지긴 하죠
토에서 나와 토에서 죽었죠 이건 수토를 같이 보는 건 풍수적인 것인데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됩니다. 배경이나 베이스가 무너지고 있던 거죠
그 기생충이 바이러스로 그 바이러스는 또 다른 수생생물로 이어갑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 축의 토에 길러져서 생물이 되었죠 수생생물이 기어서 땅을 밟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뼈를 가지고 형태를 만들려고 하고 있죠
그것이 오겜이고 드디어 세계를 정복합니다. 코로나따라 가면서 오징어는 승천하는 거죠 상달한다고 지랄해봐야 결국 습지이고 바다로 가는 것입니다.
유년이 그러면 술년은 개의 해인데 개가 일을 저지릅니다. 그 기미는 유년 가을 지나면서 개가 사람을 무는 일이 세계 곳곳에 벌어집니다. 그러면서 술년에 노란 개는 기대하던 북한의 가슴에 비수를 꼽습니다. 개 같은 짓을 하죠
개를 지나 돼지가 되면서 돼지는 면역이라는 말이 되는데 더러운 곳에 살아서 더러운 것에 면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기생충이 살죠 ㅎㅎㅎ
그런데 이런 마구들엔 다른 것도 함께 합니다. 거의 꼭 그럴 것인데, 심장의 아픔이 동반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마구를 할 때 간 곳이 양자에 관한 것도 있는 것이 되어 우리나라에 양자가 양부모에게 희생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건 사회에서 일어난 아픔이고 내 개인에게도 일어나는 아픔들이 저러한 것과 비슷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두 곳에서 일어나죠 사회에 그리고 나에게, 이런 것을 동반하면서 일어납니다.
왜요? 사건이라서 그렇죠 사건이 터지는 것이니 잘되는 사건이라도 그림자는 있고 안 좋은 사건이라도 그림자는 있습니다.
그런 그림자론도 되죠
아니면 우리의 그리고 내 심장을 동력 삼아 사건이 일어나서도 되고 동력에 이거 외에 내 복 그러니까 전생들에서 모아둔 공덕들을 때려 넣으며 나에게 올 복을 마구에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프렉탈 같아서 내 주변부터 일어나고 더 큰 주변으로 나가고 사회로 나가고 세계로 나가고 하면서 물결처럼 퍼져나가면서 사건이 일어납니다.
심장이 많이 쓰이니 이번 백신 때 고생을 하더군요 그럴 것 같았죠 심장에 부담을 준다고 하니 내가 심장을 소모한게 많은데 이번에 좀 힘들건가 했죠 음 자다가 안 깰 수도 있겠다고 좋아했는데 깨긴 하네요 ㅠㅠㅠㅠ 정말 잠을 잘 잤습니다.
잠드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잠 잘 들게 돼요 문제는 하루 종일 무기력으로 있어서 그게 힘들긴 한데 해 떨어지기 시작하면 널브러지듯 힘쓰기도 힘들고 코코코코
그런 것 보다 신체가 많이 아픈데 발바닥 무릎 이빨 두통 그 외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통증이 찾아옵니다.
그게 다 이유가 있어놔서 어디 아픈 거 보고 먼일 있을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 이게 더 힘듭니다.
어디 아프면 아 또 그런 일 생기겠구나 하면서 미리 걱정하고 신경 쓰이니 이게 더 미칠 지경입니다.
음 이런 건 앓는 소리인데 마구 하다 보면 생기기도 한 것이지만 아마 자천하다 보면 이런 감각은 많이 느끼실 겁니다.
(자꾸 이런 글을 올렸는데 내 경우가 이상한게 아니라 여러분도 이런 것을 하거나 자천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으면 이상하게 볼게 아니라 이런 것이 어디에 응하는지 살피라는 의미로 자꾸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소리를 합니다. ㅎㅎㅎㅎ)_
코로나 이후 무릎과 발바닥이 대가를 치르고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생기는 두통과 머리 종기들이 사람들의 원망이 온 것들입니다. 나도 코로나를 그만 끝내고 싶어요라고 말은 합니다. 말은 하죠 음음
아무튼 이런 것도 원치 않지만 일어나게 되는 원동력이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아픔이라는 것이 재미나요
가야산을 갈 때도 피씨를 모니터 보고 있는데 서서히 체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두통과 구토와 위로 싸고 아래로 싸고 죽을 거 같이 힘든데 말이죠
근데 올핸 이게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뱃속에 없는데도 어지러우면서 두통이 시작하면서 서서히 체하는 느낌이 든 단말이죠 그런데 점심을 약속이 있어서 먹어야 해서 먹었는데 이게 체하는 거죠 또 위로 아래로 ㅠㅠㅠ
체하려고 먹나 먹어서 체하나 빈속인데도 체하더라고요 그래서 음식을 넣어줬죠 체하라고요 그게 올해인데 이게 왜 그런지는 알죠 어떤 분들과 만날 일이 생길 거라고 봤는데 정말 만남이 있더군요 ㅎㅎ
사람 만나는 것일 뿐인데도 이리 힘들죠 뭔가 하는데 왜 이런 고통을 굳이 주는가는 뭘 하려고 하는 거죠 굳이 밑줄 쫙!! 굵은 글씨로 쓰고 선 긋는 것과 같아요 그냥 평범한 일인데도 그렇게 강조하며 힘을 쓰면 뭔가가 시작하는 것이죠
올해는 이거 말고도 피까지 쏟았는데 음 죽으려나 기다렸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아까비 그거였숴ㅋㅋ
신체가 참 재미나요 내신체는 바이러스 없이도 바이러스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픈 것에 원인 되는 기제가 없는데도 아플 수 있을 거 같거든요 뼈가 드럽게 아픈데 원인에 해당하는 이유를 알면 아무 이유없이 멀쩡해져요 적당히 아픈것도 아니고 드럽게 아펐는데요
재미로 말하면 기미는 이런 아픔 말고도 온갖 것들이 다 있어요
올해도 해운대를 갔는데 오늘따라 모래장을 걷고 싶더라고요 원래 여기 해운대네 하고 뒤돌아 오거든요
그래서 모래사장을 걷다가 보니 호텔이 생기고 사람들이 나와서 즐기고 있더라고요 저 호텔이 원래 있었나 하고 보는데 그러다가 앞을 제대로 못 봐서 누가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서 엎어졌습니다. 왜 이 창피함이란 ㅎㅎ(호텔에 옷벗고 다니는 사람 구경하다가라고는 말못하구요 흐흐)
그런데 이게 왜 그런가 하니 그날 저녁에 집에 오니 해운대 근처 호텔 무료권이 생겼다고 가자고 해서 또 왔습니다. 음 왜요? 서울, 부산 시장 선거에 이쪽이 승리하거든요 근데 부산에선 코로나 모임 숫자 제한으로 식당에서 밥도 안주더라고요 쳇 인심 글케쓰면 안 되지요
이런 거 쓰면 너무 많은데 다 잊어버려서 말이죠 다만 이런 기미들이 좀 위험해요 내 사정 따윈 안중에 없다 눈
아~ 그리고 이러면 신체 반응을 보고 아프지 않으면 나쁜 일이나 힘든 일이 안 생긴다는 것도 될 거 같은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런지 알고 정상 컨디션이면 좋아라 했더니 아무 증상 없는데 툭 터지는 사건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죠 참 이상하단 말이죠 어떤 일은 아무 기미나 전조증상 없이 나타나요 뭐든 규칙이 있는 듯 없음 ㅠㅠ
그럼 앞으로의 마구 방향에 대한 어림을 말할 것입니다. 대강이라는 거죠
간단히 말하면 서구의 문화를 보면 화학제품 같죠
그러니까 나무는 살아 있는데 나무를 잘라서 말려서 가공해버리면 나무의 생명은 없고 그냥 나무인 거죠
정수랄까 핵심이랄까 생명이랄까 하는 그것이 빠진 건조하며 질척거림 없고 끈적임 없고 메마르고 간소화된 것이 됩니다.
그것이 과학을 만들고 산업을 만들고 세련되기도 하고 도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것에 우린 질척거리고 간단하지 않으며 생명을 느끼고 싶고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수량화해서 무미건조하게가 아니라 그 숫자에 얼마나 심장 떨리고 소중한 사람의 기억이 사연이 아픔이 정성이 있는지 아는가입니다. 과학이든 경제든 뭐든 수량화로 그 안의 우리들의 사연을 제거하니까요
단팥 빠진 찐빵 같은 서구문화에 그 단팥인 심장을 마음을 감정을 영혼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우리의 귀신은 사연이 있습니다.
따돌리거나 경배하거나 죽어야 하거나 해롭거나 한 것이 아니라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남의 사연을 들어야 생명이 존중될 것이고 남의 마음 아픔을 알아야 인권이 성장될 것입니다.
우린 숫자로 계량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정성 들이고 신경 써야 할 마음이 있는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