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한다라는 말을 내가 자주 쓰긴 하는데 불교에서 배운 거죠
개가 낯선 이를 경계하듯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계를 보는 것인데 이것이 보초가 적을 감시하듯이 내 자신의 어떤 것을 감시하는데 그건 대개 욕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적의 모습을 알아야 적의 식별을 가능하게 하고 집중을 하겠지만 욕망은 그 모습을 알 수가 없다는게 있습니다.
물론 다양한 감정들을 나열하며 말하기도 하지만 그게 욕망인가
욕망없이 사는가가 또 관건이 되는 것이라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욕망들 중에 어떤 것은 안되고 어떤 것은 되고 식으로 나눈다지만 정말 그렇게 간단히 나누어지는 것인가라는 것도 있겠죠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점점 내가 어떤 감정에 고착화 되어가는 것을 본다고 전에도 말했는데 그것에 대한 갈등을 매일같이 하다 보니 또 이런 것을 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그 상대가 이건 이러하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사항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집착하거나 타협없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겠죠
사실 대개의 사람들은 다 이러합니다.
그러면 난 그것과 반대되는 말을 하게 되죠
상대가 a라고 하면 난 b라고 합니다.
이러면 상대 성질을 건드린 것이 되죠 어릴때엔 친구에게 이러면서 장난질을 했습니다.
거기에 개그를 섞어서 말하기도 했죠 그냥 친구의 말에 반대의견을 말하면 기분 나쁘니까요 그래서 개그적인 요소를 섞어서 장난으로 포장을 하면서 말했죠 그래서 웃음 없는 대화나 말이나 주장은 범죄라고 말하고 싶거나 인간이 덜된 거라고도 강조하죠 해학을 모르는 미숙아 같으니라고 말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블로그나 카페나 배우려고 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개그를 할 수가 없게 된 것이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너무 진지하거든요 ㅎㅎㅎ
이건 또 웃기는 것입니다. 상대가 진지하면 난 장난치고 싶고 상대가 장난치면 난 진지해지고 싶거든요 어릴 때부터의 청개구리 심뽀는 여전합니다.
난 사실 일상이 개그인데 다만 아닌 듯이 할 뿐인데 근거로 명리적으로 난 상관이 국을 짜는데 이게 장난질이니까요
자미두수론 파군이 명궁인데 파군은 진지한 거 싫어하거든요 일단 깨고 보는 드러운 승질이라서리
기문으론 손궁인데 여긴 별난 곳입니다. 천라지망이라서 땅속에서 살지만 항상 번영한 영화로운 곳을 추구하거든요 구렁이가 햇빛에 일광용을 즐기는 것 같이 요상한 것이니까요
이런 건 그냥 하는 말이고요
그렇게 난 상대가 하는 말에 반대나 비판하며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러면 상대는 난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b에 해당하는 것을 말하니 b를 지지하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날 알게 되겠죠
그러다 내가 b를 비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 또 혼란할지도 모르죠 언제는 그것이 맞다는 듯이 하더니 또 언제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하니까요 그래서 블로그 초기에 내가 여기선 이렇게 저기선 저렇게 말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상대가 누구냐 상대가 어떤 의견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말을 한 것이지 내 주장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 주장이 없느냐면 그건 아니고요 일관적으로 꾸준히 주장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건 어떤 것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수년 수십 년 평생을 한말 또 하고 한말 또하고 하면서 매번 주장하는 것들이 있죠 사실 이 글도 그런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있죠 그 차이는 뭘까요 남이 주장하는 것엔 딴지고 나는 또 이런 것을 주장하고 이 차이가 뭘까요?
상대가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 알게 하고 싶은 거죠 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주장하는 것을 알아야 남이 주장하는 것은 뭔지 보겠죠
꼭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닌데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상대에 따른 대화를 하는 것이죠
때론 내가 며칠이나 몇 달이나 몇 년을 같은 것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말로 바꾸는 박쥐 같은 변덕을 가지지만 이런 것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언제나 어떤 것을 말하지만 또 언제나 그런 것을 맞는다고 봐서가 아니라 지나가는 말이었을 뿐이니까요
왜냐하면 자천하는 것인데 어떤 주장이나 고집이나 선입견을 경계해야 하죠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이니까요 언제나 하는 말입니다. 공입니다.
대화하는 말은 상대나 그때의 시기나 상황이 그러해서 하는 말이지 그런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서가 아니게 됩니다.
이유는 공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의 흐름이랄까 삶의 주기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맞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데 이 깨우침을 무너트리면 스스로 깨우친 것을 버리는 것이 되니까 이것을 견지해야 합니다.
깨우침이 있어야 깨어있음이 됩니다. 이해한 것을 경계하고 지키고 행하기 위해선 이 깨어있음을 놓치면 안 되게 되죠
길게는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 생에선 이렇게 말하면서 살거나 이런 욕망으로 가치관을 형성한 것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생에서의 삶이 다인 거죠
그럼 사실이나 진리는 뭐냐고 하면 내가 진리가 뭐냐고 묻는 것과 남이 진리가 뭐냐고 묻는 것은 말은 같은데 다른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공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알고 싶은 진리는 다른 것이니까요
사실 난 진리가 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진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내가 묻는 그 상대가 누구냐입니다.
만약 배우러 온 사람에게 묻는다면 일종의 상대의 사고체계가 뭔지 알려고 떠보는 짓일 수가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만약 어떤 타존제가 왔는데 엄청 높은 계제를 가진 분이라면 이 사람에게 진리가 뭐냐를 묻는다면 이것도 떠보는 것이긴 한데 이 사람이 어떤 식으로 공부한 걸까를 알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질문은 진리가 뭐냐인데 상대는 아마 "넌 그럴만하냐"로 들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럴만하냐가 뭔 말이냐면
여기엔 생략된 말이 있는데 대강 말하면 "내가 보기에 당신은 상당히 공부한 것 같다. 놀라운데!! 그래서 궁금한데 어떤 식으로 공부한 건가 어떤 전통이나 방법이 여기나 나와 다른 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비슷한데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이 많이 달라서 상당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인가 너에게서 뭔가 신선한 의미를 듣고 싶은데 그런 게 있겠는가 그리고 여긴 왜 온 거지? 뭘 하려고 뭘 아쉬움이 있어서? 아니면 의도한 뭔가 다른 게 있나? 그래 보이지 않는데 꿍꿍이가 있나? "
이런 말이 생략된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는 "별거 없습니다." 하겠죠
그러고 갈 것인데 여기엔 이렇게 연을 운명을 미래의 정함을 한 것입니다.
즉 이 별거 없다는 말에 이후에 다시 오면 만나야 하는 그의 권리가 형성된 것이고
그러면 난 만나야 하는 의무가 형성된 것이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일의 형성을 해야 하는 책임이 형성됩니다.
굳이 그는 나를 보러 왔으니 내가 하는 것에 그가 간섭을 해올 것이고 난 그것을 이미 알았으니 이후의 그가 하는 것에 그에게 정당화가 만들어진 것이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간단한 한 두 마디에 운명의 뒤엉킴이 복잡해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가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난 이런 것에 착잡한 마음을 느끼면서 그냥 두고 볼 수밖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아주 먼 시간이 지난 후이겠지만 이렇게 또 하나의 사건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도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겠죠 그 시선이 어떤 마음인지도 알 것이고 그래서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일테구요
사람들은 진리가 뭔지 궁금할 것이지만 난 상대가 궁금해서입니다. 나에게 온 이상 나에게 와야 하는 이유가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겠죠 그게 궁금하죠 그래야 내가 해줄 수 있거나 내가 도움받거나 줄 수 있거나가 되겠죠
서로 간의 관계 형성의 방법을 정해야 하니까요
그게 아니면 만날 이유가 없고 그럼 굳이 보지 않는 게 기본 룰입니다.
말이 옆으로 많이 새는데
말하자는 것은 내가 하는 말이라는 게 그것이 어떤 것이건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공이라서요
그런 말을 그 당시에 한 적은 있지만 그 말을 지금도 견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욕망 따라 시간 따라 상황 따라가는 것이지 고착화되어 있는 주장은 없습니다.
이러기 위해 부단한 애를 쓰고 있어서입니다.
다른 것이 되고 비우고 무가 되기 위해 내가 한 말을 버리고 내가 주장하는 것을 경계하고 이런 것을 그저 습관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합니다.
나이 들어가니 자꾸 어떤 것으로 치우쳐가는 욕망이나 감정들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쉽게 비판하거나 간단히 관찰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만한 각오와 경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뒤받침 되어야 하겠죠
그래서 자꾸 이런 글도 씁니다. 경계하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