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에 대한 글일 것인데
글로 써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머리에 드는 생각은 있는데 글로써 얼마나 설명이 될지 자신이 없어요
일단 각성이라는 말은 흔한 것이라서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인데 깨우침을 말하죠
깨우침이 무엇이라고 먼저 설명해야 하지만 여기선 일단 넘어갑니다. 여기서 깨우침이라고 말한 건 잠에서 깨어 있는 것도 각성이고 요즘은 웹툰에서 초능력을 얻는 것도 각성이라고 해서 그냥 구분하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게 고상하게는 견성이나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이긴 한데 불교의 종파인 선종에서 굳이 이 부분을 과대하게 벌려놓은 의미 과다 부여가 있어서 이걸 냉정하게 보지 못하면 죽어도 깨우침은 물 건너간다고 강하게 내가 주장하겠는데 그만큼 그쪽에선 환장하고 있는 것이긴 합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는 게 절대적이라고는 못하지만 대개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못하더라도 이것의 의미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식을 구분하는 데 하나의 기준으로서 써먹기 좋아서이고 눈금이 되어서입니다.
그런데
각성을 지식의 확장이나 정신적인 확대나 성취나 어떤 체험이나 신비체험이나 지식이랄까 도에 대한 광대한 이해나 통찰이나 심오한 이치를 이해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의식이나 인지가 확장되는 것이기도 해서 머리가 트인다고 하는 거죠
간단히 머리가 뻥튀기되는 듯해서 선종의 일화에선 그 과정에서나 심득이 있으면 광오한 짓도 서슴지 않고 지랄 발광을 하고 괴상하면서 미친 짓도 하고 이게 되면 다 되는 양 교만해지는 것이기도 하는 것인데 남이 각성하는 일화를 들으면 그에 대한 상상이 미친놈 날뛰듯이 상상의 나래는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면서 허무한 환상을 가집니다.
그래서 대오각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걸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죠
나에게도 이게 하고 싶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인지능력의 곡해를 이해 못 하는 것인데 길게 설명해봐야 입만 아플 것이고 그런 자세한 설명을 터부시 하는 또 못된 지적인 나태도 있어서 이생은 안 되겠구나 했습니다.
왜 이생엔 안되는가 하면 그런 것을 바라면서 구도를 할 경우 그 바라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아직 아니라면서 다그치겠지만 바라는 그 체험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건 자기가 들어서 알게 된 어떤 것에 대한 망상을 원하는 것이라서 그 망상에 몸이 따라가야 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요?
도가 자기가 원하는 어떤 그림이나 설정된 체계나 이미지나 와닿는 뭔가가 있을 것인데 도를 모르면서 이런게 있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것조차도 인지못하는 것이니 더 말할게 없지요
사람들은 어떤 사항에 대해서 들을 때 과장하거나 과소하게 듣게 됩니다. 감정의 증감을 거치기 때문인데 이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그 들은 사실에 대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것을 저렇게 표현한 건지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말한 건지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받아들인 지식은 결국 스스로를 좌절하게 할 것이고 방황을 하게 할 것입니다.
또 체험을 해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게 진짜인지 알거든요 체험은 감각한 것인데 감각기관의 장난입니다. 장난이 심하게 들리면 부드럽게 말해서 감각기관이 한 거니 어떤 하나를 감각한 것입니다. 감각한 거라고요 감각은 해석을 거쳐야 합니다. 감각이 뭔지 뭘 감각한 건지 대상이 있는 것인지 없이 일어난 건지 무엇에 대한 감각을 어떤 방식으로 아니면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감각한 건지 따져봐야 합니다. 뭔가 체험하고 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죠
인간은 해석하고 설명하며 원리를 찾아 체계를 만들어야 그것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그냥 감각한 것만으론 자랑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이걸 넘어가기 위해선 다시 태어나는게 더 쉽습니다.
지금 가진 사고 습관이나 버릇을 다시 재설정하는 것을 이생에서 할 수 있다면 모르겠는데 이걸 못한다면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다른 기호나 습관, 관심을 가지는 성향으로 태어나서 하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생엔 어렵나? 하는거죠 너무 냉정한가 ㅜㅜ
이건 그 각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그러한 체험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말의 의도를 보고 이면을 보아야 하겠죠
근데 그걸 말하자는 것은 아니고
저러한 것을 이해해서 뭔가 알던 느끼던 체험 하든 한다고 난 각성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냥 감각이고 체험이며 거기까지 입니다.
자기 정신이든 내적으로 어떤 것이 일어난 건 맞아요 그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내적인 어떤 것이라는 한계가 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방 안에서 각성을 해서 이제 뭔가 알겠다고 황홀함에서 우뚝 서는 자율을 느끼었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밥 먹으라고 합니다.
그럼 난 "밥이라는 게 끼니를 채우면 되는 것이니 배고프면 알아서 챙겨 먹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들고 있던 주걱을 내리치면서 "지금 안 먹으면 이 집에 니껀 없어" 딱!!!!
그냥 밥 먹었습니다.
내적으로 아무리 거대한 세계를 보고 체험하며 무한한 법열을 느끼지만 현실은 전혀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 안 벌어오려고 수 쓰는 건가 약 파는 건가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봅니다.
사회에선 그딴 개소리 집어치우고 생산적인 것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내적으로 마음의 평화, 외적으론 주위 가족에게 쓸모없는 인간으로 규정됩니다. 사회적으로도 패배자가 되어갑니다.
주위에게도 각성자로서 인정받고 그 각성을 기반으로 변화시켜 가는 것을 할 수 없으면 각성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인정받지 않아도 되긴 해요 그건 내 각성의 종류가 뭔가에 따라 다르고 그로인해 어떻게 주위와 세상에 그것이 퍼져나가고 기입되어가는지 안다면 입니다.
이걸 못할 경우 시간이 흘러 몇 달 몇 년을 지나면 그 체험은 지나간 삶의 경험 한 조각으로 남을 뿐 또다시 현실의 냉소적인 관계에 매몰되어갑니다.
가슴 한켠의 허탈과 회한을 머금은 채 출근하면서 하늘 보며 오늘도 오늘도...
즉 각성은 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하는 것인데
내 주위와 사회에 각성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산속에서 어딘가에서 행한 각성 체험은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주위에 사회에 세계에 간섭해 들어가면서 각성해가는 것이 진짜가 됩니다.
니가 뭘 각성한 건지는 관심 없고 니가 어떤 것에 접속되어 있는지를 보겠다고 내가 말합니다.
상대가 뭘 말하든 뭘 행동하든 얼마나 명성 있든 대단하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되든 그런 건 안 봅니다.
그 안에서 나오는 동기를 보고 그 동기로 인해 간섭되는 사회나 세상의 간섭된 결과를 봅니다.
이게 뭘 보는 건지는 모르겠죠
각성자는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성해서 뭔가를 간섭하고 있으니 남이 하는 간섭을 보는 거겠죠
간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공동체를 사회를 세상을 각성시켜가고 있으니까요 그 각성하고 있는 현상을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사건이 나고 어딘가에서 어떤 발상을 하고 대중의 심층에 또 의식에 또 인식이 뭘 하고 뭘 하려고 하고 그런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의 각성하는 것을 보죠
여러분은 내가 각성해가는 그 과정을 보시나요?
보일 건데요 말이죠
왜냐하면 난 내가 각성하는 과정을 설명했거든요
이 나라가 이 세상이 달라져가는 것을 열심히 말해주었잖아요 각성하는 과정을 말이죠
부처가 각성하고서 열반에 들려고 했다고 합니다. 즉 디질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주위와 신들의 만류로 인해 가르침의 바퀴를 굴리는 것을 했다는데 이러면 부처가 각성을 미완으로 한 것이 됩니다. 주위의 만류가 없었다면 깨우친게 아니라 깨우치려다가 엿된게 되죠 그래서 사람은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본인이 몰라도 그길로 가게 해주는 인연은 공덕에서 오거든요
저도 과거에 뭔가 이루었다고 미친소리하면서 이젠 그냥 돈이나 벌고 죽을때나 기다리자고 했는데
그러다가 이게 아닌가 하는 반성으로 블로그로 시작하더니 여기까지 오고 있었죠
난 공덕이 부족한지 말리는 분은 없더군요 인간관계를 안해서 관심도 없고 ㅠㅠ
신들은 그러든가 말던가 였고 역시 이때부터 사이가 별로였쒀
그러면서 블로그에서 카페 다시 세상을 뒤엎어가면서 뭔가 하고 있죠 이런걸 다 설명을 해주었는데 세상이 어찌 될거라고 내가 이렇게 각성하는 과정을 일일이 다보여주는데 음
세상을 각성시켜가는 것은 또 아닙니다. 이걸 또 오해하겠죠
간섭이라고 말한건 그래서 입니다.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지 세상사람을 갑자기 어떤 정신수준으로 한다거나 그들을 영적으로 각성시키거나가 아닙니다.
어떤 영향일지는 각자의 깨움침이 다르니 다를 것입니다. 때론 그 깨우침이 각자의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