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통마안-해평편

구성원 세부

제라울 2018. 12. 13. 18:46

구성원

구성원에 대해선 더 설명 해야겠다.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실천하기엔 까다로운 면이 있다.

즉 구성원이 구성원이면서 대상도 되는 것이어서 이건 사실 대단한 것도 여기서만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설명하면 이상하다 하겠는데 별건 아니다.

만약 이 사회를 예로 들어서 하면 여기에 뭔가 의도하는 것을 행해서 뭔가 했다면,

그 의도한 것에 대한 것이 그것을 행한 그 구성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간단히 하면 기업이 핸드폰을 만들면 그 만든 회사 직원도 자기들이 만든 핸드폰을 쓰는 것이 되는데, 어렵게 되먹힌다는 것이다. 지가 한 걸 지가 사용한다.

내가 해놓고 내가 당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이냐로 이런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기도, 신경이 너무 쓰이기도 한 것이다.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규율을 정해놓고 내가 어기면 지가 하고 지가 당해서 철창신세 질 수도 있다. 입법기관이 하는 짓인데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확대하면 적용하는데 이렇게 지가 구성원이고 지가 대상이 되는 것이 생각해볼 꺼리가 된다.


그래서 "   "은 자천을 기반으로 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공이고 덕이고 도이고 하면서 이런 것이 없이 일하다보면 나중에 독박쓰게 된다.

자기가 한 것에 자기가 당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그것에 자유롭다고 자만하거나 자기가 행할 수 없는 것을 의도하면서 일한다고 하면 분명 그에다른 치러지는 것에 휘둘리며 나가 떨어지는 것이 된다.

그러니 분명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각오가 남다른 것이기도 하다.

이번 출판회 모임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신관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자기의 감정이나 이념에 문제가 드러나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 어느 지위도 그러해서 지위는 그만한 책임이 있게 된다.


구성원이면서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엔 이렇기도 한데,

내가 구성원이라고 자신있어 하면 이미 간극이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자만인 건지 아니면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서 의도된 것인지 스스로 인식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러지 못하면서 스스로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 간극은 또다른 구성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고 물리듯이 구성원끼리 빈틈은 그로인해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빌미가 되어감이 있다.

이것이 뭔가 살벌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구성원이 중요 인물이면 그 인물은 자기의 감정이지만 그런 감정이 들어가는 것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되먹히고 되돌아오고 체화되면서 소화시켜가는 것에서 점점 체화되지 않는 무언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서이다.

즉 내가 구성원으로서 일하다가 어떤 구성원으로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내가 일하면서 그 댓가가 항상 돌아오는데 그 돌아오는 것이 단시일에선 견디는데 장기간에서 그러한 일이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면서 견디지 못하는 틈이 발생하고 내구성의 파열이 생기는 것이기도 해서이다.

여기엔 그런 빌미는 스스로 가진 것이다. 욕심, 분노심, 탐심, 권력심, 자만이나 뭐나 어떠한 것이든 가지고 있던 감정의 또 인격의 또 업의 또 성격의 감정체계의 그러한 것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의 미약한 것이 먼저 있는 것이 그러한 것을 체화하는 것에 한계를 먼저 드러내는 것이 된다. 미약했던 것이 커지면 드디어 터진다.

이건 댓가의 되돌아옴이 나쁜 것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그런 것이 아니라 돌아오고 돌아가게 하고 들고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나빠서 체화 못하고 좋아서 체화하고가 아니다.

어떤 것이든 체화하는 것에 걸림이 생기는 것은 사람따라 다른 거라서 무엇이 그리 될지는 모르는 것이다.

좋은 것도 간극을 발생시킨다. 오히려 이것이 더 문제일지도 모른다. 좋다 좋다하다가 실수하는 것이 더 많다.

나쁘면 경계할 것인데 좋으니 쉽게 생각하다 큰 사건이 되는 거라서 이런 것을 경계하고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라서 알아서 해갈 것인데 이런 것은 자천의 정밀성과 배움의 질이라서 굳이 이런 것을 일일이 말할 것은 없다.

여기에 구성원끼리도 상대를 자기가 의도하는 것에 대상으로 있게 된다.

이건 위 설명들을 잘 보면 당연한 것이라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고 이렇게 말을 해놓을 뿐이다.

이런 것에 인간적인 기준으로 냉정한거 아니냐 너무 살벌하지 않느냐 한다면, 오히려 이런 감정 기준은 무엇을 위해 또 누굴위해 가지는 것인지 그 가치관이 혼란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하는 일은 스스로의 책임이고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그 대상에 내가 포함되면 안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 상대방의 의지는 내가 간섭할 것이 아니다. 서로 기본적인 독립성을 가지는 것인데 그러한 독립적인 사고와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기대거나 따라하려고 하거나 종속하려는 것은 전혀 이곳의 구성원으로서의 이해가 없는 것이고 그전에 도를 공부함에 미숙함이 크다 하겠다.

앞에서 이사회를 예로 들었다고 했으니 내가 보는 일의 대상이 이 사회인데 거기에 동료도 포함된다.

동료가 내가 의도하는 것에 어긋나면 나와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 동료가 나름으로 자기 의지를 관철해나가는 것은 다른 것이 겠지만 내가 의도하는 것에 어긋나는 것을 하면서 그러하다면 서로간에 조정 현상이 일어나는데 비슷한 경지라 해결이 안나면 또다른 동료가 또다른 것으로 해갈 것이고 그렇게 다양한 구성원들이 다양한 의지를 경쟁하는 것이다. 다른 의견이나 의지를 무시하거나 억누르거나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애써가며 갈등하고 합의하고 협력하고 대화하고 다투고 소통하고 해보려는 것이지 그것이 나이외의 것을 말살한다가 아니니 적당한 갈등과 어느 이상의 견제는 있게 된다. 그게 어느정도냐 서로간에 적절성을 가지면 좋지먄 결국 파국으로 가면 역시 그것도 스스로 책임질 일이다. 그 책임은 반듯이 있다.


그러면 어떤 구성원이 있느냐 어떻게 구성원이 되는냐 한다면

그건 지금껏 구성원이 되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키려고 해온 것인데,

할 수 있다고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기 때문인데,

그런 능력이 있고 그후에 이런 것을 하고자 하면 그때부터 일 거라 보는데,

사실은 나와 연관되면 이미 구성원으로서 본인이 인식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진행된다.

구성원이 싫으면 나와 연락을 끊고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일차적으로 이렇다.

그후에 얼마나 공부하고 견해를 가지며 능력을 기르느냐로 다른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지만 자격이라고 하기엔 좀 어설프긴하다.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본인도 그다지 난 구성원이라고 말할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그러냐면 모른다이다. 모른다고 하면 그러니 그래도 말하면 이런 것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구성원으로 한다는 것은 내가 그사람을 구성원으로 할 수 있을 만한 일의 크기라는 것이다.

이것도 중요한개념인데 상대가 고단자라면 고단자도 내가 하는 일에 포함시키려면 그 고단자보다 더 큰 의지와 견해와 관점에서 일해야 한다. 날 비난하든 욕하든 칭찬하든 상관없이 상대가 내가 하는 일의 개념에 들어 있으면 포함된 사람이다. 결국 개념의 크기와 질적인 다툼이다. 지성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더 아는 자가 더 크게 아는자가 더 위에서 날 상대로, 뭐 직접적으로 날 지칭하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하는일에 내가 포함되 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인데 굳이 이렇게 쓰는 것은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글로 정리해두고 이런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인데,

이러면 또 다른 형태로 진행 할 것이라서이다.

어디로 갈지 뭘 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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