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이라는 건 태극이나 삼극을 말한다.
쉽게 태극 음양론 같은 것인데, 이건 이번 정읍강의에서 뭔가 강의한다고 머리속에서 정리하면서 고민한 것인데 하다가 포기 한 것이다.
너무 설명이 길다. 한시간 하는 것에 맞출 방법이 없다.일주일을 고민하면 7가지 음양론이 되었는데 하면 할 수록 설명할게 늘어나지 줄지를 않는다.
그러다가 줄여 버리면 너무 함축적이라서 이해가 고약하다.
그러다가 이건 애초 주제가 너무 어려워서라는 결론으로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글로 쓰려고 하는데 그냥 동양적인 사유체계랄까 그런 것에 정리할게 있을거 같아서이다.
고정된 사물보는 관점에서 보이지 않는 유동적인 사물보기라는 식이랄 수도 있는데 음 너무 원대한 꿈이다. 이게 설명으로 될지는 모르겠다.
암튼 태극은 둘이고 삼극은 셋인데, 간단히 당사자가 빠져서 셋이 두개가 된다고 본다.
일종에 자아가 빠진 것인데 무아이다. 불교적인 것이긴 한데 어느 것이든 밀고가면 자아가 빠지게 된다.
처음엔 신이 빠지고 그다음은 자아가 빠지는게 철학적 사고랄까 도학적이랄까 생각하면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 된다. 이런 사고의 결론 어느 문명이고 기어코 도달하는 것이긴 하다.
그래서 고대 문명은 대개 이런 결론을 낸 것으로 안다.
그게 종교적으로 이해되든 다른 학문적으로 되든 그안엔 이런 이치가 들어있다.
신을 경배 안한 민족 없고 하다가 신을 버리지 않는 민족 없고 신을 버리면 다음으로 버릴께 자아가 된다.
왜냐하면 이건 지배의 맥락이라서 그렇다.
신이 우릴 지배하나 우리가 우릴 지배하나 하면 지배하는 것이 결국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되고 그런 것에서 헤어나려면 그런 체계를 해체해야 하는데 신이든 자아이든 뭐든 결국 사라져야 할 것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말이 다 맞다는 것은 아니다. 신을 버리지 못하는 민족도 있고 자아를 버리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곳도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은 항상 있어 왔다. 변해가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야 또 당연한 우리들의 성향이다. 하지만 역시 저러하게 변해가는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불평등에서 평등 평등에서 불평등으로 가는 것이 서로 시이소 처럼 오르고 내리는 것이라서 그러다가 긍극의 어느 지점으로 가는 것인지 전환만 있는 것인지 그건 또 어려운 말이지만 그런 운동성이 있는 것은 사실로 본다.
삼극에서 그런 신이 빠진 것인지 그 당사자가 빠진 것인지 그렇게 변해갔다.
왼손엔 감자, 오른손엔 사과가 있어서 두개가 있지만 그것을 선택할 자아가 있어서 항상 판단해야하는 어려움이 있게 된다.
이게 무아이거나 무신이거나 그런 것으로 인간의 정신이 나아간 듯도 한데 결국 누군가는 선택해야하고 그 선택으로인한 다음으로의 진행에 무한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이게 싫거나 힘들어서 다시 신을 부르고 자아를 불러서 책임지우고 기댈지 모르겠다.
아니면 태극의 신 없음이 다시 신있음이 되어 모든건 신의 뜻대로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 허무속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거 와 저거만 있지 그 의미나 그로인한 선택이나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그 당사자가 없기 때문이다.
ㅋㅋ 사고정리하고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