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론/견해를 위해

여닫기라고?

제라울 2020. 11. 5. 18:24

돕니 : 글을 읽었는데 이해 안 되는 게 많아

만약에 누군가가 뉴스를 보고서 어떤 국제적인 또는 사회적인 사건들을 보다가 아무래도 저런 일이 변화하려면 어디를 가야 되겠다고 문득 생각이 든다면 그러면서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또 친구와 대화하다가 친구가 먼저 꺼내기도 하고 인터넷을 하다가 그 장소가 자꾸 뜨게 되면서 정말 그곳에 가야 되나 보다 하면서 이런 맥락으로 간다면 니가 하는 마구와 다른가?

제라울 : 말로만 한 것으로 본다면 같다고 할 수 있지

돕니 : 그러면 그 사람도 마구 한 것인가?

제라울 : 아니지 그 사람이 계제가 있는가가 우선이지 낮은 거면 강마을이 되고 없어도 강마을이겠지 

돕니 : 마구와 강마을이 뭐가 달라

제라울 : 강마을은 나도 해 그것이 바탕으로 깔려서 하는 것인데,

일단 정성을 들이는 것이고, 이왕이면 좋은 일은 좋은 과정으로 하고, 희생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차근히 아래에서부터 나아가려는 것이고, 정밀하게 하려는 것이지,

그것이 마구가 되면 크기의 차이라고 하는데 강마을은 일반인이나 자천을 하는 누구나 하는 것이며 또 하라고 하는 것인데 어느 정도의 크기가 달라지면 마구가 되는데 왜 크기가 중요하냐면 크기가 어느 이상 달라지면 다른 것이 되는 거라서 그러지 

작은 범위에서 내 가정과 주위를 위해서 한다면 그건 누구나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삶의 현상이기도 하잖아

강마을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일상과 다를 게 없지 그게 맞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해가지만 강마을은 자천하면서 알게 된 것이 조금 있어서 상식과는 다르지만 또 그 다른 관점으로 주위를 보면서 하는 것이 다를 뿐 그 범위의 크기가 목적은 같아 즉 관점이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지 그 외는 같지

그 뉴스에서 본 사건들이 내 가족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 나도 그것에 대해서 뭔가 한다고 틀린 건 아니야 그렇게 하는 것이고 권장하지 다만 정밀하게 해야 하는 것이니까 내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일까 하는 것을 관심을 가져야 해야 하는 건데 그래야 계제가 성취되어 가면서 차이점도 인지가 되고 나와 세상과의 작용성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니까 중요한 건 세상과 나와의 관계 설정이고 그 주고받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야 이걸 오해하면 자천이 안 되는 거라서 자꾸 이런 말을 하면서 맞다 아니다 잔소리를 하는 것이지

마구는 일상의 삶이나 사회생활이나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반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되지 않고 오직 마구만을 위해서가 되지 그래서 일반적인 경제 활동, 가정생활을 하는 경우 굳이 권하진 않아 이건 전문적인 나 같은 사람이나 하라고 냅두는 게 나을 거지 안 그러면 자기의 주변이 많이 힘드네 가장으로서 제 역할도 안되고 사회에서도 그다지 인정하지도 않아서 일상의 많은 것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해

겉으로 보면 그냥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그건 속을 보지 못해서인데 그래서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이해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라서 굳이 이해를 구할 건 없지만 분명 다른 세계의 일이지 그러면서 이 사회 이 세상의 일이 되는 것인데 이건 일반적인 관점과는 전혀 달라서 다른 세계라는 것이지 다른 세계에 정말 사는 것은 아니지

 

돕니 : 그러면 왜 저러한 현상이 일어나는가 마구 하는 사람과 별다를 것이 없는 맥락을 가지고 또 행동하게 되는데 그것이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어디서 그것을 구분하고 차이가 있음을 아는가?

제라울 : 알 수 없겠지 

돕니 : 그럼 어쩌라는 것인가

제라울 : 난 있지만 그 사람은 없는 것이야

나야 계제 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만 저런 착각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계제도 착각을 하고 또 착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러한 차이를 이해 못하니 마구와 강마을의 차이, 또 계제의 차이로 인한 역할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게 되지

돕니 : 그러니까 그걸 어쩌면 되냐는 거잖아

제라울 : 나에게 물어오면 대답해주지만 물어오지도 않고 묻지만 원하는 대답이 아닐 경우 듣고 잊거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해 버리거나 하면서 듣는 것을 못하는데 나도 어쩌지 못하네 내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 줄 순 없지 않나

자세가 없는 사람에게의 충고는 훈계가 될 뿐 별다른 효험이 없어 그냥 기다리는 거지 정말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어 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지

돕니 : 기다려? 언제까지?

제라울 : 시간은 없어 올 때까지이지 결국 안 온다면 마는 것이고 오지 않으려는 것을 굳이 오라고 할 건 없잖아 모든 건 스스로 판단해서 해야 한다고 

돕니 : 난 그래도 이해가 안가네 왜 그럼 어디를 가야 된다고 느껴지고 또 가서 뭔가 하면 그로 인한 현상이나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고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 차이가 있나 다 같은데

제라울 : 어느 장소를 가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장소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뭔가 징조가 있는 듯도 하고 나중에 그 장소와 행동에 대한 사회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미래의 변화로 영향을 주게도 되는 것처럼도 보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건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되는 것을 미리 아는 능력이 있는 것이네

일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일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아는 능력인데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게다가 애초 이런 재주가 있는 사람이 내가 쓴 책을 보면 이런 것을 흥미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원하게 되니 당연히 이런 능력이 생기는 것인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획득되는 능력이지

심층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설정시켜주는 곳인데 어느 날 이렇게 되면 자기가 대놓고는 아니라도 심층에서 제라울이 하는 것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데 미리 아는 것이지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 것을 의식은 모르지 심층이 하는 거라서 심층이 어떤 욕구 어떤 설정 어떤 것으로 자신을 이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

난 이걸 허영이라고 하는데 권력적인 행위인데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떤 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인데 그런 우월한 뭔가를 원하는 심리이기도 하고 어디선가의 패배적인 자신을 여기선 이런 식으로 보상받으려고 더욱 집중하니 더욱 그런 능력이 강해지기도 하고 그렇지 이것 말고도 사람마다 다른 이유에 의해서 그럴 것인데 이건 모두 심층이 하는 거라서 본인이 인식하기는 불가능하네 

뚜렷이 영상이 보이는 것만을 말하지 않아 어떤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어떤 단어가 떠오르고 어떤 포스터, 신문의 헤드라인, 인터넷의 어떤 정보들 자꾸 어떤 것이 하고 싶어 지거나 회사에서 발령이 나거나 누가 가자고 하거나 뭔가가 시키거나 뭔가로 인해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이거나 이런 것이 다 미리 아는 능력에 속하네 심층이 그렇게 만든 것인데 의식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자신이 어떤 능력이 있는 거로 알거나 신의 계시라고 할거나 그럴듯하게 해석하는 의식이 있을 뿐이고 그런 해석에 만족하면서 자꾸 증가시키게 되지

이런 건 심층에서 일어나는 것이라서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고 그런 적 없다고 하거나 부정하는데 이런 것을 구분하고 관찰하라고 자꾸 자기 관찰을 하라고 하지만 언제나 피상적인 관찰을 하지 심층을 보는 것은 어려워하는데 자기의 심층이 하는 것을 이해 못하면 마구는 전혀 아닌 것이 되지

왜냐하면 마구라는 것은 심층이 하는 거라서 심층이 하는 것을 이해 못하면 결국 자기가 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이 한 것을 자기가 한 거라고 착각한 것이 되지 

왜냐하면 심층과 의식의 서로 간의 역할이 있는데 의식이 자기의 역할을 잘못하거나 곡해하거나 착각을 하면 심층도 그것을 할 수 없게 되는데 한쪽이 기울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모르기도 해

심층과 의식의 균형 이것이 중요해 아니면 본능에 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잖아 의식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나름의 대강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해 자세한 건 모르더라도 갈 방향은 알아야 하지 심층이 하는 것과 의식이 하는 것을 의식이 구분할 수 있어야 해 이게 아님 균형이 깨진 것인데 그럼 본능에 끌러가는 것과 다름이 없지

돕니 : 말도 안 돼 그런 미리 아는 능력이 그리 쉬운가

제라울 : 아니야 그게 쉬운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걸 쉽게 한 게 대단한 거야

뭔가 미리 알거나 뭔가 일어나면 왜 그것을 내가 알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한 원인에 대한 이해가 심층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야 미리 안다는 것은 미리 알아야 하는 그 사람의 심층의 이유가 있는데 왜 미리 알아야만 하는가라는 것을 해결해야 그러한 것이 사라져 

미리 안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뭣 때문에 미리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는가가 있는 것이지

이 미리 아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원인 파악이 되어야 마구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자기가 사는 이유를 아는 것이니까 이 이유가 그렇게 살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한계를 알지 이런 것도 모르고 남이나 사회에 뭔가의 영향을 준다는 게 말이되? 자기의 운명도 모르면서 외부에 뭔가 영향을 주려고 하는 그것의 광오함을 알아야지

내가 무엇을 행하든 왜 그런 행위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면 결국 자기 관찰이 안된 것이고 이러면 의식과 심층이 서로 불협 되는 것이라서 이건 도의 공부가 미숙한 것이라서 아직 계제가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되고 그전에 마음의 불균형이 있는 것이라서 불안정한 것이야

뭔가 영상이 보이거나 뭔가 느끼는 것이 있거나 뭔가 해야 하는 것이 있거나 뭔가 하고 싶어 지거나 

일상의 일에서도 누가 왜 연락이 와야 하는가 왜 만나야 하는가 왜 회사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왜 상사는 날 구박하는가 왜 차가 막히는가 왜 왜 하면서 일상의 모든 것에 내가 하는 모든 것에 이 원인을 모르면 심층은 마구 하는 심층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심층이 되지

그런 심층이 미래를 알든 어떤 특이 능력이 있든 생존하는 심층에서 나온 것이라 그러한 것이 되는 것이지 다른 것이 될 수 없네

그래서 모든 것이 심층이라고 말했는데

뭔가 영상이 보이면 그것을 보게 된 이유를 알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네

그러면 안 보고도 그런 일을 해소하고 진행시킬 수 있게 되는 안목을 가지게 되지

안 봐도 되면 안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보이면 결국 뭔가 해소되지 않았거나 문제가 심층에 있는데 모르거나 무시해서이거나 성향 상의 이유나 응어리가 있거나 욕구가 있거나 뭐 그렇겠지 즉 상처 치유가 안된 것이야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다고 했어 왜냐하면 미래는 예언하는 것도 미리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 살아야 할 곳이고 살아가면서 변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고 내가 뭔가 의도하고 힘쓰기 위해 있는 것이지 미리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서인데 이걸 중히 생각하지 않아서 자꾸 미리 말해주거나 미리 알려주거나 하길 바라지

이것이 왜 중요한지 모르면 결국 도와는 상관없는데 먼저 가려면 예언할 수 있거나 미리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같이 애쓰려고 하는 것인데 그래서 미래를 어찌하려고 애쓰는 방법이 학문이고 의식의 할 일이야 심층이야 미리 알 수도 있겠지만 의식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는 그 활동이 미래를 다가오게 하고 좋게 하려고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지 그래서 이미 안다고 예언하고 보고 이미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면 미래를 오게 하는 것을 훼방하는 것이지 돕는 자가 아니지

어떤 능력이든 어떤 특이 공능이든 어떤 초월 능력이든 모두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모르면 그것에 끄달리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한 영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인데 이건 마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네

마구는 심층이 하는 것인데 심층이 불완전하거나 불안정되었거나 그러면 이미 심층이 심층으로서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없어서 그런 심층으론 마구 한다고 하면 웃을 일이거나 위험한 것이지

 

돕니 : 넌 영안을 다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제라울 : 아니야 그건 그런 능력을 어떻게 쓰는가는 말하는 것이야 그런 영안이 있다고 자기 관찰을 능한시 해도 되는 것은 아니잖아 오히려 더해야 돼 영안에 내가 현혹될 거니까

합리적인 이치로 사물을 이해할지 영감이나 영적인 재주로 사물을 이해할지 항상 선택해야 하는 것인데 언젠가부턴 분명 한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어 그것을 어떻게 균형을 가지고 다 쓸지를 생각해야 해

이것에 대한 해결법을 나름으로 가지지 않으면 결국 치우친 견해를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치우친 견해만큼 불균형적인 심층이라는 것이니 결국 그 허물어지는 성취를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생기겠지

 

돕니 : 그럼 내가 뭔가 느끼고 해야 할 거라고 생각이 드는 경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해 내버려 두나 아니면 부정하나

제라울 : 해야지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분수 즉 한계를 명확히 알려고 해야 하는 것이지 분수가 나쁜 의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인 식이 정확해야 돌파를 하거나 다룰 수 있기 때문이야

알아야 다룬다는 것이지

그리고 더 알려고 노력하는 것을 멈추면 안 돼

즉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로 인해 뭔가 사건이 일어난다고 할 경우 진짜인가 내가 한 건가 아닌가 내가 어떤 정도인가라는 것을 자꾸 알려고 해야 해 어제 내가 6단이라고 오늘 6단이 되는 것은 아니야 언제나 새롭다고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예외는 없어

건물을 무너트리는 경우 내가 가진 게 권총인지 미사일인지 모르면 웃기는 현상이 일어나

그래도 한다고 권총을 쏘지만 그래서 건물이 무너지면 자기가 한 건지 알아 반대편에서 날아온 미사일을 못 보지

미리 안다는 것이 이런 것인데 어떤 건물이 무너져야 하는지 안 것인데 그래서 그 근처에서 있게 되고 그러다가 그 건물이 무너지면 자기와 관련 있는지 알게 돼 그 미사일을 전혀 볼 수가 없고 볼려고도 안 하고 그 힘에 대한 이해가 없지

그래서 언제나 누가 한 것인지 어디서 인지 어떤 과정으로인지를 알려고 해야 해 그것을 모르면 이건 내가 한 게 아니고 나와 무관한 것이고 그걸 인지해야 하지

미리 안다는 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아마 대개는 뭔가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얼쩡거리고 얼쩡거리게 되는 상황이 되어 그렇게 되고 우연처럼 일 수도 있고 자꾸 신경 쓰여서 그럴 수도 있어 뭐든 어떤 과정으로든 거기에 얼쩡거리게 되는 것은 같지 투시가 되어서 명확한 능력으로 하는 것을 부러워할 건 없어 뭐든 결과가 같으면 같은 능력이야

단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사일의 주인이 누구냐를 아는 게 중요한데 이걸 아는 능력은 오직 자천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자천을 해서 공을 알고 무주를 하며 오로지 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만 그리 되네

 

그래도 이런 것을 해야 뭔가 알게 되는 것이 있지 안 하거나 말로만 들어선 한계가 있어

백문이 불여일견이야 자기가 한번 해보면 그거서 몰랐던 거 안 보이는 거 못하는 걸 인식하게 되고 알려고 노력해야지

그러면서 배워가는 것이니까 

 

돕니 : 그럼 이런 것이 생각이 들고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과는 뭔 상관인 건가

생각은 생각이고 강마을은 강마을 아닌가 생각이 세상에 바꾼다는 것인가? 그래서야?

제라울 : 그런 면이 우선 있지 생각이 주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

그래서 누구나 이런 원리가 작용한다는 것이지 나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기본 원리는 다 같은데 나 이런이런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보편적인 원리가 그 속에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생각을 단속하라는 것인데 영향을 준다는 것 이전에 생각이 무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야 하잖아

개념 관찰이나 구분은 또 다른 것이고 그 외에 이렇게 생각의 장소도 구분한다는 것이지

생각이 뇌에서만으로 하느냐 두뇌의 바깥으로 나가면서 하느냐를 우선 구분하는 것이야

왜냐하면 일단 생각도 내가 제어하는 거라는 인식을 시켜주기 위해서야 

그냥 생각을 멈추거나 잡념을 제거하거나 식이 아니라 생각을 하더라도 여기서 하거나 저기서 하거나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가 된다는 것을 알기 위함이야

장소를 구분해서 하고 생각을 바꾸면서도 하는 것인데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면 긍정적인 방향을 찾아서 보려고 하고 긍정적인 생각이 나면 부정적으로 보려고도 하고 좌쪽에서 보기만 하면 우 쪽에서도 보는 것을 해보는 것인데 이렇게 생각을 다룬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이게 감정 다루는 것이기도 해서 그런데 생각을 누군가에 집착을 하게 되면 자꾸 거기로 가거나 더욱 밀착해서 생각하려고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바꾸고 뇌에서 나가지 않게 하면서 자기의 일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안에서의 일이 외부로의 영향을 안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어야 외부로의 영향을 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안 나가다가 일이 있을 때만 나가는 것인데

내가 자주 말하는 것이 일이 없으면 문밖도 안 나가다고 하는데 그건 몸만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일이 없으면 머리에서 안나가게 한다는 것이야

그러면 완전히 안 나가냐면 그건 불가능해 나가는 것엔 이런 것도 있어

내가 누군가와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래서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난 감정이 상한다.

근데 그 상대방도 감정이 상한다.

상한다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게 내 감정이 나가서 전해진 건가 상대 감정이 나에게 전해진 건가

아니면 나쁘게 결론이 나서 당연한 감정의 일어남인가 하는 것인데 

얼핏 별거 아닌 것일 수 있는데 막상 현실에서 이런 경우에 부딪히면 헷갈리게 된다.

감정을 들어다 보면서 이게 내 것인가 남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면 그 구분이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다.

난 그런 일로 기분 나빠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건 전해온 거다라고 한다면 상대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건 결국 알 수 없다로 끝날 수 있는데 일단 상한다는 공통점을 주는 사건이 있으니 일차적으론 외부에서 일어난 그 사건에 의한 반응이 우선이다. 난 그런 일로 감정이 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이 원인이 더 크다. 감정의 둔함을 마음이 크거나 다르거나 식으로 이해하는 거라서 신뢰가 없게 된다.

자연스러운 감정이 없거나 다르다고 아는 것이 문제의식이 부족이다. 크고 작은 것이 있을 뿐이지 비슷한 상황에선 비슷한 감정이다. 물론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일어나고 전혀 없을 수도 있을 것인데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이다.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시간에 또 다른 것으로 나오기도 하는 거라서 이렇게 자기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결단이 안되고 일이 결론이 안 나게 하는 것이라서 강마을에 부적합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감정이 당연한 것인데 없거나 다르게 되는 감정이 되면 그렇게 된 원인을 알아내야 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이건 대개 상처이고 질환이라서 그렇다.

아마 수도하면서 감정억제나 없음으로 배워서 그런 것도 있는 분이 있을 것인데 그렇게 억눌러서든 뭔가로 감정이 없는 것으로 되었다면 이런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이고 상식을 넘은 사람이라 불안한 사람이다.

그걸 성취나 경지 이룸으로 안다면 역시나 뭔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감정이 사라지면 사라진 보상이나 대가를 무엇으로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 그런 감정이 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고 그렇게 되었는지의 원인을 심층에서 찾아야 그다음을 할 수 있다.

돕니 : 말이 산으로 가네 그래서 원인이 나 에게인가 남에게 인가

제라울 : 사실 그걸 말해주기가 어려워 그 사건마다 다르거든

일일이 다 따져줄 수 없잖아 그걸 알아낼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마구 한다고 하겠네 사실 이걸 알아야 미사일을 보내는 사람이지 

돕기 : 그럼 그걸 알 수 있는 공부는 뭔가

제라울 : 맥락을 알아야지 

기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전에 마음을 비울 수 있어야 해 선입견과 편견의 작용을 알아야 하고 감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을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여닫는 거부터 하라고 하잖아 

결국 이것 때문이기도 하니까

생각을 여닫기 하면서 생각을 다루고 그러면서 존재할 때와 안 할 때를 정해하는 것이지

내가 마구 한다고 하는 것은 존재하려고 할 때야

아니면 그저 숨만 쉬고 있기만 하지 별건 없지

내가 움직인다는 것이 뭔가의 맥락에 닿았다는 것인데 그런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지 않으면 아무 존재가 아닌 상태의 시간 죽이기이지

시간죽이기라며서 있는 건 신체가 생명활동을 해서이고 아마 죽은 상태에선 움직이어야 할 때만 존재하고 아니면 무존재로 그냥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있겠지 그래서 눈뜨면 백 년 지나고 눈뜨면 만년지나 있을 수 있지

일할 때만 눈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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