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살
바닥을 친 것입니다.
바닥을 친다는 건 바닥이 아니라 바닥을 쳤으니 이제 더 이상은 내려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막장은 겁살입니다. 진짜 바닥은 겁살이고 재살은 바닥을 치고 그 다음이라는 것이 됩니다.
흔히 수옥살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여기가 가장 힘든 거 아닐까도 하는데 이미 갇히는 것이면 반포기 상태입니다.
저항하며 억지로 끌려가고 바닥에 내팽겨치는 겁살 때 더욱 충격받고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 후에 재살로 오면 이제 포기하고 그다음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살땐 암중모색을 해야 합니다.
적을 알아야 뭔가 실행 할 수 있어서 이다음에 어떻게 할지 그것을 이때 정하고 의지를 세워야 합니다.
이때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후의 성과는 그다지 작은 것으로 끝나고 다시 역마가 와서 힘이 빠질 때 후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재살 때 원대한 야망을 가져아 합니다.
처박혀서 힘들다고 울고 좌절할 겨를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모색을 얼마나 치밀하고 굳건하게 이때 하느냐가 지살이 오고 장성이 왔을 때 이루어지는 크기가 다르고 급이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와신상담이고 기어코 이룬다는 악을 쓰는 곳입니다.
그 힘을 압축하고 가슴에 쌓고 쌓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힘이 나중에 자신의 모습이 될거니까요
그런데 재살에 와서 갑자기 그걸 하고 싶다고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삶으로 말할 하면 육해에 죽고 화개에 사라지고 겁살에 귀신 취급당하면서 백안시하는 것이고 재살엔 어디 있는지 모를 곳을 떠돌며 한스러워하는 것인데 그래서 역마가 올 때 이미 다음의 재살 때 무엇을 할지 스스로 마음의 결정이 서서히 했어야 합니다.
재살에 구천을 헤매지 말고 이후의 인생을 살 수명을 기르고 거두면서 압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걸 넋 놓고 있다가 다시 태어나면 또 그렇고 그런 인생일 것이니까요
역마가 와서 병들면 이후를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음 생이고 세대이고 먼 미래일 거라고 할지 모르지만 기어코 그 시기는 옵니다. 안 온다면 모르지만 절대적으로 오게 된 그것을 이때 준비하지 않았다면 재살에 온 지금 시점에서 그다지 할 게 없습니다.
사람 따라 이 어릴 때 재살이 와서 이미 미래를 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살이 12 운성으로 태지입니다.
절의 혼돈에서 태로 오면 뭔가 일관성이 생기기 시작하는 곳이 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크로노스처럼 자식을 먹어버려서 대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코스모스의 질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태지에 오면 제우스 같은 당돌한 놈이 나옵니다. 더 이상 겁살의 무의미를 견디지 못하고 재살의 악을 쓰면서 자기의 갈길을 창발 하게 되니까요
그런 기미가 시작되는 곳이라서 이 태지는 중요합니다.
태지가 있으면 점을 보는 곳에서 임신했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의 중요함을 안다면 태지의 의지나 계획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죠 임신이 되어야 자식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건 이때 의지가 없다면 이후에 있을 것이 없습니다. 지살이 와도 할 게 없는 것이고 이후에 아무런 길흉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 태지에서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하면 이후에 좋을 것도 없지만 나쁠 것도 없어서 좋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마구는 태지를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딘가에 뭔가를 심어 놓아서 그것이 천살을 거쳐 지살이 되면 드러나게 되죠 천살을 거치는 건 지연과 왜곡이 일어나야 해서입니다.
다르게는 월살을 이용합니다. 뒤에서 암암리에 그림자처럼 안 보이는 아무나 보지 못하는 곳에서 뭔가를 하고 그것이 장성을 거쳐서 반안을 지나 역마에서 판을 흔들고 근거를 무너지게 하기도 합니다.
남의 장성을 지나야 해서 좀 더 시일이 걸립니다. 아래부터 서서히 무너지게 하거나 변화를 추구하는 거라서 아무도 무엇이 달라지는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다 역마가 오면 서서히 바뀌는 것이 드러나는데, 이러면 신살 운행이 주기적으로 도는 것이라서 역마나 육해가 시기가 돌고 도는 것이지만 이걸 이용해 간섭하면 거기에서 다른 의미가 만들어지고 가감이 되는 운이 된다는 것이 됩니다.
즉 나라마다 조직마다 누군가가 이런 것을 이용해 마구 해서 원래의 계산이나 수치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는 오차가 생기게 합니다.
왜 그 나라는 다른가 왜 그것은 다르게 되는 가 왜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는 가겠죠
무엇을 시작하게 하려 하는가 무엇을 전환하려고 하는가에 따라 다른 것이지요
그래서 사건이나 누군가나 뭔가가 드러났다면 그건 장성이고 그건 겁재천을 지날 때 한 것이라서 이미 한참 전에 한 것이니 드러나는 것으로 물어봐야 때 지난 것이 되죠
그리고 사건이 어떤 기미나 뭔가가 되는 징조로 보이긴 하는데 그게 뭔지 물으면 월살적인 것으로 뭔가 한 것인데 역마를 지나 재살이 오면서 그전과는 달라진 것을 알 때쯤 보일 것이라서 말해줄 수 없죠
너무 늦게 묻는 거거나 너무 이르게 묻는 거거나 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아닙니다. 월살을 쓰는 것 중에 더 힘을 주어서 항룡유회하게 만들기도 해서 하나만 알고 다른 것으로 응용이 안되면 좀 답답한 이해이니 좀 더 깊이 알고 써야 합니다.
장성살도 이후의 재살 때를 준비해서 장성을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장성이라고 눈에 보이는 행위만 하는 것은 아니고 무엇의 장성이냐로 다른 것이 됩니다.
경자년에 내가 장성인데 그다지 나나서 뭔가를 한건 없습니다.
그 대신 다른 장성으로 다른 것을 나서서 한 게 있죠
열심히 나서서 했는데 그 행동하는 것이 보이진 않았죠 다만 드러난 사건들이 있는데 그런 면에선 드러났고요
그래서 신살이라는 것도 그렇고 뭔가 나름의 용법을 알아낸 게 있어야 쓰게 됩니다. 그냥 한두 번 읽거나 보거나 외워서 하기엔 어렵죠 신살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그러니까요
자꾸 접하다 보면 알아지는 것이 있을 것이니 익숙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