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니 : 넌 선입견이 없나? 없다고 생각하나? 없게 하나?
제라울 : 선입견은 없다 있다로 보는 경우와 있지만 줄여야 한다거나 있으니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거나 식으로 보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른데 있다 없다. 식으로 단정해서 이거면 이거고 아니면 아니라는 식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 역시도 득도하거나 아니거나 이고 대각을 하거나 못하거나 식으로 이분적인 구분을 원하죠
하지만 그런일은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일화나 허영이 든 자들이 그리 말하거나 그렇지 실제로 그런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난 오늘도 아침을 먹었거든요
돕니 : 그래? 선입견은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럼 조심해야 하는 거다?
근데 아침은 뭐야 뜬금없이
제라울 : 아침도 선입견이에요 내 눈이 쌍꺼풀이 없어요 이 신체도 그런 선입견이 있어요 어제 없다고 오늘 없을 건 없는데 왜 없죠? 아침을 먹는 것도 그렇고 국에 밥 말아서 먹었는데 이것도 제 습관이죠 선입견이에요
내가 하는 모든 일상의 그리고 내 신체나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선입견인데 얼마나 등신이면 선입견이 없다고 말하겠어요
돕니 : 그러면 그런 게 다 선입견이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선입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나?
제라울 : 전 이게 선입견인지 알잖아요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선입견인지 알고 순간순간 이러한 선입견을 이해하고 있죠
내가 얼마나 이런 선입견에 조심하는지 일화를 말해줄게요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별생각 없이 대답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그랬는데 21살인가 22살인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잠시 만날 기회가 있던 시절인데 이중에 한 명이 어떤 여학생 이름을 대면서 아느냐고 하더라고요
난 듣자마자 아무 고민이나 생각하는 시간도 없이 바로 모른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 친구나 웃으면서 뭐가 그렇게 생각 하나도 안 하고 바로 모른다고 하느냐면서 어이없어하더라고요
내가 그런 이유는 여학생을 사귄 적도 없고 여학생이랑 의미 있는 뭔가를 해본 적이 없는 좀 그런 시절인데 여학생 이름이 나오니 생각할 것도 없다는 것으로 바로 말한 건데 그 친구 얘기론 내가 다니던 교회를 갔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교회의 여학생이 나를 안부를 물은 거지 안 나온다고 나오라고 한 건지 그렇게 된 건데 나도 생각해보니 그런 이름의 여학생이 교회에 있었던 것도 같단 말이죠
이게 벌써 30년 가까이 될 것인데 아직도 이걸 기억하면서 경계하죠
내가 생각 없이 대답하거나 생각 없이 행동하면 이걸 떠올리며 스스로를 비판하면서 다시 경계하는 마음을 가진단 말이죠
이걸 지금껏 해오고 있어요
하루아침에 버릇이 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내 성향이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것이 되죠 그래서 평생을 조심하거나 신경 쓰거나 하면서 살죠 그리고 이것을 기본으로 다양한 다른 선입견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찾아내고 일일이 꼬리표를 붙이면서 이거 저거 확인하고 살았죠
그때만 해도 철학책을 읽어서 사고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내가 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거기에 맞물려 임독을 열심히 돌리던 시절이죠 지나서 알았죠 이 임독이나 각성 체험이 서로 보완이거나 관련이 있거나 그럴 거라고 알게 되는 그런 시절이죠 그이 외도 일상의 하나하나에 엄청 따지고 구분하고 나름의 논리적이 해답을 내던 시절이라서요
밤엔 임독을 돌리고 낮엔 대가리 굴리며 사고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이 들수록 선입견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생겨나요
블로그 하기 전엔 좋아하는 것이 전혀 없었는데 이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음식을 사주면서 뭐 좋아하냐고 묻거든요 그럼 과거엔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그럼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저거 일부로 정해뒀죠 이거 좋아하는 거다 저거 좋아하는 거다식으로 일상에서 이거 저거 우선순위를 정해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처음엔 일부러 정한 건데 정말 그걸 좋아하는지 알기도 하더라고요 내 자신이요
그래서 내가 날 비웃으며 지랄한다고 했죠 그게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 의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도 할지 모르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세를 바꾸더라고요 좋아한다. 그리고 아니거든!이라는 뒤에 하나 더 붙여 있던데요 ㅎㅎ
돕니 : 뭔 말이야 뒤에 말이 더 붙었다니 그거 니 심층의 욕구를 말하는 거 아닌가
제라울 : 네~ 심층의 욕구들도 언어로 번역해서 어떤 욕구인지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식의 심층인지를 느낄 수 있어요 이걸 일부로 만들었죠
그래서 좋아하는 심층은 나에겐 없어요 즉 무의식도 좋아한다는 그런 것이 없어요 뒤에 하나 더 붙죠 아니기도 하다는 것요
돕니 : 니 말은 무의식도 니가 원하는 대로 욕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제라울 : 전 무의식이라는 말을 안 쓰는데 그렇게 말해야 사람들이 알아들으니 말하는데, 그래요! 그것도 내가 정한 대로 욕구해요
돕니 : 아닐걸 그건 니 착각 아닌가 인식되지 않는 것을 인식하다면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제라울 : 맞아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중에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걸 했다는 것이죠
내가 왜 신체도 선입견이라고 하겠어요 음식이나 일상의 모든 것이 다 선입견이라고 하겠어요?
내가 보는 심층의 깊이가 다른 것이죠 난 그 정도의 깊은 곳까지 가면서 그것의 원인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도 일상에서 항상요 삼매는 항상이어야 해요 안 그러면 깨어있다는 것이 뭔지 모르는 것이 돼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냥 하는 것은 없어요 그것이 눈 깜빡이는 것이든 손톱 자르는 것이든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이유가 없으면 안 할 것이죠 모든, 그리고 사람마다 아는 한계에서의 모든 이지만, 날 해체하는데 내가 어디까지 해체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르겠죠 어디까지 해체할 수 있는지 모르고, 어디까지 구성되어 있는지를 우선 모르니 모르고,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더 깊이 해체했어요 해체한 만큼 선입견을 알죠
제 말들이나 글을 보죠? 그게 선입견인데 보여요? 난 이게 보여서 좀 답답해요 언젠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져 가는 제 선입견을 보면서 한심했죠 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어요 벗어나 버렸으면 지금의 제라울은 이런 모습이 아니겠죠
과거엔 그래서 글을 안 쓰고 설명을 안 하고 하죠 말하기 위해선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선입견이죠
그래서 일부로 만들죠 만들기도 하고 만든걸 다시 해체도 하고 아마 전 죽어서야 다 해체가 되겠죠 지금 만들어진걸 다 되돌려 놔야죠
돕니 : 넌 그렇게 선입견에 대해서 경계하고 조심한다는 거구나 그리고 또 하는 게 있나
제라울 : 여러개이겠죠 뭐가 있는진 지금 당장 다 말하지 못하겠는데,
그중에 또 하나 말하면 내가 아는 것을 보려고 하나 모르는 것을 보려고 하나도 있습니다.
독서를 하게 되면 아는 것을 위주로 보면서 내가 아는 것을 말하네라고 생각하는지,
책은 내가 모르거나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으려고 읽는데 독서하면서 내가 아는 말이네 하면서 보면 굳이 독서할 필요가 없는데 다들 이러고 있는 것 같아요 독서 외에도 외부에서 아는 걸 보지 모르는 걸 보려고 하지 않죠 달라진 거 변화된 거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점점 나이 들수록 또는 성향이 그래서 아는 것이나 하던 것이나 보던 것을 더 하려고 하는 것이죠
모르는 것이 눈에 띄고 보여서 이 사람은 이런 걸 아네 이런 방식으로 말하네 이런 접근으로 말하네 이런 방법으로 설명하네 하는 것을 보는지도 있습니다. 개념을 모르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설명하는 방법의 나와 다름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거나 알려고 하거나 맥락의 다름으로 인해 다른 접근 설명을 보는 것이죠
알거나란, 누구나 같은 것으로 개념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개념인데 수학적이거나 사회과학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그 사람이 개념을 알게 되는 그 배경이 주는 특성으로 인해 같은 것인데 다르게 된 개념,
알려고 하는 것은, 왜 그 사람이 그 개념을 알려고 하게 되었나 알고 싶은 이유가 뭔가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동기성인데 동기의 다름으로 인해 개념이 같은데 그 개념을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지향하는 곳이 달라지기도 해서입니다. 이렇듯이 나와 다른 것을 위주로 독서하거나 그 외 일상에서도 보이는 거 체험하는 거 남이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어떤 것에서든 내가 아는 것을 위주로 보면서 인식하느지 모르는 것을 중심으로 인식하는지가 있어서 내가 인식하는 방향의 차이를 검사합니다.
돕니 : 넌 선입견을 조심하려고 너무 긴장하듯이 사는 것이 아닌가 누가 그렇게 사는가
제라울 : 말로 하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는데 익숙하면 그냥 저절로 그러고 있네요
과거에 대단이 되면 마음의 지평을 본다고 했죠 그러면 정말 중후한 무게의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넓이로 인해 고요함이 격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사고체계를 형성하는데 그게 지금의 내가 하는 짓입니다.
이걸 나로 해야지 이걸 안다고 해야지 이걸 고집한다고 해야지 이걸 좋아한다고 해야지 이걸 해야 형태가 되겠구나 이걸 한다고 해야 규칙성이 있다고 하겠구나 하면서 일일이 다 정했죠
안 그러면 그냥 다 고요해서 그다지 할 필요가 없죠 이유를 보고 그 이유에 따라 자세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라서 그걸 한 거죠
나를 일부러 이렇게 선입견을 가지게 한 겁니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야 사회생활하게 되겠구나 해서요
그러다 아까 말한 데로 일부러 정한 것이 정말 그런지 알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때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얼마나 웃겼는데요 이렇게도 되는구나 했죠
그래서 지금도 좌선을 하며 기준으로서의 고요를 항상 재인식시킵니다. 긴장을 놓으면 나락이거든요